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May 02. 2022

탐라 한달살이에서 깨달은 것들

#행복 칼로리 # 도보여행 #제주 바다와 오름 #전우애 #추억 만들기

꿀잠을 잔 것 같은, 아니 꿈같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탐라 한달살이는 퇴직 후 상실의 파랑(浪)이 지나간 감정의 격랑에 작은 일렁임을 만들어 주었다. 마치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 어두운 숲 속, 둥지를 잃은 아기새가 두려움에 떨며 자지러진 울음소리로 울부짖을 때 나타난 어미새처럼 척박하던 내 삶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간밤의 악몽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도 아침 햇살이 비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짙은 안개도 격랑의 파랑도 온전히 내가 만든 감정이었다. 감정의 언어와 온도에 귀를 기울이니 안개가 걷히고 뿌옇던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탐라 한달살이도 이제 오늘로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고 자문할 정도로 즐겁고 유익한 삶의 체험이었다. 지구별에서의 인생 여정에서 볼 때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기간이었지만 탐라 한달살이는 내 인생의 항로를 바꿀 실마리를 어느 정도는 찾은 것 같아 매우 소중한 경험 자산이 된 것 같다.


앞만 보고 분주하게 달려왔던 다람쥐 쳇바퀴 같은 단조로운 일상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삶의 의미와 재미를 듬뿍 주는 여행이라는 체험 활동에만 전념함으로써 고단했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의 단서도 어렴풋하게 찾은 것 같아 퇴직 후 여느 때보다 마음이 가볍고 홀가분한 느낌이다.


또한 탐라 한달살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과 프레임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내게 주었고, 내려놓기의 특효약인 '쉼'과 '여행'이라는 처방을 통해 지친 심신과 영혼을 달랠 수 있는 시간도 주었다. 그간 나를 혹독하게만 대했던 현실에서 벗어나 나를 생각하고 나를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시간도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난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오로지 여행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간 짝꿍과 말로만 가자던 제주 여행을 실행으로 옮기고, 가고 싶었던 여행 코스를 직접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오래간만에 보고, 다니고, 먹고, 대화하면서 가장 원초적인 감각으로 여행의 즐거움에 몰두했다. 가슴 설레고, 벅찬 경험이었다.


오랜만에 아니 생애 처음으로 사랑하는 짝꿍과 단둘이서만 여행하는 시간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오래 살았지만 어쩌면 전혀 다른 삶의 영역에서 다른 삶의 문제로 부대끼며 살아왔을지도 모를 서로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도 가져다주었다. 그간 말하길 꺼려했던, 쌓일 수밖에 없었던 감정의 앙금과 찌꺼기를 배출할 기회가 주어졌다.


만약 나처럼 퇴직 후에도 당장 뭔가를 해야겠다고 스스로를 옥죄고 압박하는 시간이 지속되는 분들이 있다면 잠시만 내려놓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꼭 한달살이는 아니지만 장기간 여행을 하길 추천하고 싶다. "살다 보면 괜스레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가끔 어디 훌쩍 떠났으면 좋겠다(노래 가사 맞음)"는 생각이 들 때가 바로 여행의 타이밍이다.


돌아보면 그동안 나를 너무 다그치고 당금질 하기만 했던 것 같다. 문제가 없는데도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너무 옥죄기만 했고, 또 그래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문제에 집중하면 오히려 문제만 더 크게 보일 뿐인데 말이다. 그럴 땐 문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삼자의 시선에서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정의해야만 문제의 실체가 보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글을 적으면서 나처럼 탐라 한달살이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여건에 있는 분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사실 이 글을 쓰는 게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꼭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보다는 내가 느낀 경험과 감정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이렇게 글로 남기기로 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 주시길 당부드린다. (_ _)/




