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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May 18. 2024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18. 억울함에 대하여


손녀가 “그건 아동폭력이야!!”라고 어린이도 자기의 권리를 단호하게 주장한다. 나는 왜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형에게, 아버지에게, 선생님에게, 친구에게 왜 그런 말을 나는 하지 못했을까?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을까?       


연서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엄마가 출근하고 초등학교 등교하기 전 공백 시간에 자습을 한다. 잠시 동안인 아침 자습시간에 내가 같이 있어준다. 그냥 옆에 있기만 하면 된다. 저녁에 하는 것보다 아침에 해치우고 저녁에는 실컷 놀겠다는 아이 나름의 슬기로운 판단이다. 며칠 전부터 아침에 공부하는 방에 들어가면 연서는 방해된다며 할아버지를 밀어낸다. “그~참” 하면서도 혼자서 공부를 해 나가니 기특하다고 생각하고 공부방을 나온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가고 나서 운동을 하고 오니 아내가 말해준다. “연서가 한 달간 아침에 늘 답지 보고 베끼며 폼만 공부하다가 엄마에게 들켜서 크게 야단을 맞았다”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답지를 가지고 있다면 답지 보고 베끼는 유혹을 나도 참기 어렵겠다”하고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 다음번부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딸은 연서가 자신을 속인 행위에 대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에 아내가 연서에게 물어보니 울먹이며 연서가 답하더라고 한다.      


“엄마가 밥은 주더냐?”

“응”

“할머니가 엄마였다면 쫓아내고 밥도 주지 않았을 텐데!”

그러자 연서는 갑자기 울먹이던 표정을 싹 바꾸며 “그건 아동폭력인데!” 하는 반응을 보였다.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나의 지난날이 생각났다. 학교에서 피 터지게 선생님에게 맞은 기억이 몇 번 있다. 내 잘못이면 인정하고 쉽게 잊어버리는데 이유도 모르고, 또는 다른 친구의 잘못으로 내가 벌 받은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한다.


중학교 물상시간이다. 옆에 재익이가 책상에 크게 내 이름을 칼로 새기고 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려서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다가 책상에 새겨진 내 이름을 보고 “김동일 일어서”라고 호명을 한다. 웬일인가 싶어 엉거주춤 일어서니 앞으로 나오라고 한다. “이 자식이 공부하는 책상에다가 칼로 낙서를 해” 하며 뺨이 터지라고 연타가 날아온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 꼴이다. 친구가 일어서서 자신이 칼로 낙서했다고 하면 내가 살아날 수 있겠는데 지레 겁을 먹은 재익이는 고개를 숙이고 숨어 버린다. 지치도록 두들겨 맞고 내 자리로 돌아오니 재익이가 멀거니 쳐다본다. 그날 그 친구의 행위는 비겁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지 않는 그 친구는 이후 평생 그런 모습으로 살았다. 물론 제대하고 나서 사소한 일로 싸우고 평생 보지 않는 친구가 된 지 오래지만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렇다.   

  

 고등학교 상업 첫 시간이다. 선생님의 표정은 무서워 보였지만 유머 넘치는 이야기를 계속하셔서 반아이들의 웃음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잡담이 나오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 한참 신나게 웃고 있는데 선생님이 소리를 질러 학급은 갑자기 얼음이 된다. “저 뒤에 웃고 있는 놈 나와!” 하여 쳐다보니 내가 타깃이 되어 있다. ‘이런 불행한 경우가!’ 하며 내심 잔뜩 주눅이 들어 교탁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이 “이 새끼가 선생님이 이야기하는데 웃어!” 하면서 시계를 풀어 교탁 위에 놓으며 ‘너~어 오늘 맞아서 죽어 봐라’는 몸짓이다. “이를 꽉 다물어”라는 주의 촉구와 함께 양쪽 주먹이 번갈아 날아오면서 얼굴은 샌드백처럼 맞아서 엉망이 되었다. 내가 맞는 상황을 보고 웃던 짝지도 불려 나와서 함께 번갈아 가며 두들겨 맞았다. 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리니 폭풍 같은 구타도 그쳤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씻으니 깨어져 나오는 어금니를 뱉으며 눈물이 났다. ‘왜 맞았을까?’ 웃은 행위만으로는 너무 큰 체벌이라 이해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무엇 때문에 벌을 받았는지 따져 물어보기도 무서워서 억울함을 묻어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시간이 지나갔다.     


