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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y 21. 2022

세상에나! 블루베리 열매가 착과 되었네!

#개정된 농지법 #텃밭 만들기 #탐라 한달살이 #블루베리 키우기 #생명력

"세상에나! 블루베리 열매가 열렸네!"


따갑게 내려쬐는 봄햇살에 초록 초록한 잎사귀 사이로 블루베리 열매가 착과 되어 봉긋하게 맺혀 있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불과 한 달 전, 가지만 앙상한 블루베리 묘목을 심었는데 이렇게 생명력 강하게 생장하리라곤 전혀 상상도 못 했다. 뭐랄까. 그 강인한 생명력에 경외감마저 느껴졌다. 이렇게 잘 자라준 블루베리가 너무 기특하고 대견했다. 내 아이를 키울 때도 이런 느낌은 없었는데 ㅠㅠ

 

탐라 한달살이 후 달려간 텃밭에서 본 블루베리 묘목의 생장 모습 ^^


탐라 한달살이를 떠나기 전 우리 부부는 삼십 년 텃밭 전문가인 노모와 함께 오 년 전 거주지 인근 중소도시에 퇴직을 염두에 두고 구매해 두었던 전원주택 부지에 작은 텃밭을 조성하느라 상당한 애를 먹었다. 오 년 간 방치되었던 토지는 온갖 이름 모를 잡초와 꽃, 그리고 산을 타고 내려 칡덩굴로 뒤덮여 있었고 산을 깎아 성토된 토지는 암석과 돌로 메워져 있어 개간 작업이 여간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텃밭을 조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금년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개정된 농지법 시행령 때문이었다.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지는 농사꾼에게 주어져야 함)'과 '재촌자경(耕, 농지 소재지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지음)' 원칙에 따라 농지를 소유하되, 경작하지 않고 방치하게 되면 벌금(이행강제금)이 부과되고, 계속 미이행 시 급기야 농지처분이라는 강도 높은 후속 조치까지 취해지기 때문이다.


(개정된 농지법 관련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https://brunch.co.kr/@ddc8fafd53894cb/189


포클레인이나 트랙터와 같은 중장비가 해야 될 토지 개간작업은 사소한 오해와 소통 미흡으로 말미암아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난 세발 괭이와 삽으로 온갖 이름 모를 잡초와 칡덩굴을 온몸으로 파헤치며 미친 듯이 땅을 갈아엎기 시작했고, 짝꿍과 노모는 호미로 텃밭 고랑과 이랑을 만드는 효율적인 분업 작업을 통해 세 명의 급조된 T/F팀(Task Force : 나+짝꿍+노모)은 텃밭 토대 만들기 미션을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텃밭의 토대가 완성되자 우리 팀은 인근 농원을 방문해 전원주택을 짓게 되면 심고 싶었던 10여 종의 과실수 묘목, 10여 종의 채소 모종을 구매해 텃밭 이곳저곳 적재적소에 식재하기 시작했다. 채소 모종은 이랑 위로 검정 비닐로 멀칭 작업을 한 후 식재를 했고 복분자, 토마토, 고추는 식재와 더불어 지지대를 박아 줄기가 위로 올곧게 자라도록 해주었다.


[식재 묘목과 모종]  

사과나무 5그루, 민두릅 10그루, 석류나무 한그루, 매실나무 한그루, 체리나무 한그루, 복숭아 한그루, 살구나무 한그루, 복분자 나무 20그루, 블루베리 5그루, 왕벚꽃나무 한그루, 상추, 부추, 고추, 가지, 토마토, 고구마, 들깨, 호박, 도라지, 옥수수


블루베리를 심기 위한 피트모스 토양, 물을 듬뿍 적셔 보수력을 높여야 함.


"너무 목말라요! 물 좀 주세요"


다른 묘목보다 식재가 가장 까다로웠던 것은 블루베리였다. 물론 묘목과 전용 토양 구매 비용도 만만찮았다. 산성 토양과 물을 너무나 좋아하는 블루베리는 화분 식재가 아닌 노지 식재는 키우기가 매우 까다로울 수 있다는 농원 주인의 말에 처음엔 식재를 망설였다. 하지만 식재 방법을 자세하게 들은 후 우린 과감하게 도전해 보기로 맘을 먹었다. 그만큼 블루베리를 직접 키워서 따먹고 싶었던 마음도 컸던 것 같다.


