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단상) 한계 짓는 삶과 확장하는 삶

#데이비드 블레인의 숨참기 도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유 #한계란

by 미스틱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블레인(David Blaine)은 인듀어런스 아티스트(endurance artist)나 익스트림 퍼포머(extreme performer)로 불립니다. 그는 '27M 타워 꼭대기에서 35시간 버티기', '60시간 얼음조각 속에 서있기', '5일 동안 생매장 실험', '100만 볼트 견디기', '60시간 거꾸로 매달리기 도전' 등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극한의 도전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극한의 도전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도전은 수중 숨 참기 세계 신기록인 17분 4.4초의 기록을 달성한 것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돌고래 수준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 이후 신기록이 깨지긴 했습니다만.


그는 숨 참기 도전을 위해 2년간 매일 아침 숨 참기 연습을 했습니다. 이전 기네스 도전자의 체형을 분석해 감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3개월간 무려 22kg의 제중도 감량했습니다. 몸이 가벼워지자 그는 숨을 더 참을 수 있게 되었고, 심박수도 분당 38회까지 떨어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4개월간의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7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4,600미터 고도상에 있는 것처럼 설계된 저산소 텐트로 잠을 자며 몸을 단련하기도 하는 등 고되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그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신기록 도전을 지속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숨 참기 세계 신기록은 전설의 프리 다이버인 시에타스가 세운 16분 32초였다고 합니다. 1차 숨참기 도전에 실패한 데이비드 블레인은 산소를 집중적으로 들이마셔 혈액 속에 미리 산소를 공급하는 '집중 호흡법'을 통해 다시 기네스에 도전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2008년 1월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지를 TV 실시간 중계를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참고로 의학적으로 무호흡 6분이 경과하면 저산소증으로 뇌 손상 등이 올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블레인은 17분 2초의 기록으로 종전 기록을 경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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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숨 참기 기네스 기록을 경신한 데이비드 블레인


블레인이 숨 참기 세계 신기록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1987년 얼음 사이로 떨어져 강 아래에 갇힌 한 소년이 숨을 쉬지 않고 45분 동안 물아래에 있었고, 구조 대원들이 도착해 그 소년을 다시 소생시켰는데 뇌에 아무런 손상이 없다,라는 뉴스를 들은 후 용기를 내서 도전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해냈다면 나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블레인은 도전을 통해 '자신이 성공한 것은 스스로를 한계 짓지 않고 날마다 의식적인 연습, 훈련, 실험을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인간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까지일까요? 왜 한계를 극복하려고 그렇게 발버둥 칠까요?





우리의 유일한 한계는 우리 스스로 마음으로 설정한 것들이다. - 나폴레온 힐 -


기영노 작가의 《불멸》이란 책에서는 스포츠를 통해서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승리의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기록에 도전하는 스포츠 선수들이 너무 긴장을 하게 되면 생각이나 행동이 얼어붙게 되는데, 이를 초킹(Choking)'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선수들이 이 초킹의 덫에 걸려 막상 중요한 대회에 나가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징크스'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당한 긴장은 오히려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적당한 긴장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인데요.


그건 평소에 '긴장감'을 훈련함으로써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중요한 순간을 대비해 비슷한 상황에서 수없이 많은 훈련을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운데요. 평소에 그러한 고통을 얼마나 극복했느냐가 바로 중요한 경기에서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한계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결국 한계 짓지 않아야 하고, 또한 한계를 극복하는 꾸준한 연습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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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도전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들

