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할매와 할배에 대한 보고서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가 출산을 한 지 60일 정도가 지났다. 오랜만에 같이 점심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지는 길에 잠깐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아기새가 둥지에 폭 안겨 있듯, 아기는 엄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주위의 공기에 아기의 평온함이 아지랑이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저출생으로 인해 아기가 귀해진 시대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아기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머금는다. 귀엽고 어린 존재는 그런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담기는 것이 당연한 존재.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도 그랬다. 아이들은 젊다는 이유로 20, 30대의 교사들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와주었다. 40을 목전에 두고 언뜻 불안감이 들었다. 지금은 젊어서 아이들과 지내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아이들과의 세대가 벌어질 텐데. 그때 나는 어떤 것을 내세워 그 틈을 줄여나갈 수 있을까. 갓 학교에 발령받았던 해의 일이 떠올랐다. 칠판에 그날 시간표를 적어주는데 뒤에서 한 남학생이 말했다.
"와 오늘 시간표 장난 아니네. 1교시는 무서운 할매, 2교시는 착한 할매, 3교시는 그냥 할매네."
1년간 휴직을 하고 있을 때, 의도치 않게 동네 할매들과 안면을 텄다. 아이의 등굣길을 배웅해 주면서 같은 시간에 자주 마주치던 할매들이었다. 처음에는 눈인사만 하고 지나갔는데 얼굴이 눈에 익자 할매들은 자연스럽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주었다. 주로 들었던 이야기는 할매들이 어떻게 하여 황혼육아에 발을 담그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A는 원래 거주지가 인천이었다. 딸네 부부의 직장이 부산으로 이전되면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했다. 평일에는 부산의 딸 집에 머물며 8살인 손녀와 2살인 손자의 등하교(하원)를 거들어 주었다. 금요일이 되면 A는 다시 인천으로 올라가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목욕을 하며 쉬는 시간을 가졌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시 부산으로 내려온다고 했다. B는 사위가 해외로 파견을 가게 되면서 딸이 사는 아파트 근처에 이사를 와서 손주를 돌봐준다고 했다. 그녀는 젊은 시절 맞벌이 부부로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늘 죄의식을 갖고 지냈다고 했다. 아이가 대입을 앞두고 있을 때 조기 퇴직의 바람이 불기도 했고, 후회 없이 아이를 지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손주의 초등학교 입학시기와 사위의 해외 파견 근무가 맞물렸을 때 딸은 승진을 앞두고 직장을 계속 이어갈지 고민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B는 "네가 원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면 상관없지만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면 자신이 거들어 줄 테니 일을 계속하라"라고 조언을 했다.
휴직하기 전에, 아파트의 같은 동에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없었다. 휴직을 하고 오며 가며 얼굴이 마주쳤을 때도 자연스레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게 시선이 갔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머물렀지만 내 눈에 담긴 존재는 작고 귀여운 어린이들이었지 그 뒤켠에 서있던 할매들이 아니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파트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에서 한창 근무중일 시간에 주로 헬스장에 갔으니 함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주로 할매나 할배들이 있었다. 몇 번 마주치면 할매들은 먼저 다가와서 묻는다. '몇 동에 사냐. 몇 살이냐.' 커피나 사탕을 건네주며 말을 이어간다.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간병하며 짬짬이 틈을 내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었고 젊은 시절 무용수였으나 은퇴 후 하루를 보내는 것이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했다.
아이가 엉금엉금 기어 다닐 무렵,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친구와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오랜만의 만남인지라 아기들을 거실에 풀어놓고 식탁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니 두 아기들이 기어와 엄마들의 다리에 매달렸다. 짐짓 모른 척하며 친구와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니 아기들이 엄마들의 다리를 잡고 흔들며 ‘우아우어’와 같은 옹알이를 외쳐댔다. 그 모습을 보며 친구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아기는 관심을 먹고 자라나는 존재인 것 같아."라는 말을 내가 했고 친구는 동의한다는 표현으로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다. 다만, 청춘은 싱그럽고 그 자체로 축복이기에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젊고 싱싱한 것들에게로 향한다. 그러니 늙어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눈에 담기는 것보다 누군가를 눈에 담을 때가 많아지는 순간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한 관심이 누군가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익숙해지는 것. 사그라드는 나의 존재감에 휘둘리지 않고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세상은 그런 삶의 태도를 여유라고 부른다. 숨 가쁘게 앞만 보고 걸어왔던 길 위의 시간도 나이가 들면 천천히 흘러간다. 바지런히 걸어가던 속도를 늦춰가며 뒤를 돌아봐 줄 수 있는 여유. 앞서 내가 겪어왔던 것들을 바탕으로 뒷 시간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풋내 어린 무모함과 실패를 지켜봐 주고 곁을 내어주는 것. 늙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잘 늙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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