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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y 08. 2022

'놀멍, 쉬멍, 걸으멍' 영혼의 안식처 올레길(2탄)

먹거리로 배도 부르고, 멋진 풍광으로 안구정화도 하고 나니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막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아직도 우리에겐 12척의 배가, 아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음을 지각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문제 발단(트레킹화 밑 깔창 박수 사건)이 시작된 장소를 향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칠십리시공원 출구에서부터 올레길 7코스 탐방이 재시작되었다. 처음 도전하는 올레길 탐방이고, 경험이 전문하다 보니 일반 올레꾼들이 쉽게 찾는 간세, 리본, 화살표 등의 올레길 표식들이 처음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의 코스 이탈을 반복하고, 경험이 쌓이면서 올레길 코스 탐방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마치 보물찾기 하듯 올레길 표식들을 찾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올레길 표식 아시는 분들을 패~~스)

간세 : 간세는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이름으로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라는 뜻인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 왔다고 한다. 정방향으로 가는 경우 간세 머리가 향하는 쪽이 길의 진행 방향이다.  

리본 : 제주의 푸른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 리본과 제주 대표 특산품 감귤을 상징하는 주황색의 리본 두 가닥을 한데 묶어 주로 전봇대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아 멀리서도 눈에 잘 띄므로 보물찾기 하듯 리본만 따라가면 된다. 

화살표 : K모양의 화살표는 주로 갈림길에 붙어 진행 방향을 알려준다. 파란색 화살표는 정방향, 주황색은 역방향으로 K자의 화살표 모양인 < 모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그 이외에 현재 거리와 총거리가 표시되어 있는 '플레이트'가 있고, 특별히 주의가 필요한 위험 구간이나 일시적으로 우회해야 하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탠드'가 있으며, 올레 각 코스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현무암 '표지석'이 있고, 장애우가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간세 안장의 '휠체어 구간 표시(S는 시작점, F는 종점)'가 있으며, 각 코스의 시작, 중간, 종점에 설치되어 있는 '스탬프 간세'가 있다. 
간세 / 리본 / 화살표
스탠드 / 휠체어 구간 / 스탬프 간세




올레길 탐방의 묘미는 차를 타고 무심하게 지나칠 때는 몰랐던 제주만의 숨겨진 매력을 걸으면서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야자수와 수목으로 울창한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제일 먼저 황우지 선녀탕을 만났다. 담수처럼 투명한 선녀탕의 모습이 멀리서도 한눈에 뜨일 정도로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아리따운 선녀는 온데간데없었고, 왠 건장한 남성 세명이 스노클링 장비로 주변 관광객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봄바다의 정취를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투명하고 깨끗한 황우지 선녀탕


뛰어들고픈 욕망을 가까스로 제어한 후 걷던 방향으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해안 산책로를 걷는 내내 우리 커플은 서귀포 바다가 제공하는 태평양 스타일(?)의 아름다운 섬과 오션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제주시 바다와는 또 다른 감흥을 느꼈다. 이어서 만난 외돌개의 자태 또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외돌개 주변은 오메가 모양으로 해안선이 만들어져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비취색, 옥빛, 에메랄드 빛, 아이스 블루, 사파이이어 블루, 쪽빛으로 변하는데 수채색 바다의 색감이 외골개 주변 해안절벽, 거친 파도의 포말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도 바다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보는 시선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색과 주변 풍경


외돌개는 만선을 약속하고 먼 바라도 떠난 하르방(할아버지)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밤낮으로 기다리던 할망(할머니)가 애타가 부르다 결국 돌로 굳었다는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바다 위에 외롭게 서 있다고 해서 '외돌개'라는 명칭이 붙었다. 지질학적으로 보더라도 외돌개는 화산 폭발 때 주변 암석이 파도에 의해 침식될 때 강한 암석만 홀로 살아남아 굴뚝 형태의 돌기둥이 되었다고 하니 외롭게 서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인 듯하다. 


자세히 보면 외돌개 상부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마치 사람의 머리 모양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서 외돌개의 형상도 달라 보인다고 한다. 외돌개 주변이 올레길 7코스 중 최고로 손꼽히는 이유는 바로 멋진 해안절벽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안선 산책길이 많이 꺾여 있는 이유도 아마 해안 절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올레길 관계자 덕분이 아닐까 생각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얀 백사장과 옥빛 바다, 얕은 수심과 투명한 바닷물, 탁 트인 해변과 조용히 밀려드는 파도 등 마치 동남아 유명 해변에 온 것 같이 여성처럼 아기자기하고 감성 돋는 곳이 제주시 바다라면, 가파른 해안 절벽, 거친 파도가 연신 소리를 내며 만들어 내는 하얀 포말과 파랑 등 웅장하지만 뭔가 고독한 자태를 보여주는 남성적인 곳이라고 서귀포 바라라고 하면 맞을까? 멋진 휴양지에서 달달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제주시 바다를, 시원하게 탁 트인 곳에서 근심과 걱정을 씻어 버리고 싶다면 서귀포시 바다를 추천하고 싶다. 


마치 동남에 유명 해변에 온 것 같은 제주시 해변 (김녕 성세기 & 월정리 해수욕장)


이어지는 돔베낭길은 외돌개에서 월평마을까지 2.6km 올레 명품길 구간이다. 돔베낭길은 원래 '돔베낭골'로 돔베낭(동백나무)이 많은 굴(골짜기)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제주 올레 이사장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라고 말할 정도로 멋진 산책로다. 잘 가꾸어진 산책길과 주상절리, 해안을 도는 바당 숲길이 멋질 뿐만 아니라 걷는 내내 나무 사이로 문섬과 범섬을 보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짝꿍이 훗날 꼭 딸내미 데리고 다시 오고 싶단다. 단점이 있다면 휴대폰 사진을 너무 남발한다는 점!!!이다.


