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좋은 배우자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진이 SNS에 올린 글이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짝으로 이어진 상대방이 알고 보니 결혼식을 올렸고 혼인신고를 하기도 전에 결혼 생활을 정리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글이었다. 충분히 원망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글에 내비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질 않았다. 자신이 좋아했던 상대의 모습과 자신에게 상처를 준 상대의 모습을 분리하여 좋은 것은 좋은 대로 힘들게 한 것은 힘든 대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그의 글에서 눈길을 끈 것은 자신이 끌리는 사람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었다. 대략적으로 7개 정도의 항목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그중에 눈길을 끈 것은 마지막 항목이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생각해 보신 분에게 끌립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다소 우울해도 상관없습니다.]
자기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성장을 경험해 본 사람의 문장이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다. 연애 기간 동안 쌓아온 많은 자료를 근거로 사람들은 상대가 배우자로서 적절한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결혼으로 이 관계를 끌고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사실 좋은 배우자라고 하지만 이때 ‘좋다’의 의미는 굉장히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냉정한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더없는 다정한 이가 되기도 한다. 결국 배우자를 대상으로 ’ 좋다 ‘고 하는 말의 의미는 나와 잘 ‘맞다’라는 것이다. 나와 잘 맞는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나를 꿰뚫어 보고 상대를 이해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통찰력은 대개 갈등 장면에서 발휘되는 자질이다. 때문에 결혼 전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연인들은 많이 싸우고 싸움에 대처하는 서로의 태도를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는 애정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관계이다. 배우자 간의 주고받는 애정이 얼마나 성숙한가에 따라 결혼생활은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을 일구어가는 개인들이 성숙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성숙함은 ‘내적 통찰’에서부터 시작된다. 통찰력 있는 사람은 관계에서 갈등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사실 관계가 좋을 때의 상대는 나에게 지지나 애정을 보내주며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끔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의 장면에서 상대는 나의 민낯을 드러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싸우다 보면 싸움을 일으키는 문제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서로 생채기를 내기 위해 내뱉었던 말들만 남는 경우가 많다. 싸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상처받은 개인들만 피투성이가 되어 남을 뿐이다. 이때 만약 서로 주고받는 말에 꽂혀 내가 받은 상처에만 매몰되다 보면 갈등은 풀리지 않고 더 꼬여간다. 말 너머에 자리 잡고 있는 너와 나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 밑에 자리 잡고 있는 너와 나의 욕구(관계나 어떤 행위를 통해 내가 바라는 점)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통찰력 있는 사람은 말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의 감정을 살피고 너의 감정을 추측해 본다. 그리고 사건의 의미를 재조직한다.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검증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려 애쓴다.
사랑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행위이다. 때문에 통찰력 있는 개인들이 만나 사랑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반드시 성숙하다고 볼 수는 없다. 통찰력 있는 두 명의 개인을 하나의 연인으로 묶어주는 관계성이 필요하다. 두 개인을 하나의 연인으로 묶어주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것이 ’표현‘이다. 통찰이 사유라면 표현은 행동이다. 내적 통찰을 통해 나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했다면 그런 나의 상태를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랑은 생각(또는 감정)이 표현되어야 지속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장면들이 쌓이다 보면 사랑도 성숙해진다. 생각만으로, 성찰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성찰 뒤에 따라야 하는 것은 행동이며 사랑 또한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행동하지 않고 네가 먼저 나서주길 기다리기만 하면 변화는 없다. 밑도 끝도 없는 자존심 싸움의 고리를 끊고 누군가는 먼저 선순환을 일으켜야 한다. 다양한 이유로 갈등은 생기며 그것은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장면에 따라오고 가는 말들은 여러 가지겠지만 부부관계에서 날 선 말들이 함의하고 있는 욕구는 어차피 하나다.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으며 아낌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 관계가 깨질까 봐 생기는 불안 때문에 해서는 안 될 말이 나오고 상처를 주는 사람이, 상처를 받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말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의 욕구와 상대의 욕구를 통찰하고 이 과정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은 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실천하는 행동이다.
같은 것을 보고 나와 함께 웃으며, 분노하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난다면 그를 이해하기 위해 쏟아부어야 하는 에너지를 비축해 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사람마다 중요한 것이 다르고 생활양식이 다르다.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 크고 작음의 문제가 있을 뿐, 결국 결혼은 삶을 비슷한 궤적으로 맞추는 과정이다. 맞춰가는 과정에서 마찰은 빚어질 수밖에 없다. 좋은 배우자는 이 마찰로 생기는 불씨가 다른 곳으로 번져가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너를 들여다보며 그것을 너와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 이 과정을 기꺼운 마음으로 행하며 우리의 관계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함께 불씨를 잡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결혼 전에 많이들 싸워보길 바란다. 싸움의 과정에서 서로가 성숙할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니면 파멸하는 관계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길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싸움을 통해 배우자와 함께 성장하면서 결혼 생활을 잘 이어나가길 바란다. 아마, 우리는 잘해 나갈 것이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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