탐라 한달살이의 단점


누구나 꿈꾸는 탐라 한달살이도 단점은 있다. 흔히 비용(cost)으로 통칭하는 시간과 금전이 예상보다 더 소요된다는 점이다. 언제 오겠냐 싶어 (선 실행 후 생각) 조금의 갈등도 없이 질러버리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서울만큼 비싼 제주 물가에 가성비 음식을 찾긴 쉽지 않았다.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은 아무리 유명한 음식점을 가도 먹었던 음식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짜고 매운 경상도 음식에 오래 길들여진 탓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으로 짝꿍과 함께 한 달을 보내면서도 난 집밥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이게 무슨 궤변인가? 말이야 방귀야? 짝꿍이 옆에 있는데도 말이다.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 삼식이인 나나 집순이인 아내에게 자주 사 먹는 제주 음식은 사실상 만족스럽진 않았다. 배는 불렀지만 심리적 허기가 자주 찾아왔다. 짝꿍도 자기가 만든 집밥이 그립다는 웃픈 얘기에 난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우린 집밥 삼식이 부부임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건 한 달이 끝나 막상 집으로 복귀할 때가 되니 나와 짝꿍이 심한 '휴가 후유증'을 겪게 되었다는 점이다. 퇴직한 나와 전업주부인 짝꿍이 이왜진(이게 왜 진짜임)??? 퇴직한 나도, 결혼 후 26년 만에 육아 뒷바라지에서 벗어난 짝꿍도 생애 처음으로 모든 부모의 책임과 역할에서 벗어나 향락적인(?) 여행을 추구한 데서 오는 일탈 행위와 죄책감에서 비롯된 감정이었을 것이고, 여행 중에 느꼈던 해방감이 다시 일상생활로의 복귀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도 있었을 것이다. 여행 중엔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탐라 한달살이의 장점


어떤 여행은 인생을 바꿀 수 있지만 어떤 명품과 자동차도 인생을 바꿀 수 없다. 행복전도사인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재미의미를 양축으로 놓은 '행복 칼로리표'라는 자료를 설명하면서 재미와 의미가 가장 높게 나온 활동이 당연 여행이라고 그의 강연에서 밝혔다. 재미와 의미가 높다는 말은 행복감이 크다는 말이다.




소유를 위한 소비보다는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할 때 더 크고, 지속적인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소유는 일시적 행복감을 주지만 경험은 평생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소유는 비교를 유발하지만 경험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관계 측면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낼 때 가장 큰 행복감을 준다고 하니 결론적으로 탐라 한달살이의 첫 번째 장점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것도 국내에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제주도에서 한달살이 여행을 하기 때문에 행복감이 가장 크다는 점일 것이다.  




탐라 한달살이의 장점 두 번째는 부부간의 애정이 진화한다는 점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 주인공인 상우(유지태님)는 변심한 애인인 은수(이영애님)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다. 그렇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짧다. 그러나 사랑의 종착지인 결혼의 대가는 더 혹독하다.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돈벌이도 생판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고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살다 보면 '전생에 내가 뭔 죄를 지어 이런 생고생을 하냐'라며 마지의 영역인 전생의 카르마(업보)까지 들춰내기도 한다. 얼마나 힘드고 답답하면 그럴까. 자녀 중심의 결혼생활은 얼마 남지 않은 부부간 애정마저도 죄악시 여기는 풍토로 바뀐다. 사랑과 애정을 굳이 사랑과 애정을 굳이 우정과 전우애란 말로 포장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억만 겁의 불만과 오해가 쌓이고 풀리고를 반복하다 결국 무늬만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돈벌이, 책임과 역할 등의 부모 노릇에만 급급하다 보니 자연스레 부부간 애정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선 아이 앞에서 애정을 표시하는 것도 금기시되는 풍토 때문에 부부간 애정도 표현할 방법도 쉽진 않다. 평소 잘하려고 애써 왔는데도 막상 대화가 깊어지면 자기 불만과 변명만 늘어놓으며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탐라 한달살이는 우리 커플 간 사랑과 애정을 더 돈독하고 깊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둘 다 삶의 모든 책임과 역할, 생계 부담에서 벗어나 평소 하고 싶었던 여행에만 전념하다 보니 둘만의 애정이 더 깊어졌다. 부부 관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 가트만 박사가 '행복한 부부는 깊고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부부'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부부는 여행 내내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친밀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관계의 변화에서 여행이라는 '환경 설정'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꼭 붙어 다녀야만 하는 한달살이 여행의 특성상 서로 이런저런 속내를 많이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옥 같았던 올레 7, 8코스를 함께 하면서 형성된 끈끈한 전우애와 전투 체력은 다른 어떤 것보다 돈독한 유대감을 형성해 주기도 했다.