블루베리는 PH 4~5.2 정도의 산성토양을 좋아하며, 천근성 뿌리(수염뿌리)를 갖고 있지만 뿌리를 깊게 내리는 식물이 아니어서 '피트모스'라는 특별한 흙에서만 재배를 해야만 한다. 피트모스는 한랭한 늪지대에서 이끼나 수초 등의 잔재가 퇴적되어 분해된 것인데 가볍고 보습력이 뛰어나며, 산성도 적당해 블루베리를 키우는데 최적의 토양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묘목과 함께 구매한 '피트모스'는 식재 전에 해야 할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일단 바닥에 비닐을 넓게 깔아 피트모스 덩어리를 한꺼번에 올려놓고 손으로 뭉개 잘게 잘게 부순 후 물을 충분히 뿌려 섞어주는 작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그래야 물을 좋아하는 블루베리가 잘 생육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식재할 구덩이를 깊게 파야 한다. (웬 돌덩이가 그렇게 많은지 ㅠㅠ)   


깊게 판 구덩이에 물을 가득 품은 피트모스 토양을 가득 채운 후 블루베리 묘목을 식재하고, 그 위에 흙을 덮으면 일단은 끝난 것이다. 그런 후 충분하게 물을 뿌려주면 된다. 참고로 블루베리의 천근성 뿌리는 피트모스 토양에만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더운 날씨 탓에 다섯 그루를 심는데 온 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다만 가지만 앙상하게 텃밭 위로 올라온 블루베리를 보면서 정말 자리기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여곡절 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 태스크 포스팀은 텃밭을 성공적으로 조성할 수 있었다. 처음엔 대충 텃밭 모양만 흉내 내 개정된 농지법 위반을 피할 요령이었으나 막상 땀을 흘리며 힘들게 텃밭을 만들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겼고, 그렇게 하나둘씩 늘어난 과실수와 채소들이 텃밭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자 난 뭔가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도전하는 텃밭 농사를 통해 진정한 육체적 노동의 기쁨과 성취감을 맛본 것이다. 비록 텃밭 농사로 허리가 부서질 정도로 심한 통증, 손바닥 짓무름 증상 등 말할 수 없이 힘든 점도 있었지만 직장생활과 달리 인풋(input)의 결과물인 아웃풋(output)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게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만 큰 뜻을 품고 심었던 일 년생 과실수 묘목이 나무 젓가락처럼 텃밭 위에 앙상하게 심겨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자라기는 할까라는 의구심이 든 건 사실이다. 조만간 탐라 한달살이를 떠나야 하는데 그때까지 만약 가뭄이 지속되면 혹시 잎을 피우기도 전에 고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의 감정도 들었다.




그렇게 나와 짝꿍은 모든 근심과 걱정을 뒤로한 채 탐라 한달살이를 떠났다. 꿀잠을 잔 것 같은 달콤한 탐라 한달살이의 끝이 보이자 나와 짝꿍은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여느 때보다 달콤했던 길고 긴 휴가가 막 끝난 직장인이 출근 전날 평소보다 예민해지면서 느끼는 복잡하고 헛헛한 감정처럼 우리 둘 모두 그와 비슷한 휴가 후유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그런 감정이 드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전업주부인 짝꿍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말에 난 그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웃픈 감정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니 짝꿍이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나처럼 아내 또한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한 게 처음이었던 것이다. 여행 기간 모든 걸 잊은 채 여행에만 전념하다가 막상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이것저것 해야 할 집안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짝꿍 또한 말은 안 했지만 전업 주부로서 느끼는 가사와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듯했다.


제일 먼저 든 걱정은 집안의 화분, 그리고 한 달간 방치된 텃밭이었다. 십 년 이상 기른 화분들이 혹시나 죽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에 집으로 전화를 해서 딸내미에게 물을 빨리 주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한 달 전 식재 후 물을 주기적으로 줘야 하는 텃밭의 작물들 또한 혹시 어떻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갑자기 들었다. 탐라 한달살이 기간 동안 텃밭 소재지 지역엔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하니 맘이 더욱 조급해졌다.




탐라 한달살이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화분의 상태를 확인하니 생각한 대로 화분에 식재된 식물들의 잎이 모두 생기를 잃은 채 축 처져 있었다. 특히 오랫동안 키워왔던 스파티 필름의 모든 잎사귀들은 화분 아래로 축 처져 죽어 있는 듯 보였다. 딸내미가 대학 과제와 실습 때문에 시킨 일을 잊어버렸다고 고백했다. 일단 짝꿍은 여행 짐도 풀지 않은 채 물부터 화분에 주었다. 아이 생일 때, 결혼기념일 때, 승진할 때 받았던 화분들이었다. 우리 가족들과의 삶의 여정과 추억을 함께 한 반려 식물들이어서 꼭 다시 살아나기를 기원했다.


