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뮐러 리어의 착시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위안과 위로
문득 내 삶이 찌질하다고 느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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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그랬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안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한동안 이 같은 웃픈(?) 유머가 인터넷에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당시 나 자신을 찌질하다고 느끼던 시점이었는데 이 유머를 읽고 담담하게 제 위치와 현실을 자각한 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유 효과라고 하지요. 소유하고 있는 있는 물건이 있을 때 애착이 생겨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물건과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타인보다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도 보유 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유머 한 개 때문에 없던 메타인지가 생겨 저 자신에 대한 가치 평가를 객관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TT
믿거나 말거나 두 개 혹은 세 개 선들의 길이는 똑같습니다. 이렇듯 인접한 사선들 혹은 화살표의 방향에 따라 길이가 달라 보이는 현상을 '뮐러 리어의 원근 착시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정신병리학자, 심리학자인 프란츠 뮐러 리어 교수(1857~1916)는 1889년 생리학적 실험심리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하학적 착시현상을 보여주는 유명한 '뮐러 리어 착시현상'을 발표했습니다.
예시된 그림처럼 본질(선의 길이)은 변하지 않는데 주변부의 현상에 따라서 본질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삶 또한 타인과의 비교, 타인 지향적 관점이나 타인의 시선에 따라 왜곡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감각이 이처럼 쓸모없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단순한 경우에도 감각이 현실을 왜곡시킨다면 복잡한 경우는 오죽할까요? 이런 착각은 시각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각도 착각을 유발하는 데 이를 '인지적 착각(cognitive illusion)'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불행은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서 시작된다." - 쇼펜하우어 -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 프랑수아 를로르 -
'이 정도면 잘 살아왔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도 문득 자기보다 잘나가는 친구나 지인들 또는 그들의 자식들 얘기를 듣게 되면 앞선 생각은 갑자기 온데간데 없어지고,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상대적 박탈감과 경제적 열패감에 지금껏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비교 열위의 결과물들이 한쪽 저울추를 기울이면 이런저런 복잡한 상념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면의 밤과 직면하게 되기도 합니다.
SNS를 보면 나만 빼고 모두들 잘나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신의성실과 근검절약의 정신으로 착실하게 월급을 모았는데도 부동산, 주식, 코인 등에 투자한 타인들의 자산이 상대적으로 급등하면서 나만 '벼락 거지'가 된 것처럼 느끼는 'FOMO(Fear of Missing Out, 소외 불안) 증후군'까지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이런 얘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쑥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커리어, 비싼 아파트, 멋진 자동차, 좋은 음식과 여행지, 행복한 가족 일상 등 삶의 화려한 찰나의 순간들이 현란한 사진 편집 기술과 더해지면서 SNS 공간을 여전히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나의 평온한 일상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수십 장 아니 수백 장의 사진 속에서 엄선해서 몇 장의 화려한 사진을 업로드했을 것이란 걸. 그리고 사진 속에서만 빛나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들의 편집된 사진들을 빠르게 스크롤 해 가며 몸서리치도록 혐오스러운 질투심, 시기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소용돌이치기 시작합니다. 타인과의 비교우열(比較優劣)적 삶에 민감한 우리들은 경쟁하듯 똑같은 과시욕을 SNS를 통해 발산시키고, 유행처럼 편집된 일상은 무한 반복 재생산됩니다. 과시하면 할수록 공허함과 허전함은 욕망의 덫처럼 커져만 갑니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때가 있고, 누군가의 행복이 나의 불행으로 연결될 때가 있습니다. 또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기도 하고, 가시처럼 맘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스크래치를 낼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평생 동안 계속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도 괜찮은 걸까요? 20대의 호기와 패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벤 스틸러의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미국 중산층을 대변하는 불혹(不惑)의 한 가장이 중년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담아내는 솔직하고 찌질한 삶의 행적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어쩌면 삶의 디테일이 너무 가득해 공감을 넘어 동정심마저 들게 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공포물이나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영화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나도 여성호르몬이 넘쳐 유약하게 변했는지 그 영화를 심취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원제는 '브래드의 상태(Brad's status)'입니다. 브래드의 정확한 나이 47세! NGO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번듯한 직장과 행복한 가족, 누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 유복해 보이지만 그의 마음 상태(Brad's status)는 주변부의 상황인 사람, 때와 장소, 그리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처럼 시시각각 변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네 일상과 너무나 닮아 페이소스마저 물씬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은 바로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미국 중산층 브래드가 아들의 대학 입학을 위한 캠퍼스 투어를 함께 따라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와 같이 브래드는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자신의 삶을 부정하기도 하고, 심지어 박탈감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감정은 바로 타인의 시선, 그리고 타인과의 비교에서 생산되고 또 재확산됩니다.