험한 세상의 풍랑 앞에 조각배를 탄 것처럼 총성과 포성이 빗발치고, 죽음의 사선을 넘나드는 경험을 함께 한 전우끼리 앙금과 불만이 생길 리 만무하다. 덕분에 우리 커플은 애정의 관계에서 끈끈한 전우애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 깊고 진한 국물처럼 관계의 깊이가 다듬어져 가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설레고, 오름에 가슴 벅찼던 우리 커플은 환상적인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평생 이야깃거리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부부가 오랫동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둘만이 경험한 추억이 많아야 한다. 애정도 전우애도 그냥 생기지 않는다. 각자 마음속에 있는 연애 발전기를 가동해야 한다. 근데 말이다. 발전기를 가동하려면 연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둘만의 행복한 추억'이다. 우리 커플은 아마 평생 돌릴 연료를 이번 탐라 한달살이를 하며 다 비축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탐라 한달살이의 세 번째 장점은 도보 여행을 하면서 느긋하고 여유 있게 여행지를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유명 관광지의 경우 평일에 시간을 안배해 차량 정체나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우리 커플은 하루는 차량, 하루는 도보로 여행하기로 나름 규칙을 세웠다. 도보 여행은 차를 가지고 다니는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두발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여행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시간적 제약이 많은 일반 여행객의 경우 최대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관광지를 방문하려고 무리한 여행 일정과 여행 동선을 짜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렌터카는 필수적이다. 각종 SNS나 유튜브에서 홍보하는 맛집과 핫플 위주의 여행지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둘러보며 인증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비싼 관광지 바가지요금을 내면서 '내가 이러려고 제주도에 왔나???'하고 후회하기도 하며, '이 정도면 괜찮았다'며 스스로 위안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제주도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도보나 버스를 가급적 이용해야 한다. 도보나 버스 여행의 장점은 매우 많다. 고유가 시대에 렌터카 비용이나 유가를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또한 차를 이용할 때 보이지 않던 풍경과 현지에서만 느끼는 여행의 감흥을 얻을 수도 있다. 렌터카의 속도와 달리 천천히 여행할 때 느끼는 재미와 감흥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한다.


도보나 버스 여행을 하면 현지 제주 사람들의 방언도 자주 들을 수도 있고, 우연한 만남을 통해 뜻밖의 에피소드도 만들 수 있으며, 차를 운전할 때 가져야 할 각종 제약에서 벗어나 맘껏 여유롭게 먹고, 마시는 행위를 할 수도 있으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맘에 드는 여행지는 두 번 이상 방문할 수도 있다.


제주민속오일시장은 두 번 방문하기도 했다. 첫 번째 방문 시 도보 여행 스케줄을 너무 무리하게 짜서 다른 여행지를 다 돌다 피곤한 상태에서 방문해 시간적, 육체적으로 힘들어 제대로 그곳의 찐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숙소와도 가까웠지만 여행 스케줄도 빈 날짜가 생겨 우린 제대로 그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SNS나 유튜브 위주로 방문한 첫 번째 방문과는 달리 두 번째 방문은 여행객들이 잘 가지 않는 시장의 구석구석을 제대로 다니며 훑기 시작했다. 묘목과 화훼코너도 활기찼고, 전원주택지에 심을 수종과 화종들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수산코너는 여느 코너보다 활기와 생동감이 넘쳤다. 제주를 대표하는 자리돔과 갈치는 때깔과 볼륨이 남달랐다. 특히 자리돔은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 선어로 5월 말 서귀포 보목 포구와 모슬포는 자리돔 축제로도 유명하다고 하니 5월 제주를 방문하시는 분이 있다면 꼭 방문하길 추천드린다.