한참 세월이 흘러 00 여고 교사로 임용되어 아이들을 인솔하여 동여고로 체력장 시험을 치러 갔다. 고등학교 상업 첫 시간에 나를 구타했던 그 선생님이 저 멀리서 나를 먼저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한다. ‘그 많은 제자들 중에 나를 어떻게 알아볼까?’ 하고 신기하면서도 별로 반갑지 않아 의례적인 인사만 하고 돌아오는 길에 언뜻 생각이 났다. ‘그렇다!‘. 그날 내가 맞은 이유는 첫 시간에 폭력으로 겁주어 학급의 분위기를 잡기 위한 방법에 내가 시범 케이스로 걸려든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 별 대수롭지도 않은 건수를 빌미로 만들어 학생을 심하게 구타했다. 지금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뿐 또 시간이 흘러갔다.     


1989년 전교조 사태로 해직이 되고 00 여상에 학교 분규가 발생했다고 지부 사무실로 신고가 들어왔다. 진상을 정확히 알기 위해 동료 교사 여럿이 학교를 방문했다. 원인 제공자인 교감은 고등학교 때 상업 선생님이었다. 대면하기도 싫은 사람인데 또 만나게 되었다. 그냥 모른 채 학교 상황만 파악하고 지부로 돌아왔다. 00여 상의 조합원이 그 뒤에 나에게 말을 전해 주었다. 그날 학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온 전교조 교사들 중에 자기 제자도 있었는 데 모른 채 하더라고 했다고 한다. 그 제자는 물론 나였다. ‘어떻게 그는 나를 그렇게 잘 기억할까?’하고 생각해 보니 짐작이 되었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로 지나치게 학생을 구타하고 나서 그 뒤에 보니 ‘별 문제되지 않는 학생이다. 자신이 심하게 체벌했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교사라면 미안하지 않을까? 그래서 수업시간마다 나를 보며 미안하고 머쓱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반복되는 심리상태가 나를 기억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짐작을 해본다.     


다시 세월이 흘러 2015년 퇴직을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깨어진 이를 발치하든지 보강하든지 처리를 해야 했다. 치과에 가니 크라운기법으로 덮어 씌우라고 한다. 1969년 구타당한 지 46년 만에 망가진 이를 보강하였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났다. 퇴직 후 3년 정도 경비근무를 했다. 경비를 하면서 그 선생님 생각이 났다. 늘 저주의 대상으로 연상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적개심을 해소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생님이 재직했던 학교에 전화를 하여 000 선생님 제자인데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연락하여 한번 찾아뵈려고 한다고 하니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묶어진 매듭을 풀지도 못하고 나의 젊은 시절 억울함은 그대로 공중에 흩어진다.     

나도 손녀처럼 당당하게 무엇 때문에 내가 벌을 받는지 그 이유를 알고 벌을 받겠다고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못했다면 그 뒤라도 찾아가서 왜 내가 그렇게 심한 구타를 당했는지 물어봐야 하지 않았을까? 아동 폭력이 아니라 교사의 폭행이었는데 말이다. 지나 놓고 보면 당연히 했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경우를 생각하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억울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 주고 벌을 주든지 해야 한다. 누구에게서든 맞지 않아도 될 이유로 심하게 맞거나 학대당한 경우는 쉽게 잊지 못한다. 폭력이 온 사회에 난무하던 군사정권시절에도 일절 체벌하지 않고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이 더 많이 계셨다. 모든 교사가 폭력교사는 아니었다.

‘왜 벌 받는지 이유를 물어보고, 더 두들겨 맞더라도 원인을 알아는 봐야지!’     


시대가 바뀌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2학년 손녀가 나보다는 훨씬 더 당당하다. 그런 면이 부럽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력을 즉시 해야 한다. 평생을 안고 가다가 결국은 풀지 못하는 나와 같은 경우는 없어야 한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땡비] #18. 억울함에 대하여

 - 못골 글 보러가기 :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https://brunch.co.kr/@ddbee/77

 - 흔희의 글 보러가기 : 학급 도난 사건 https://brunch.co.kr/@ddbee/76

 - 아난의 글 보러가기 : 억울한 이타주의자의 착각 https://brunch.co.kr/@ddbee/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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