이렇게 스스로 몹쓸 찌질이의 형상을 완성해나갈 때쯤 브래드는 아들 고교 시절 선배이자 하버드대 재학 중인 아난야와 개인적인 술자리를 갖게 됩니다. 아난야는 똑똑하고 재치고 있고, 예의도 바르고 매력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아들 또래지만 브래드는 이성적인 매력을 느낍니다. 평소 NGO 단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아난야가 브래드에게 NGO 운영이 어떤지를 물었습니다. NGO의 꿈? 그딴 거 다 필요 없다고, 현실은 피해 다니는 기부자를 따라다니며 부탁하는 거라며 그럴 바엔 부자가 되어 기부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아난야는 "인도 여행을 할 때 봤던 굶주린 아이들에게는 당신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당신의 일이 얼마나 멋진지, 당신은 이미 많은 걸 가졌다"라고 되레 그에게 뜻밖의 우문현답을 말합니다. 스무 살이나 어린 그녀에게 한 방 크게 얻어맞은 브래드는 그날 밤 잠 못 들고 뒤척이게 됩니다. 영화 원제처럼 브래드의 상태는 '흐림'입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후 그는 아들과 함께 간 음악회에서 뭔가를 깨달음을 얻었는지 눈물을 주르륵 흘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최근 아빠 브래드의 상태를 유심히 지켜 봐왔던 아들이 이렇게 말을 꺼냅니다.
"아빠 공황장애나 그런 거 겪는 거야?"
"가끔씩 걱정이 돼. 사람들이 날 패배자로 볼까 봐."
"음... 근데... 다들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빠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아빤 내 의견에만 신경 쓰면 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 찰리 채플린 -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2030 시기와 달리 40대부터는 삶의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미완의 시기가 도래합니다. 흔히 중년의 사춘기 또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는 상실의 파랑이 지나간 자리에 감정의 격랑이 더 커져 가슴에 큰 일렁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번듯한 직장, 단란한 가족, 사회적 지위, 원만한 인간관계 등 남들이 보기에 안정된 조건이 유지되고 있지만 어느 날 맞닥뜨리는 현실이 문득 생경하고, 쓸쓸하고, 심지어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죠.. 다가올 미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50대는 또 어떤가요?
누군가 20대와 50대의 공통점을 이야기한 것을 들었는데 20대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이며, 50대는 퇴직 후 인생 이모작을 위한 사회 첫발을 내딛는 시기라고 말해 무척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사실 지금 그 여정을 밟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 28년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지만 퇴직 후 50대에 느끼는 감정은 삶이 무척 혼란스럽다는 점입니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가 도래하면서 제 나이 정도는 쉬면 안 된다는 사회 인식이 짙게 깔려 편히 쉬지도, 그렇다고 원하는 잡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사실 제 삶의 솔직한 경험과 감정이 녹아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금 찌질하다고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오늘을 제가 스스로를 위한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참 많이도 지쳤다. 고생도 많았다.. 참 애썼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다. 그냥 잠시 내려놓고 쉼과 여유를 가져도 된다"라고 말이죠.
혹시나 최근 저와 같은 감정이나 생각을 가지셨다면 감히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경쟁하며 분주하게 사느라 애 많이 애 많이 썼고, 고생 많으셨다고. 잠시만 남들과의 비교, 타인의 시선 등을 잠시 내려놓고 그냥 담담하게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걸어가시라고 말입니다. 삶의 초점을 자신과 현재에 맞추고, 감사함을 내면의 감정과 동기화시켜 살아간다면 삶이 더 이상 찌질하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감히 조언 드립니다. 영화에서 브래드의 아들이 말한 것처럼 당신의 존재, 그 자체로도 당신은 충분히 빛나고,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가 더 할 일이 남았다면 그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세상이란 게 거창한 캠페인의 구호처럼 떠들썩한 뭔가가 바꾸는 게 아니라 개인의 결심과 행동으로 더 좋게 변화되고 완성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찌질함의 감정이 더 증폭되셨다면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만약 그런 분들이 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이 글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