오일장이 진행될 때마다 생성되는 할망 채소코너는 할망이 직접 채취한 봄나물과 채소들로 볼거리가 꽤 솔솔했다. 대장간과 옹기 코너도 볼거리가 많았고, 후미진 곳에 위치한 음식점은 여행객보다는 현지인들이 꽤 많이 이용하고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도 했다. 가성비 높은 손짜장과 수제 돈가스도 사 먹고 싶었지만 배가 불러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구석구석 다니다 보니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찐 사진 핫플을 발견할 기회도 있었다. 시장 뒤편에 위치한 오일문화광장 주차장에는 철제로 만든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면 바로 앞의 초록 초록한 청보리밭의 풍경과 더불어 오분 간격으로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우리만 아는 비밀 핫플을 찾은 것 같아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특히 청보리가 시원한 바람에 일렁이며 물결을 일으키는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한동안 우리 커플은 그곳에 앉아 청보리의 물결과 비행기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다만 좋은 장소를 만들어놓고도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시장 관계자들의 태도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천혜향 3kg 1만, 고구마 5kg 1만, 토마토 3kg , 표고버섯 한 봉지 각 5천, 이 모든 게 3만 원!!! 여행 한 달 내내 다 먹는다고 넘 힘들었음 ㅠㅠ
화훼코너 / 할망채소코너 / 폐계 4마리 1만원과 닭발
제주에서 유명한 자리돔 / 옹기코너 / 대장간
오일문화광장 주차장 철제 조망대 / 청보리 물결과 공항 근접샷 / 국밥과 보말칼국수


도보도 좋지만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면 더 많은 장점을 느낄 수 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주변 풍경을 더 자세하게 볼 수도 있고, 피곤하면 버스에서 자기도 하고, 버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주변을 더 둘러보면 되기 때문에 자차를 이용할 때보다 장점이 훨씬 많았다. 특히 신선들만 할 수 있는 낮술도 할 수 있으니 주당인 내게 도보나 버스 여행은 너무나 편하고 심신을 자유롭게 했다.


버스를 타고 송악산을 가던 중 환승버스가 오길 기다리던 중 시간이 남아 우리 커플은 여유 있게 인근 마을을 둘러볼 기회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인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처럼 우리 커플은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집집마다 한두 그룻 심은 하귤나무 열매들이 돌담 위에 주렁주렁 열려있는 일상의 마을 풍경이 너무나 제주스러웠고, 마을 곳곳에 심어놓은 비자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재잘거리는 소리도 너무 좋았다.  


송악산 둘레길 산책을 마친 후 아담하고 예쁜 카페에서 멋진 오션뷰를 보며 먹은 파전과 제주막걸리, 유채 김치는 너무나 맛있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 순간만은 세상 부럽지 않았다. 길 걷다가 우연히 들른 고기 국숫집도 너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제주에 오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올레길 코스 완주도 도보 여행의 즐거움이다. 올레길 6,7,8,9코스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짝꿍은 나중에 딸내미와 함께 꼭 오고 싶다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내가 말한 코스는 바다와 섬, 현무암 갯바위, 파도의 포말과 시원한 바닷바람, 숲과 오름의 매력을 원 없이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올레길 투어는 가다가 맘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잠시 빠져나가 볼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다. 다음에 다시 탐라 한달살이를 한다면 올레길 전 코스를 꼭 한번 투어 하고 싶을 정도다.  


돌담과 하귤나무 / 마을의 돌담길 / 오션뷰 카페에서 먹었던 파전과 제주막걸리
제일 핫한 올래길 7코스 중 왜돌개, 선녀탕, 범섬과 서건도 사진




탐라 한달살이의 네 번째 장점은 유명 관광지가 아닌 도민들이 찾는 찐 맛집과 핫플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제주 사람들은 거기 잘 안 가요." 사실 제주도민들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비싼 음식점들은 잘 가지 않는다. 삶의 터전을 제주에서 잡은 도민들의 입장에서도 비싼 가격은 너무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맛집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처음엔 SNS나 유튜브를 참조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귀동냥과 발품을 많이 팔아서 찾게 된다. 만약 탐라 한달살이를 계획한다면 광범위한 반경의 여행 스케줄을 짜는 것보다 가급적 좁은 반경의 여행 스케줄을 잡아 구석구석 다녀보길 추천한다. 발품을 많이 팔수록 찐 맛집과 핫플을 발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세숫대야 크기의 고기국수 / 600g 32,000원 가성비 찐맛집





탐라 한달살이의 장점 다섯 번째는 가는 수고로움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 여행지인 바다와 오름의 아름다움을 그것도 무료로, 무제한으로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능, 협재, 곽지, 애월 한담 산책로, 이호테우, 도두항, 함덕, 김녕 성세기, 월정리 해수욕장까지 내가 방문한 모든 제주시의 바다는 믿기지 않거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너무 좋아하면 외면하게 되는 것처럼 너무 아름다운 바다를 만나면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심신과 영혼이 지칠 때 우리가 바다를 찾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발가락과 손가락 사이로 촉감이 보슬거리는 새하얀 모래와 드넓은 백사장, 바닥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물빛, 햇볕에 눈부시게 일렁이는 물결, 얕은 수심, 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에메랄드빛 바닷 색, 등대와 풍력발전기, 화사한 봄햇살과 먼지 없는 탁 트인 파스텔 블루 하늘과 연청록의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까지 한 데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마치 동남아 유명 휴양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굳이 비용을 많이 들여 먼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데 말이다.  