돔베낭길을 걸으며 찍은 풍경


이어서 도착한 곳은 속골! 한라산 일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흘러서 마지막 바다로 합쳐지기 전에 이 골짜기를 지난다고 한다. 온종일 바다만 보고 가는 올레꾼들에게는 좁은 골짜기를 통해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가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기쁨을 주기도 한다는데 이 날은 오랜 가뭄으로 물줄기가 매우 약해 아쉬웠다. 계곡과 바다가 이어지는 속골은 마을 주민들이 더위를 식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라산에서 발원한 물이 마침내 바다와 만나는 속골


속골을 지나면 올레꾼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낀다는 그 유명한 '수봉로'를 경유하게 된다. 수봉로는 세 번째 코스 개척 시기였던 시절, 올레지기 김수봉 님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길이라고 한다. 좁은 소로와 몽돌을 따라 걷는 생태길은 이름 모를 야생화들, 그 너머로 보이는 범섬, 햇볕에 반짝이는 파도 물결의 오션뷰가 늘 함께 동행해 한껏 마음을 들뜨게 해 주었다. 


이어서 도착한 곳은 공물(깍), 일냉이당, 그리고 법환포구였다. 자그마한 항구인 법환포구는 범섬을 배경으로 포구에 정박되어 있는 파란색 고기잡이배가 가지런하게 묶여 있는 모습이 감성 사진을 찍기에도 너무 좋았다. 계속 걷다 보면 제주 사람에게 썩은 섬이라고 불리는 서건도가 나온다. 이 섬은 밀물 때가 되면 섬이 되지만 썰물 때가 되면 해안과 연결되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서건도(썩은 섬), 강정천을 지나 이어진 해안 산책가


서건도를 지나면 해군기지 건설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강정마을이 나온다. 마을의 오랜 자랑이라던 강정천은 오랜 가뭄에 계곡물도 얕게 흐르고 있어 아쉬움을 주었다. 강청마을을 지나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니 드넓은 초록 언덕 위에 SUV 차를 잠시 세워놓고, 차 트렁크를 열어 놓은 채 그 밑 캠핑의자에 편하게 앉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먼바다의 수평선을 응시하는 30대 남성의 옆모습이 왠지 고독하고,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SUV로 차를 바꾸어야 하나???


해안길을 걷다 보면 좌측으로는 산방상, 송악산, 가파도, 마라도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한라산과 주변 오름들의 모습이 장관을 연출한다. 오늘 올레길 탐방에는 너무 많은 공떡을 먹은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불렀다. 아마 아름다운 풍광에 배고픔도 잊었던 것은 아닐까.


해안길과 정겨운 바닷가 마을을 지나면 마침내 종점인 월평 아왜낭목 쉼터에 도착하게 된다. 제주 사람들은 월평 마을을 '아왜낭목'이라고 부르는데 '아왜나무'의 제주 사투리라고 한다. 푸른 잎에서 윤이 나는 정원수인 아왜나무는 한라산을 타고 내려오는 땅의 정기가 바라로 흘러가지 못하게 하려고 주민들이 심었다고 한다. 마을을 지키는 보호수인 셈이다.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레길 7코스의 대장정이 끝났다. 


법환포구에서 찍은 풍경




올레길 7코스 총 35,336보. 22km!


올레길 7코스는 제주섬 주변을 잇는 올레길 25코스 중 7번째로 총길이 17.6km로 5~6시간 소요되며, 꽤 긴 시간 동안 서귀포시의 아름다운 섬과 해변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다. 올레길을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면 이 코스를 도전하길 적극 추천하고 싶다.  


난 섶섬, 문섬, 그리고 범섬을 바라보며 걷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만약 섬이 없다면 아마 서귀포 앞바다는 밋밋했을 것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되었다. 가진 젊음과 열정이 모두 전소되고, 삶이 극도로 지칠 때 남자들은 그들만의 동굴(man's cave)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어쩌면 섬 또한 빠른 속도로 달리던 현대인들이 세파에 시달리고 관계에 치일 때 찾고 싶은 미지의, 신비스러운 존재는 아닐까? 길이 끝나는 막다른 곳에 섬이 있으니깐. 




올레길 7코스 완주 이후 우리 커플은 올레길 매력에 푹 빠져 가지고 갔던 차는 주차장에 내팽겨둔 채 남은 기간 6, 8, 9코스를 연이어 완주했다. 사실 아름다운 풍경을 계속 본다고 해서 가슴 설레고 벅차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올레길의 매력은 어쩌면 아름다운 바다, 오름, 마을, 숲길 등 제주가 가진 천혜 자연을 천천히 도보 여행하면서 맘껏 음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동행자(짝꿍)와 쉬고 걷고 사진 찍기를 반복하면서 많은 대화도 나누고, 순간의 소중한 추억들을 함께 소복소복 쌓아갈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올레길 완주 후 숙소로 돌아와 씻고 탁자에 마주 앉아 그날의 즐거웠던 순간을 복기하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얼큰하게 한잔 걸치고, 배도 불러오면 그 순간만은 부모라는 책임감과 역할, 모든 근심과 걱정, 욕심과 욕망마저도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이어지는 꿀잠도 참 오래간만이었던 것 같다. 


이런 올레길 탐방의 경험은 퇴직 후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도 던져 주었다. 너무 좁은 세상에만 자신을 가둬 살지 말라고, 그리고 몸도 마음도 더 아끼고 사랑해 주라고 말이다. 남은 삶의 시간은 올레길의 교훈을 실천하고 살 생각이다. '놀멍, 쉬멍, 걸으멍'이란 올레길 구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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