한계에 도전하는 또 다른 스포츠로는 바로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가 있습니다. 종류로는 번지 점포, 헬리스키(헬기로만 갈 수 있는 극한 지형에서 타는 스키), 래프팅, 베이스 점핑(높은 암벽 위에서 낙하산을 매고 점프), 암벽 등반, 스카이다이빙, 윙슈트 플라잉, 스카이서핑, 수중동굴 스쿠버 다이빙, 에베레스트 등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의 말을 빌리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유는 공포에 반응하는 대뇌의 쾌락 시스템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뇌에서는 공포를 느끼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엔도르핀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데 마약보다 훨씬 강한 쾌락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즉 공포에 의한 쾌락도 중독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자극의 강도가 세질수록 내성이 생기면서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활동은 예로부터 노동이나 일로 개념화되는 '생산 지향적인 활동'과 그 외 활동인 '놀이'로 개념화되는 활동으로 구분되어 왔습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위험이 동반되지 않는 생산 지향적인 활동에 종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 위험할지라도 흥분되는 일을 추구하는 위험 추구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위험을 감수한 끝에 얻어지는 성취감, 즉 쾌락을 위해 더 위험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위험 추구 경향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누적된 긴장을 해소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인류의 도약적인 발전 또한 바로 이런 위험 추구 성향도 한몫을 하게 됩니다.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실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문워크 등 인류 발전의 도약은 바로 이런 인간의 탐구정신과 도전정신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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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연구에서 한계는 뇌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심리적 초조함이 실행력과 인내심을 무너뜨리게 하는 '심리적 장애물'인 것이죠. 인내심을 관장하는 건 결국 뇌의 역할입니다. 인간이 뭔가를 하거나 운동 중에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근육 이상이 아니라 뇌가 진짜 위급한 상태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근육에 내린 명령 때문이라고 합니다. 뇌는 현재 투입되는 노력을 고려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근육을 동원할지 조절하는 방식으로 한계의 범위를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고유한 인식의 틀이 있고, 인식 능력의 한계가 있음으로써 인간의 인식은 언제든 착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착오를 피하는 방법은 착오를 판단하지 않으면 된다고 합니다. 한계를 규정짓지 않는 걸 의미합니다. 박노해 시인은 그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수록된 '한계선'이라는 시에서 '여기까지 내 한계라고 스스로 그어버린 그 한계선이 평생 너의 한계가 되고 말리라.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그만 금을 긋고 돌아서고 싶을 때 묵묵히 황무지를 갈아가는 일소처럼 꾸역꾸역 너의 지경地境을 넓혀가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계를 짓지 말고 꾸준하게 극복 노력을 하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한계 짓는 삶의 장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생로병사라는 삶의 여정, 즉 삶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의 여정이 충실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만이 가진 삶의 스토리가 다양해지기도 합니다. 한계 덕분에 인간은 굳이 모험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삶의 생활 반경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에만 시간과 에너지를 쓰니 삶이 더 단순해지고, 명료해지기도 합니다. 옛 선현들이 '안분자족(安分知足)'의 삶의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가능성을 제한하지만 한정된 내 삶을 보호해 주는 안정장치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이너프(enough) 적인 사고를 하면 자산과 타인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한계 짓는 태도의 장점은 타인과의 공감, 유대감을 강화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어차피 불완전한 인생, 너무 기를 쓰고 노력해도 안된다는 겸허한 태도도 필요한 것이죠. '길고 가늘게',라는 직장 생활의 '롱-런 마음가짐'이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스스로 한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한계라는 선을 긋게 되면 그때부터는 한계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넘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한계를 정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한계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면서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들이 바라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 또한 퇴직 후 치열한 정글에서 벗어나 비로소 찾은 평온과 행복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가급적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앞날이 무사안일하기만을 바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은 인생 이모작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No risk, No return'이라는 간단한 투자 원칙만 이해해도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런 글을 쓰는 이유 또한 작금의 나의 이런 안일한 생각을 일갈하기 위함입니다. 박노해 시인이 말처럼 지금의 나의 한계가 평생의 한계가 되지 않도록 내일부터 스스로 코뚜레를 꿰고, 쟁기를 매워서 일소처럼 꾸역꾸역 나의 지경(地境)을 넓혀 갈 작정입니다. 오늘은 단상(斷想)이 아니라 장상(長想)이 되었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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