투명한 쪽빛 바다와 흰모래에 설레고, 봄 햇살과 에메랄드빛 바다에 가슴이 뛸 수밖에 없다. 평소 아름다운 감정에 둔한 나조차도 한동안 넋 놓고 보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이전 가족과 함께 다녀왔던 세계 3대 비치 중 하나인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낙조의 경관이 환상적인 협재해수욕장 앞바다에는 코앞에 비양도가 보인다. 얕고 투명한 바닷물 밑으로 비치는 새하얀 모래사장을 보다 보면 마치 걸어서 비양도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렇다고 걸아가면 노노하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진 검은 현무암 갯바위가 새하얀 백사장과 함께 어우러져 제주만의 이질적이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눈 속 갈색 렌즈에 담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무조건 바다 투어를 하길 바란다.  


김녕성세기 해수욕장과 월정리 해수욕장


탐라 한달살이에서 얻은 최고의 여행지 선물은 오름의 재발견이다. 제주도에는 약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가본 곳은 사라봉, 별도병, 도두봉, 서우봉, 거슨세미 오름, 굉이 오름, 어승생악, 절물오름, 금오름, 베릿내오름 등이었다. 예로부터 제주 사람은 오름을 등지고 살고, 오름에서 나고 자라서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얘기가 전해 올만큼 오름은 제주도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여행지다.


오름은 저마다 팔색조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오름으로 난 작은 소로를 걸으면 작은 생명의 지저귐을 마치 ASMR처럼 생생하고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 붉고 검은 화산토양에서 자라는 각종 나무와 식물들이 오랜 시간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원시림 형태의 숲을 이루고 있어 넘치는 생명력을 느낄 수도 있다. 햇볕이 좋을 때나 산안개가 짙을 때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으니 날씨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오르는 수고로움에 비해 오름의 정상에서 보는 탁 트인 360도 파노라마 뷰는 상상 이상으로 조망의 기쁨을 안겨준다.


흐드러진 벚꽃과 낙조가 아름다운 사라봉과 별도봉, 제주항과 제주시의 전경이 펼쳐지는 별도봉, 도두항과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키세스 존이 유명한 도두봉, 함덕 해수욕장에 위치해 일출과 유채꽃 명소로도 유명한 서우봉, 삼나무와 편백숲길이 1km나 펼쳐져 산림욕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거슨세미 오름, 단일 분화구를 가진 오름 중에 가장 높은 오름으로 미니 한라산으로도 불리는 어승생악.


한라산 주변 오름들의 파노라마뷰가 정말 멋진 절물오름, 대형 원형 분화구와 산정화구호를 가져 미니 백록담으로 불리는 금오름은 탁 트인 분화구 둘레길을 따라 저 멀리 비양도와 푸른 바다, 한라산과 주변 오름 전경, 그리고 저 멀리 풍력발전기도 볼 수 있는 멋진 뷰를 자랑하고 있으며, 비 온 뒤 물이 차있는 산정호수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도 있으니 꼭 한번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군산은 차로도 바로 앞까지 이동할 순 있지만 가파른 계단으로 이동하는 코스도 있어 힘들게 정상에 이르면 멀리 한라산과 주변 오름들, 그리고 산방산, 송악산을 필두로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평생 잊을 수 없는 장관을 보여준다.


사라봉 / 서우봉  / 도두봉
거슨세미오름 / 금오름 분화구 및 산정화구호
군산에서 바라본 파라라마 뷰. 한라산 및 주변 오름과 산방상, 송악산, 마라도, 가파도, 형제섬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축적이고 짧게 글을 써야 하나 아직까진 글쟁이의 내공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추후 여행 스케줄 짜는 방법과 경비, 올레길 체험 등에 대해서도 최대한 간략하게 업로드하겠습니다.


이전 06화 녹담만설의 전설을 함부로 오른 결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