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좋은 배우자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 중 하나가 좋은 배우자의 기준이 무엇인지였다. 나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확고한 나의 기준을 말했다. 정치, 경제, 종교에 대한 관점이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이데올로기의 궤를 같이 하는 배우자와 생각을 나누며 사는 게 큰 재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해서 살아보니 위의 기준들은 빙산 위의 현상에 불과하다.
'좋은 배우자'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에서부터 막막했다. 좋은 ‘사람’이라 해서 좋은 ’배우자‘라는 보장이 없고 반대의 경우도 많다. 혼동되는 특징이 많아 고민하다 ‘배우자’에 특정하여 정의를 곱씹어서 내렸다. 내게 좋은 배우자란 관계를 잘 이어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와 정치, 종교, 경제관이 같은 궤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관계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만큼 관계에서 '의지'는 가장 중요한 기본점이다.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의지를 표현해 주는 이상적인 배우자를 ‘유니콘’이라 칭하며 그의 덕목을 말해보고자 한다.
결혼 전에 막연히 내가 ‘유니콘’을 상상했을 때는 싸우지 않고 말을 예쁘게 조곤조곤하는 배우자가 좋다고 생각했다. 신혼 초까지도 '갈등은 없는 게 좋다!' 갈등이 있더라도 우락부락 화를 내기보다 차분하게 대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부부관계에서 10번 잘하는 것보다 한 번 잘못할 일을 만들지 않아야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부정적 감정이 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참으며 자꾸 괜찮아지려고만 했다. 연애 때 싸우지 않은게 우리가 잘 맞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생각했던 내가 후회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갈등을 거쳐야만 비로소 깊은 관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갈등 없이는 나와 상대가 무슨 결핍이 있고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적당한 화제와 감정만 맴돌다가는 껍데기만 붙잡고서 서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 채 쭈욱 살아가게 된다.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관계를 이어나갈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다. 부정적 표현을 조곤조곤 잘 말하는 것은 문제를 크게 키우지 않을 수 있지만 관계의 동력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러 갈등을 거치며 일상적으로 배우자에게 ‘긍정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부부연차에 상관없이 배우자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지 확인받고 싶은 갈증은 인간이라면 늘 있다. 부모님 세대의 부부 중 서로 눈을 바라보고 손을 꼭 잡고서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부는 과연 몇이나 될까? 겸연쩍어 표현을 못하는 게 대부분의 부부다. 부부는 시간이 흐르면서 편안해지고 연인에서 가족으로, 동반자적인 관계로 흘러간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해서 시작한 관계에 의무감만 남아 당연한 관계로 착각한다. 가족이 되었으니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고 오히려 자신의 무리한 행동도 가족이니 이해해 주길 바랄 뿐 살가운 표현이 사라져 버린다. 배우자에게 '사랑한다 고생 많았다. 너라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서 나는 정말 행복하고 기뻐!'라는 말은 배우자에게 최고의 찬사이자 인정이다. 원수같이 싸우다가도 일상적으로 뿌려둔 배우자의 긍정적 표현 속 안정감, 따뜻함이 관계를 다시 견고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배우자에게 관계의 동력으로서 ‘긍정적 표현’을 끊임없이 보내는 것이 유니콘의 첫 번째 덕목이다.
유니콘의 두 번째 덕목은 내가 배우자를 이해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 노력하는 자세다. 내가 내 손으로 원하는 조건을 몽땅 담아 배우자를 빚어서 만난다고 한들 그 배우자와 살아보면 그 사람도 결국 나와 다른 타인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만나도 화목할 가능성은 ‘글쎄’하며 말을 줄이게 된다. 하물며 배우자는 다른 가족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자란 배우자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배우자가 평생 누적되며 느낀 감정선과 생각은 이해할 수 없다. 내게는 당연한 것이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우주 저 끝에 있는 것처럼 서로를 느끼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가늠할 수조차 없는 배우자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네가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문제는 대화로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다. ‘저 사람이 어련히 저랬을까? 뭔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자세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하려 노력해 줄 것이다’라는 긍정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경험이 하나둘씩 쌓여 견고한 부부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일단 들어보자. 속에서 부글부글 끓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줘 보자.
마지막 덕목을 쓰려니 유니콘은 점점 인간계에서 만날 수 없는 신계의 영역임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타협할 수 없는 마지막 덕목은 배우자를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이다. 결혼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잃거나 상대에게 모두 맞추라는 의미가 아니다. 부부관계는 장기전이라 일방에 맞추고 포기하고 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결혼 이후에는 부부 사이에 ‘너와 내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함께 정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라는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원가족으로부터 얻은 각각의 결핍과 상처가 있고 이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우리가 배우자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모순되게도 결혼을 통해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으면서도 부모님과 거리를 두는 것이 자칫 불효가 아닐까하며 원가족의 문화로 상대방이 맞춰서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남편’, ‘아내'의 역할만을 강요하거나 나아가 본인의 몫인 효도를 '사위',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대신해주길 바라게 된다. 이는 결혼으로 생긴 역할이 모든 걸 잡아먹어버리며 본질을 놓치게 되는 삶이다. 서로 본가로부터 독립되어 나와 만든 이 새로운 가정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배우자 관계에서 가장 '당연'해야 한다.
나는 배우자와 내가 오늘 무슨 빵을 먹었는지부터 가장 깊숙한 마음의 이야기까지 나누고 싶다. 어떤 친구들은 '왜 그걸 남편이랑 나누려 하냐'며 나의 높은 기대치를 거두라고 한다. 그러나 꿈은 크게 꾸라고. 현실에 유니콘이 없다고 해서 체념하고 꿈꿔보지 않는다면 나 역시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며 재미없는 기혼자들의 농담을 따라 할까 봐 두렵다. 그래서 앞으로 내 꿈은 유니콘이다. 배우자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지대를 펼치는 유니콘이 될 것이다. 어떤 이야기로 나를 식겁하게 하더라도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항상 여기 옆에 있어‘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유니콘이 되고 싶다. 현실에서는 일희일비하며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조랑말의 하루하루지만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그래서 나 조랑말의 장래희망은 유니콘이 되는 것이라 오늘도 다짐한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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