다음 날이 밝아오자 마자 화분의 상태를 확인하니 스파티 필름을 제외하곤 다른 모든 식물들의 잎사귀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스파티 필름의 생사여부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짝꿍은 한번 더 물을 주면서 살아만 달라고 스파티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 바람과 염원이 통했는지 그다음 날부터 잎사귀가 살아나면서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고맙구나. 스파티야 다시 살아줘서!!! (_ _)


탐라 한달살이에도 죽지 않고 잘 살아준 고마운 반려식물들. 스파트 필림은 결국 삶을 선택했음 ^^




탐라 한달살이에서 복귀한 우리 부부는 익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식사도 거른 채 노모를 모신 후 차를 타고 텃밭으로 달려갔다. 삼십여분을 달린 후 우리 T/F팀은 텃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랜 가뭄에 황폐화되었을 것이란 우리들의 걱정과 달리 식재된 앙상한 묘목에는 어린아이 손처럼 나무 가지가 새로 돋아 있었고, 그 가지 위로 초록빛 어린 잎사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생기 넘치는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제일 걱정했던 블루베리 묘목은 심지어 화사한 봄햇살을 맞으며 초록 초록한 잎사귀 사이로 블루베리 열매가 착과 되어 봉긋하게 맺혀 있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복분자 묘목 몇 그루만 제외하곤 대부분의 묘목과 모종들이 척박한 환경을 견뎌내고 저마다 지닌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뭄이라는 척박한 환경을 감내하고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뜻밖의 기회로 텃밭을 조성하면서 난 짧은 기간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식물의 삶은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아 있는데 우리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왕벚꽃 나무 / 고추와 고구마 / 복분자
상추와 가지 / 호박 / 부추
검정 비닐 멀칭 작업 결과 / 물을 너무 좋아하는 작물들 모습 / 사과나무 묘목과 민두릅




"작물은 부지런한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얘기가 있듯 자연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것 같다. 부지런하고 땀을 많이 흘릴수록 식물도 잘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는 법이다. 오늘 심은 작물의 결실을 내일 당장 볼 수 없듯 텃밭 농사를 하면 식물의 생장 과정을 지켜보고 도우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배울 수 있고, 강인한 생명력에서 뿜어 나는 활기찬 에너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분노나 슬픔, 걱정과 근심과 같은 원치 않는 감정이 찾아들 때 텃밭 농사는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고된 육체적 노동을 통해 힘든 순간을 잠시 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에 담지 않고 내 버려 둠으로써 저절로 수그러들게 하는 장점도 있다. 그냥 침착하게 일을 하다 보면 저절로 순서가 생겨나고, 해야 할 일들이 만들어져 미리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어 맘 편하게 일을 할 수도 있다.


미리 뽑지 않으면 더 무성하고 빠르게 번지는 잡초의 생명력에서도 삶의 교훈을 얻는다. '모르면 잡초, 알면 약초'라는 말처럼 무명의 풀들도 저마가 의미와 이름을 부여받고 자라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저 잡초라는 이름으로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텃밭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니다. 그냥 놔둬도 되지만 키우는 작물의 생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를 해야만 한다.


뿌리가 깊게 내린 잡초들은 발본색원(拔本塞源) 하기가 더 힘들다. 특히 산에서 내려온 칡 나무 덩굴은 뻗쳐 나가는 줄기마다 뿌리를 여러 갈래 내리며 깊게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제거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럴수록 힘이 들더라도 땅을 깊게 파서 뿌리를 최대한 제거하게 되면 다음에 할 일이 줄어든다. 뿌리가 뒤엉켜 자라는 클로버(일명 토끼풀)도 미리 없애지 않으면 순식간에 뿌리와 잎이 퍼져 나가 다음엔 두배로 힘이 든다. 그러니 텃밭 농사를 지을 때는 가급적 해야 할 일을 미루면 안 된다.


텃밭 농사의 또 다른 장점은 직장과 도시의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각종 유해물질 환경에서 벗어나 녹색의 자연환경에서 작물의 다양한 생장과 발육 과정을 통해 형태와 색깔의 변화를 체험하고 관찰함으로써 스스로 건강한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텃밭 활동의 결과로써 얻어진 수확물은 사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확의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




식물에게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는 것은 인간의 관심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이어갈 번식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요, 종자를 퍼트리는 생존 전략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식물을 한경과 영양이 좋은 곳보다는 척박하고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고 한다. 이렇듯 식물을 가까이서 재배하면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퇴직 후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자급자족의 삶이었다. 가뭄이라는 악조건과 돌 많은 토양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강한 생명력으로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들의 모습에서 난 오랜만에 삶의 활력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올여름엔 생애 처음으로 자급자족이라는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소량이겠지만 블루베리 열매도 맛볼 것 같은 기대감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요즘 소울메이트인 내 짝꿍은 텃밭 농사에 너무 진심인 나를 보며 살짝 겁을 먹고 있다. 혹시나 내가 농사짓는다고 귀농, 귀촌할까 봐 말이다. 솔직히 평생 정신노동에 시달려온 내 삶의 여정에서 볼 때 남은 삶의 여정은 육체적 노동을 통한 삶의 기쁨을 맛보면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다만 짝꿍의 허락을 얻는 게 관건이 될 것 같다.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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