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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Dec 01. 2021

잘못된 세상의 프레임들

#프레임 #관점 #죽음의 수용소 #자유 의지 #자극과 반응 #선택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살육의 현장에서도 극한의 공포를 감내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이렇듯 똑같은 상황에 직면을 해도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프레임(frame)은 사전적 의미로는 '테두리, 창틀, 액자'를 가리키지만 심리학에서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향한 마인드셋',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심리학 용어다. 혹자는 '와꾸(?)'라고도 하는데 프레임과는 다른 뜻으로 해석된다. 


즉, 프레임을 이해하면 인간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문제와 위기에 봉착해도 현명하게 잘 풀어 나갈 수 있음을 말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인 최인철 교수가 지은 《프레임》이라는 책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프레임하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천만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 15년 동안 아무 이유도 모르고 감금되어 있다가 풀려난 오대수가 복수심에 불타 찾은 이우진에게 들은 대답은 그야말로 반전이었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냐.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딱 15년 만에 풀어 줬을까요? 란 거야 "


여기에서도 오대수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프레임하지 못한 것이다.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올바른 지부터 확인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사는 것이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세상을 '비교 프레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더 잘되고, 나은 사람들만 계속 올려다보니 자신의 삶은 항상 뒤처지는 것 같고, 찌질하고, 궁상맞아 보이는 것이다. 반대로 가난하지만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도와주면서 살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와 삶의 질이 고양될 수 밖에는 없다. 이렇듯 프레임은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 인생 키워드임은 틀림이 없다.


책에서는 또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자기 프레임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마음속의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서 자신의 감시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주목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이제는 그 감시카메라를 꺼버리고, 자신을 조용히 세상의 중심에서 내려놓으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일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세상이 짜 놓은 거짓 프레임들


현대사회는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의 SNS의 발달로 우리는 역사상 유래 없는 풍족한 정보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정보가 양질인지 아닌지 필터링해야 하는 어려움과 번거로움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부 인기 유튜브 방송을 보다 보면 그간 우리가 살아오면서 정답이라고 생각해왔던 많은 프레임들이 어쩌면 더 이상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 프레임들 대부분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규칙 속으로 우리들을 가둬놓고 통제하기 쉽도록 짜 놓은 것들이다. 그 대표적인 프레임들이 바로 '빚을 지면 절대 안 된다', '실패를 하면 안 된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해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취업을 해야 한다', '공무원이 가장 안정적이다', '사업, 주식과 코인을 하면 망한다', '퇴사를 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결혼을 해야 한다'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지속적으로 우리들의 인생에 파고들어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프레임들이다. 우리들로 하여금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만들게 하고, 쉽게 그 프레임을 탈출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들의 삶을 항상 그 자리에 머물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짙게 깔려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경험해 본 세상은 이와는 정 반대였다. 대출은 레버지리란 세련된 용어로 투자뿐만 아니라 재산을 증식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었으며, 실패는 성공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과정이었다. 성공적인 삶의 필수 조건인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대기업이든 공무원이든 노동 소득자가 되면 안 되는 것이었고, 사업은 오히려 좋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고용해 레버리지 함으로써 그들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부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또한 제대로 된 주식이나 코인 투자는 부를 증식시키는 좋은 수단이었으며, 퇴사는 자기 인생을 찾기 위해 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또한 결혼은 국가가 사회유지를 위해 짜 놓은 관습이었을 뿐 자신의 행복이 우선인 사람에게는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이전에 만들어진 사회적, 관습적 프레임이 적지 않게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씌우져 있다. 




잘못된 프레임을 깨고 나와야 정말 내가 원하는 것들을 수월하게 얻을 수 있게 된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대로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이 짜 놓은 거짓 프레임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벗어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성취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기회의 땅이지만,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위험천만한 곳으로 보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많은 시간들을 낭비하고 에너지를 소비하곤 한다. 우리가 프레임을 이해하고 알아야 할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올바른 프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정된 시간이라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줄여야만 삶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프레임의 가장 궁극적인 단계는 바로 자각(自覺), 즉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삶의 철학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찾는 과정일 것이다. 


모든 책에서 말하는 자각, 각성, 깨달음의 궁극적 단계는 바로 자신의 삶의 프레임을 "지금, 여기에(Here And Now)"에 머물도록 이끄는 것이고, 그동안 자신을 힘들게 했던 생각과 감정의 늪을 벗어나 현재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



세상을 바꾸거나 시간적,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들이 있다. 바로 어릴 때부터 배우고 알았던 획일화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적 프레임의 의도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이를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맞게 리프레이밍(reframing)한 경우다. 다른 말로 하면 '관점을 전환', 또는 '관점의 재구성'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기존의 프레임을 다른 관점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자기가 바라보거나 처한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요즘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만드는 모든 조치가 오히려 부동산 거품을 만들고 있다. 부자들은 정부와 반대로 한다는 뉴스를 들을 때 어쩌면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바로 부자들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말로 하면 리프레이밍을 잘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면 평생 동안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일이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삶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면 어떤 선택이 맞는지, 어떤 방향이 맞는지 한번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으며,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어 우리의 성장이 행복이 좌우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양쪽 모두에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항상 위기는 기회로 이어지지만 항상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적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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