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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Aug 13. 2021

잠깐 쉬었다 가세요

삶의 속도를 늦추면 보이는 것들

하느님, 우리를 힘들게 마옵소서. 정 힘들게 해아 되겠거든 그 힘듦을 감당할 힘을 주옵소서 (황인숙, 기도)

코로나 블루가 오랜 일상이 된 요즘, 개인사업자든 직장인이든 모든 사람들의 심신이 극도로 지쳐가고, 피로도 또한 높아져가는 상황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언제면 이 위기가 끝날 수 있을까? 이럴수록 머리를 어지럽히고, 정신없게 만드는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쉼을 가져야 한다. IMF와 세계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두운 터널도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끝나지 않는 위기는 없다. 힘든 시간은 어떻게든 지나갈 것이고, 훗날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다.


바쁘고 여유가 없을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아마 그런 상황 속에서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고 힘든 시간은 개인에게는 큰 아픔과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숨이 멎을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운 알프스 산의 탁 트인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 중턱에 '천천히 가면서 즐기세요'라는 표지판을 보게 된다. 그 표지판을 본 후 속도를 줄이면 방금까지 빠르게 지나갔던 아름다운 풍광들이 다시 새롭게 눈앞에 펼쳐진다.


목적지를 향해 빨리 달려가거나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달리는 도로 주변에 펼쳐진 멋진 풍광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로 느림과 멈춤의 여정이 주는 선물이다. 여행의 목적지는 같을 수 있어도 여행의 여정이 주는 의미와 느낌은 다 다르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출발점이나 목적지가 아니라 그 사이의 여정이다
(데이비드 발다치)



빠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쩌면 많은 것을 그냥 지나치거나 잃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특히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하다 늦게 퇴근하는 날은 뭔가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지만 맘속으로는 삶의 고단함과 내면의 공허함에 생존의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삶은 어떻게 보면 목적지를 향해 가는 편도 여행이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빨리 가기 위해 속도가 빠른 탑승 수단을 선택하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 빠른 속도로 인해 여정이 순간으로 압축되어 버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시간적 여유를 두고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느리게 가는 국도를 선택해서 차를 몰기도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의 변화를 느끼고, 지역마다 달라지는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기도 한다. 평소 좋아하는 음악이나 방송을 듣기고 하고, 소문난 휴게소나 음식점에 들러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맛있는 먹거리를 사 먹기도 한다. 때로는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잠시나마 눈앞에 펼쳐진 꽃의 향연들을 눈에 담고 사진으로 추억하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은 두발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 그 과정에서 야생초와 야생화를 보기도 하고, 나무와 새를 관찰하기도 하고,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여정의 맛은 다양하다. 맛있다고 급하게 삼키지 말고 천천히 씹고 음미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느리고 여유가 있는 만큼 여정의 깊이와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삶의 여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쁘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하면서 말이다. 살면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멈추거나 느리게 가야 할 시점이 필요하다. 또 의도적으로 쉼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멀고 험한 인생의 여정을 더 충실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내가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고 아이의 사소한 성장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삶의 템포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속도를 늦추고 느리게 걸으면서 주변을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이다


인간은 연료만 주입하면 생생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또한 가지고 있는 자원(resource)과 에너지(energy)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않게 잘 쉬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가끔은 기분도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자원과 에너지가 회복되고, 기나긴 여정의 참 행복과 즐거움을 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바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삶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평생 꿀을 모으다 죽는 꿀벌처럼 평생 일만 하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꽤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형편에 맞게 살면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좋은 차와 더 큰 집, 남들보다 더 잘 자식을 키우고 싶은 욕심과 체면 때문에 쉼 없이 일하고, 죽을 때까지 돈을 모은다. 잠시도 숨돌림 틈이 없다.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바쁘지 않은 순간이 오면 불안감이 더 증폭한다. 바쁨에 중독되다 보면 어느 순간 바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남에게 뒤쳐지거나 경쟁에서 도태될까 봐 두려워진다.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삶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한다. 더 많이 바라고 더 많이 짊어질수록 인생의 고민과 고단함은 더 커져만 간다.


우리는 늘 행복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어쩌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행복을 발견하는 눈일지도 모른다. 돈 많은 중년은 나이 어린 청년들의 청춘과 젊음을 부러워하고, 청년들은 돈 만은 중년들의 성숙함과 안정된 생활을 부러워한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삶을 부러워하고, 결혼 안 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들의 안정된 생활을 부러워한다. 



행복한 가정은 전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안나 카라리나)


사람이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자신의 불행만을 크게 확대해서 보기 때문이다.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건강이 그렇고, 조용하게 지나가는 하루가 그렇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불행이 닥치면 운명을 원망하지만 정작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생활 속에서는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을 잃고 병원에 누워있거나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평온한 일상의 삶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도 평범한 일상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그것만큼 축복된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가 평안히 지나갔다면 지루하다고 불평하는 대신 무사히 보낸 하루를 감사하면 어떨까? 그리고 삶의 속도를 늦추고, 가끔은 멈춰서 주변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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