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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Feb 25. 2021

내 영혼의 단짝, 소울 메이트!

#소울 메이트 #조강지처 #영혼의 단짝 #자가 발전 #추억의 저장소

'소울 메이트(soul mate)'라는 개념은 수천 년 동안 존재했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원래 인간은 '네 개의 다리, 네 개의 팔, 그리고 얼굴이 둘 달린 머리'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들은 앞뒤 구별 없이 잘 걸을 수 있으며, 힘과 기운이 아주 무시무시해서 자신을 지배하는 신들을 위협했다고 한다. 무언가 조치가 필요했다. 신들은 다양한 해결책을 논의했다. 어떤 신들은 인류를 영원히 절멸시켜 버리자고도 했다.


그러다 제우스는 한 가지 묘안을 내놨다. 신들에게 다양한 제물과 공물을 바쳐 온 인간을 반으로 나눠버리자고 말이다. 그런 형벌을 내린다면 인류의 힘은 약해지고, 자긍심이 꺾일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인간은 마치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듯 반으로 갈라졌다. 인간들은 당연히 비참해졌다. 그 후로 상처가 낫자 자신의 반쪽을 갈망하며 찾아다녔다.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줄 반쪽을 영원히 찾아 헤매게 된 것이다.



영혼의 단짝인 소울 메이트는 원래 하나의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존재가 알 수 없는 근원적인 이유로 콩깍지가 씌고, 불같은 연애를 하면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하나 즉, 소울 메이트가 되기 위해서다.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라고 질문한다.


예전 가난한 시절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을 붙여서 하염없이 뜨거워져서 가난한 민초들의 겨울밤을 따뜻하게 나도록 도왔고, 매일 따뜻한 밥과 국을 먹도록 해주었다. 다 타고난 후에도 재가 되어 눈 오는 날이면 미끄러운 빙판길에 산산이 흩뿌려져 지나가던 이들의 안전길을 만들어 주었다. 아낌없이 내주었던 것이다.


연탄재처럼 불타 오르는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 보았는가? 예전 노래 중의 '가슴앓이'라는 매우 유명한 노래가 있었다.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아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원래 가슴앓이는 생리학적으로 보면 '명치 부위가 화끈하고 쓰린 증상'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안타까워 마음속으로만 애달파하는 일'을 의미한다. 사랑한다면 최소한 이 정도의 가슴앓이는 한 번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https://youtu.be/pG9U12DQyUc


조강지처(糟糠之妻)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몹시 가난할 때에 고생을 함께 겪은 아내'를 뜻한다. 조(糟)는 술을 만들고 남은 쌀 찌거리, 강(糠)은 살 거야를 의미한다. 즉,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으며 산전수전을 같이 겪었던 아내를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조강지처는 소울 메이트와는 개념이 다르다. 영혼의 단짝을 의미하는 소울 메이트는 적합도 측면이 강하지만 조강지처는 의리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 첫사랑이었다. 대학 입학 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키스를 했던 이성이 바로 아내였다. 첫사랑에 관한 영화! <건축학 개론>에 나오는 어리바리한 대학생 새내기인 승민이 바로 나였다. 처음이기에 서툴고, 처음이기에 감정의 크기가 크다 보니 사랑이란 게 생각보다 달달한 것이 아니라 시리도록 가슴 아픈 것임을 일찍부터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 서로 간에 유일한 통신 수단은 집전화기였다. 여름방학 엠티(MT)에서 눈이 맞아 가슴이 뜨거워졌고, 엠티가 끝나 집으로 뿔뿔이 흩어진 후부터 나의 가슴앓이가 시작이 되었다. 더운 여름 날씨에 가슴앓이까지 더해지니 온 몸이 불덩어리였다. 그렇게 용기를 내서 첫 러브레터를 아내의 집으로 보냈다. 며칠 후 온 답장을 보면서 난 온 세상을 가진 것처럼 기뻤다. 그렇게 아내와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여름 방학 때 아내를 만나면 온 세상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삼십 도를 훨씬 넘는 뜨거운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흠뻑 젖은 손을 놓지 않았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몇 시간을 걷기도 했다. 빗 속에서 젖은 손을 놓지 않았다. 매일 같은 수업을 듣고 하루 종일 붙어 다녀도 부족했는지 주말에도 만나 데이트를 했다. (박x스 광고처럼) 20시 통금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아내와 함께 뛰어가던 적도 많았다. 그 당시엔 왜 그렇게 헤어지기가 싫었는지......




그런 아내와 살면서도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 경험하는 세상살이가 절대 호락하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자식 노릇 하는 것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깨달았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라고 하지 않은가. 2000년대 초반 장인어른의 췌장암 말기, 모친의 위암, 큰 애의 발가락 골절과 막내의 전신 화상까지 감내하기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닥쳤다.


심신이 많이 지쳤다. 혼자 동굴에 들어가고 싶었다. 예전에 마당에 키우던 개가 아프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것처럼 나 또한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은 적이 있었다. 청소년 시절에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그때 닥쳤다. 삶이 무엇인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등의 원초적인 물음이 마음속으로 깊게 파고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아마 이번 생을 처음 살아봐서 그런 것 같다.




그때 당시 책을 많이 본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결국 인생이란 조그마한 깨달음을 얻으면서 삶의 프레임을 확장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만 할 삶의 풀리지 않는 숙제들을 난 한 가지씩 풀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인생은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것임을 말이다.


그렇게 난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삶의 거친 여정의 파도에도 언제나 내 곁에서 묵묵하게 나를 지키며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난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내 인생이 하나이듯 내 사랑도 하나란 사실을. 소울 메이트와 조강지처가 있어 내가 힘들지 않게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퇴직을 한 후에도 아내는 여전히 내 곁을 묵묵하게 지키고, 남은 내 삶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있다. 연탄재처럼, 가슴앓이처럼 뜨겁게 사랑했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둘은 여전히 남세스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친구 아내가 우리 둘의 애틋한 감정의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원래 연애의 감정이란 게 무한정 용솟음치는 게 아니다. 연애 감정의 에너지를 만들려면 마음속 한켠에 꼭꼭 숨어있는 식어버린 발전기를 찾아서 가동해야 한다. 자가발전을 하지 않으면 절대 에너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발전기의 연료는 추억이고, 추억이 많을수록 발전기가 쉬지 않고 잘 돌아간다."


우리 둘에게는 큰 '추억의 저장소'가 있다. 그러니 연애 발전기는 계속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부애가 가족애, 그리고 전우애로 바뀌지 않으려면 둘 만의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예전의 감정으로 돌아가 둘 만의 데이트를 즐겨야 한다. 시간이 많았지만 돈이 없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시간만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소울 메이트가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른다. 게다가 조강지처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다. 이제 남은 시간은 소울 메이트와 달달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직장 다니느라 아이 키우느라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하면서 살아갈 계획이다. 신뢰(감정)의 계좌는 예금처럼 한꺼번에 적립되지 않는다. 적극처럼 차곡차곡 쌓아가야만 적립이 되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들의 소울 메이트는 옆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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