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May 08. 2022

'놀멍 쉬멍 걸으멍' 영혼의 안식처 올레길(1탄)

#한라산 백록담 #올레길 7코스 #서귀포 올레시장 #이중섭 박물관

누구나 제주도 한달살기를 계획하다 보면 왠지 한 번쯤은 한라산 등반, 올레길 한 개 코스 탐방 정도는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냐 하는 의무감 비슷한 감정이 들 것이다. 우리 커플 또한 그랬다. 하지만 한라산 등반은 어설픈 준비, 뜻하지 않은 우중(雨中) 등반으로 혹독한 시련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https://brunch.co.kr/@ddc8fafd53894cb/197


힘든 과정이어서 얻은 교훈도 적진 않았다. 아울러 한라산 등반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우리 커플은 서귀포시에 둥지를 틀자마자 올레길 코스 탐방을 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올레꾼들에게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올레길 7코스를 도전하기로 맘을 먹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링 위에 올라가 처맞기 전까진 말이다.(마이크 타이슨 명언 中)"


그렇게 도전한 올레길 7코스 탐방은 처음엔 그럴싸했다. 날씨도 좋았고, 기분도 좋았다. 시작점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한 우리 커플은 시작점인 제주 올레 여행자센터에 도착해 두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며 셀카 인증을 마친 후 의욕 뿜뿜 상태로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제주도 도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제주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뿜뿜 넘쳐 항상 기대 이상의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칠십리시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우린 공원의 정취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풀과 나무, 연못 등 다양한 자연의 모습과 시나 노래가 새겨진 돌들을 보면서 심신의 양식을 한꺼번에 채울 수 있었다.  


걷다 보니 산책로 주변 그늘 아래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나무 썬베드를 보는 순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놀멍, 쉬멍, 걸으멍'이란 올레길 캐치프레이즈처럼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우리 커플은 다정하게 나무 썬베드에 몸을 누였다. '아~'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구름 낀 파란 봄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살랑살랑 봄바람에 흥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순간만은 세상 남부러울 게 없었다.  


나무 썬베드에 누워있는 짝꿍의 행복한 모습 / 살랑살랑 봄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나무들


잠시 동안의 호사를 누린 우리 커플은 다시 몸을 일으켜 올레 리본을 찾아가며 올레길 탐방을 이어갔다. 근데 말이다. 갑자기 쐐 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왠 황당 시추에이션!!! 오랜 시간 아무 탈없이 내 발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트레킹화 밑 깔창이 반쯤 벌어져 걸을 때마다 너덜너덜 거리며 박수를 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트럭 뒤에서 소변을 누고 있는데 트럭이 갑자기 전진을 하면 당황스러운 거고, 트럭이 후진하면 황당한 거지." 옆에서 듣던 친구가 말했다. "당황은 똥 싸려는데 방귀가 나온 거고, 황당은 방귀 뀌려는데 똥 산거라고 볼 수 있지." 

** 당황하다 : 놀라거나 다급해 어찌할 바를 모르다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 
** 황당하다 :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다 (상황을 나타내는 형용사)


막상 예상치 않은 일(트럭이 갑자기 전진하는 일???)이 일어나니 황당이든 당황이든 정확한 단어 뜻을 구별하는 게 별 의미가 없었다. 어이 상실이었다. 계속 전진할 수도,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뭔가 응급조치를 해야만 했다. 손뼉 치는 신발을 조심스레 끌면서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니 밧줄이 눈에 띄었다. 급한 김에 밧줄로 신발과 밑 깔창을 꽁꽁 동여맸다. 계속 이렇게 갈 수 없는 상황이니 가까운 시내로 가서 신발을 수리하든 새 신발을 구매하든 해야만 했다. 


손뼉 치는 신발을 밧줄로 꽁꽁 동여매는 모습 ㅠㅠ


검색을 하니 유명한 서귀포 올레시장이 약 1km 반경에 있었다. 평소 그렇게 많이 보이던 택시마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걷다 풀렸다 동여맸다를 반복하며 올레시장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시장 입구 주변에 신발 전문 편집샵 2개소가 있었지만 시간이 일러서인지 문이 닫혀 있었다. 문을 열 때까지 우린 일정에 없던 올레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게 되었다.   


