#13. 기억 속 최초의 장소
프로이드는 “살아가며 형성되는 자아는 자아가 성립되는 시기 유아시절 부모의 원망(願望)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즉, 부모의 소망이 성격이 되고 자아정체성이 되며 자라서 생의 전부가 된다. 그리하여 살아가는 자아 속에는 늘 부모의 바람처럼 되려는 본능이 자신을 제어하고 발전하는 에너지가 되어 생의 과정에 반복적으로 영향을 준다. 본인이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부모의 자아가 투영되어 그를 바탕으로 성장하려는 본성이 자신의 삶 속에 녹아, 끊임없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자기 자신이다. 내 삶의 어디엔가 어머니가, 아버지가 녹아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내게 처음 생각나는 그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단편화되고, 퇴색된 기억으로 드문 드문 기억나는 그 조각들은 무엇 때문에 나에게 때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질까? 왜 그 순간이 기억났을까? 그때의 상황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 기억 처음의 그 순간으로 한번 돌아가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보려고 한다.
일생 최초의 기억은 평범한 일상의 하루가 아니고 몹시 슬프거나, 기쁘거나, 아니면 충격적인 사고가 있거나 하는 별스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최초의 기억, 그 기억은 순간이고 그런 순간이 사진의 한 장면처럼 각인되어 기억된다. 그 기억 속에 나의 생각과 무의식을 불러와서 의미를 유추해 본다.
대개 우리가 기억하는 최초의 시기는 6살 전후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더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때의 기억을 단단히 잡고 상황을 추측해 본다.
추석 전날인데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가 바람에 크게 흔들려 대추가 후루룩 떨어진다. 그것을 주우려고 비바람 속에 이리저리 형과 나는 분주히 뛰어다닌다. 그날이 사라호 태풍이 분 날이다. 내가 여섯 살 때 일이다. 1959년 9월 11일이다. 그날의 기억이 분명한 것을 보면 최초의 기억은 그보다 더 이전의 날이라 본다.
다리를 보고 둑을 따라 좌회전을 하면 율곡사(밤절)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단계에서 거창으로 가는 단계교 밑이다. 진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엄마가 형에게 “동영아! 엄마하고 진주 가자”라고 달래니 형은 "안 가고 큰 집에 있을 거야!"라며 동행을 거부한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 따라 가려하지 않는 형을 알 수가 없었다.
안 가려고 하니 형은 할머니에게 떼어 놓고 진주로 간다. 작은 아들과 단 둘이 간다. 엄마는 차멀미를 매우 심하게 하기 때문에 버스 타는 것을 몹시 괴로워했다. 바람이 잘 통해서일까? 엄마는 화물차 조수석에 앉으면 멀미가 없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멀미가 심하여 적당한 시간에 차를 여러 번 세우고 한참이나 쉬었다. 쉬어 가며 진주로 갔다. 5월쯤이었다. 양철로 사방이 거의 막힌 창고 같은 건물에 큰 글씨로 쓰인 “농협은 농민의 것, 농민의 힘으로” 이 글자가 보이면 산청 외갓집과 큰집이 있는 단계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그 건물을 뒤로하고 이제 진주로 간다. 문대를 한참 지나 원지 못 미쳐 논두렁 옆에서 아이들이 버들피리를 불며 놀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차를 세우고 잠시 쉬면서 엄마는 근처에 있는 미루나무 가지를 꺾어 비틀었다. 아이들이 여럿 몰려와 구경하는 가운데 엄마는 한쪽을 벗겨내고 떨판을 만들어 불어보시고는 내게 버들피리를 건네주었다. ‘삐~ 이이’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본다. 이 순간이 아련한 내 유년의 첫 장면이다. 그려보면 참 슬픈 장면으로 연상된다. 혼자서, 큰 아이는 남겨두고 작은 아이만 달랑 데리고 어머니 혼자서 멀미로 혼미해지는 심신을 바로잡으며 진주로 가고 있는 그 분위기를 생각하면 엄마의 외로움과 분노, 슬픔과 막연함이 느껴진다. 삶은 참 괴로운 것이다. 그 이후로의 삶을 돌아보면 힘들게 오랜 시간을 지금까지 견뎌왔다. 지나온 시간 속에 마음 놓고 편안히 웃어본 날이 몇이나 될까? 그 몇 번 되지 않는 순간에 의미를 두고 힘든 삶을 견뎌왔다.
시간이 가면 낡은 건물도 보수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마찬가지로 기억이 약해지고, 희미해져 지금은 연결된 사회망이 여기저기 구멍이 생긴다. 인간관계에 관한 여러 가지 의미를 새로 규정지어야 하는 시간이다. 사귀던 친구와의 관계도 약화되어 서서히 혼자가 되어가는 순간이다. 최초의 기억 그때 이후로 내 인생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과 사연들 그리고 고통과 환희, 즐거움과 무료함 이런 날들이 쉼 없이 스쳐 바람처럼 지나갔다.
우리들이 매일 걷는 ‘길’은 종종 인생에 비유된다.
‘길’ 위에 얹혀진 인생, 우리는 길 위의 인생이다. 걸어가는 매 순간 시간은 걷는 방향과 무관하게 흘러간다.
길을 걷듯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살아온 날들과 살고 있는 현실이 때로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지금’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해거름에 와 있는 길 위의 나그네 시점은 다르다. 고개 언덕에 서서 뒤돌아 보면 멀리 끊어지고 이어지는 외길 속에 새겨진 기억들이 여러 가지로 윤색되어 떠오른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모두 무채색으로 희뿌연 안갯속에 몽롱한 살아온 자국이고 흉터들이다. 지금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형체를 알아볼 수없을 정도로 흐려진 뿌옇게 변해 윤곽만 보이는 사건들도 있다. 잊고 싶어서, 잊어야 하니까! 잊는 순간도 있지만 잊으려 하는데도 잊지 못하는 순간도 있다. 잊으려 하면 오히려 뚜렷해지는 아픈 기억도 있다. 어쩜 기억마저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나 보다. 무엇에든 모두 연결되어 끊어내면 많은 것들이 딸려 나오는 복잡함으로 작은 것 하나마저도 내 의도대로 하지 못한다. 나이 듦은 그 관계를 이제 하나씩 풀어놓으며 가볍고 단순하게 살아가려 하는 시간들이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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