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슈족을 아시나요?
1933년 홋카이도 출신의 의사 작가이며, <실낙원>의 저자이기도 한 와타나배 준이치가 쓴 <코슈(孤舟)>라는 책이 2010년 일본에 출간되자마자 세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경기가 불황인데도 10만 부 이상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코슈는 한자로 '고독한 배'라는 뜻으로 '중년 퇴직 남성의 고독'을 그린 책이다. 당시 일본은 고령화 사회로 인한 노인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던 시점이었다. 코슈는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고독한 쪽배처럼 퇴직 후 인생 2막을 맞아 힘들고 외롭게 사는 중년 남성들의 어둡고 힘든 일상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자극했고, 큰 울림을 주었다.
'회사형 인간'의 말로를 통해 삶을 성찰해 본다
코슈는 대형 광고회사에서 임원까지 지낸 주인공 이치로가 퇴사를 하면서 겪게 되는 일상을 우울하고 처절하게 그려낸 책이다.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처럼 주인공은 오직 회사에서 성공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회사형 인간'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별다른 취미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이 딱히 없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퇴직을 맞이한 주인공은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꿈꾸지만 현실은 비참했다.
오로지 성공을 위해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온 그에게 그간 가족은 물론 친구에게까지 소홀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회사에서 더 이상 필요 없어지게 된 그가 가정으로 복귀했지만 환대는커녕 가족들의 냉대와 무관심은 계속되었고, 삶의 목적마저 잃어버린 그에게 할 일없는 나날은 후회와 눈물로 돌아왔다. 그동안 알고 지냈던 직장 부하직원들도 그를 외면했고, 업무로 알게 되었던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마음을 나눌 친구조차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설상가상 남편의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에 걸린 아내는 견디다 못해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참기 힘든 하루를 견디는 것뿐이었다. 회사형 인간으로 존재할 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성공을 얻은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이 소설은 보이지 않은 성공이라는 허상을 쫓아 많은 소중한 것들을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적잖은 교훈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코슈족은 더 이상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사히 신문은 이 책의 제목을 착안해 '고족(孤族)'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코슈족(孤舟族)'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살이를 버거워하는 남성들이 정년퇴직 후 가정에서 정 붙일 공간이 없고 사회에서 병균처럼 취급받는 중년 남성들을 말한다. 한국도 현재 '코슈족'이 급증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성공이란 내 맘대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크리스토퍼 몰리는 '세상에 성공은 한 가지뿐이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성공이라는 것은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관한 것이다. 사회에서 만든 정답과 성공 공식을 따라가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이 바로 성공이라는 것이다.
여태껏 우리는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참고, 인내하고, 희생하며 살아왔다. 성공을 위해서 모든 욕망과 욕구를 억누르고 미루어야만 했다. 나 또한 삶의 여정에서 회사형 인간으로 살면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항상 뭔가를 성취하려고 내 삶의 상당한 시간들을 쏟아부었다. 소중한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들을 온전하게 희생하면서까지 말이다.
성취를 하며 그간 참고, 견디고, 희생하면서 살아왔던 나의 삶이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집을 사고,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회사 임원으로 승진을 하면서 나는 내가 이룬 성취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취라는 짧은 순간의 행복감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또다시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달리는 일을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이런 성공의 쳇바퀴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절제력과 만족지연 능력이 성공의 핵심 역량이라고 배우면 자랐다
정해지지 않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 쉴 새 없이 계속 달린다. 이러다 내 인생은 끝나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만약 이를 악물고, 몸부림치고, 나를 잃어버리고, 삶을 희생해야만 뭔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성공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성공은 삶을 제대로 느끼고, 음미하고, 온전히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 세대는 어릴 때부터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맹목적으로 절제력과 만족지연 능력을 가지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왔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견디면 성공도 하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굳게 믿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코슈처럼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삶의 행복은 되려 멀어졌다. 이제부터라도 삶의 방향을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인생은 반려묘와 같다
피곤에 절어 파김치가 된 내가 삶을 사랑하고, 가족을 아끼고, 친구와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먼저 몸과 마음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면 힘든 삶의 여정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그런 일을 계속해서 찾다 보면 내 삶이 충만해지고, 행복도 저절로 찾아오게 된다. 어떻게 보면 행복은 애완묘와도 같다. 다가서면 도망가지만 내가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필요한 만큼의 돈만 있으면 된다. 구체적인 금액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
삶을 희생해서 얻는 성공은 허상에 가깝다. 우리들 대부분은 너무 거창한 목표를 하지고 있거나 아니면 목표가 없는 양극단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있다면 목표의 대부분의 돈과 관련된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게 모든 사람들의 목표가 되었다. 물론 돈을 벌면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하지만 삶의 궁극적인 본질은 아니다.
우리는 해외여행을 갈 때는 불안하기 때문에 돈을 충분하게 환전해서 간다. 쓰다 남으면 다시 환전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삶의 마지막 여정에는 충분한 돈이 남아 있더라도 환전을 할 수가 없다. 마지막 여정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추억과 좋은 기억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돈 때문에 삶의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삶의 여정에 필요한 만큼의 돈만 있으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임은 틀림이 없다. 돈만 벌다 죽는 그런 인생은 아닐 것이다. 돈은 언제든 벌면 되지만 소중한 사람들은 우리를 계속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전성기는 흐르는 세월의 속도만큼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도 나와 함께 세월을 먹고 나이가 든다. 내가 성공할 때까지 계속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너무 참고, 견디고, 희생하면서 자기 삶의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면 안 된다. 내가 충분히 쓸 만큼 돈을 벌었을 때는 사랑하는 부모님, 가족들이 내 곁에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살다가는 코슈족이 될 게 뻔~한 '인생의 정답'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삶의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 삶의 소중한 영역에 관심을 갖고, 의도적으로라도 챙겨야 한다. 눈만 뜨면 공짜로 주어지는 지금의 시간은 조만간 공짜가 아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답을 알면서도 틀리는 인생은 답이 없는 인생이다. 그러니 내 삶에 주어지는 모든 소소한 일상들을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부터 충실하게 맞이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온전하게 누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