"뭐 급할 것도 없는데 오늘 그냥 올레길 투어하지 말고, 하루 그냥 여기서 띵가띵가 보내면 어떨까?" 

"그러지 뭐!"


쿨한 오십 대의 대화가 오고 갔다. 10시가 되어 AXX마트에서 행사 중인 브랜드 운동화 한 켤레를 구매한 후 난 개선장군이 된 것마냥 의기양양하게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분식점 앞을 지나가다 그냥 여기서 먹고 갈까라는 말에 우린 주저 없이 분식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모닥치기 한 접시와 제주 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다.  


아~ 몰라.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그냥 될 대로 되겠지).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님)이 말한 것처럼 말이다. 


모 분식점에서 먹은 모닥치기 ('모닥'은 제주말로 '모두'란 뜻으로 김밥, 전, 만두, 떡볶이 등을 한데 섞은 메뉴)


한 번쯤은 무계획으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한잔 거하게 걸치고, 배도 부르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그래도 관광 본능은 스멀스멀 기올라 왔다. 주변 검색을 하니 이중섭거리가 가까워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아기자기한 거리의 풍경이 일본의 공예거리를 떠올리게 했지만 관련 콘텐츠 샵이 부족해 다소 아쉬웠다. 이어서 서귀포항이 내려다보이는 이중섭미술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대를 너무 앞섰던 불우했던 천재 작가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짧은 시간 동안 꽤 인상 깊게 관람할 수 있었다. 대향 이중섭 화백과 서귀포와의 인연은 1951년 1월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피난을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1년 남짓 서귀포에 머무르면서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인심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불우했던 화가 시절, 작품 속에 반영된 세계관,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일본으로 떠난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엽서 등을 보면서 잠시나마 그의 힘들었던 삶의 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근처 돌담으로 빙 둘러져 있는 이중섭 생가도 들렀다. 실제 살았던 방을 들여다보니 어떻게 다릴 뻗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방이 비좁아 보였다. 척박하고 힘든 삶의 환경이 어쩌면 그를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었지 않았을까? 천재는 사후에 만들어지는 현실이 다시 한번 서글프게 느껴졌다. 


일본에 있는 아내 마사코(이남덕)와 아둘 둘에게 보낸 애정가득한 엽서, 우측은 <그리운 제주도 풍경>
3층 옥상에 가면 섶섬, 서귀포 관광미항, 문섬, 새섬, 새연교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음
이중섭 생가와 비좁은 방


이중섭미술관 3층에서 바라본 오션뷰는 너무나 이국적이고 신비로웠다. 우린 이중섭 화백의 자취를 따라 인근 자구리 공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자구리 공원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전망대가 있어 정면에서는 섶섬, 오른쪽으로는 서귀포항과 문섬을 볼 수 있으며, '문화예술로 하나 되는 공원'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몇몇 예술작품까지 전시되어 있어 볼거리가 꽤 많은 공원이었다. 


이중섭 화백도 이곳에서 부인, 두 아들과 함께 게를 잡으며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의 작품 <그리운 제주도 풍경> 속에는 그 당시 가족들과 행복했던 추억이 잘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스토리를 알고 나니 이 화백의 숨결과 흔적이 느껴지는 듯했다. 주변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고, 무엇보다 용천수, 새연교와 이어진 새섬 투어, 주변 오션뷰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폴레옹 모자처럼 생긴 문섬은 무인도로 낚시와 다이빙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매번 느끼지만 제주도의 일상의 모습은 타지인인 우리들에게는 늘 기대 이상의 감흥과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자구리 공원에서 본 조형물, 용천수, 주변 오션뷰
섶섬, 실제로 보면 엄청 크게 보인다


To be continued.....




이전 07화 탐라 한달살이에서 깨달은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