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단상) '위대한 거절'의 의미

#조선일보신춘문예당선시 #유빙 #입김의의미 #시계방향과시계반대방향 #가을

by 미스틱

유빙(流氷) / 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인 신철규시인의 유빙(流氷)이란 시입니다. 시인은 인터뷰에서 "나를 타인의 자리에 놓지 않을 때, 타인의 눈빛과 목소리에 집중하지 않을 때, '소통'은 거짓과 위선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결핍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조금씩 버리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한다. 나의 구원만큼 타인의 구원도 중요함을 깨닫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현실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위대한 거절'을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아이에서 진정한 어른이 된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찻집에 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이미 이별이 진행되고 있으나 그들은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이 연인들은 '헤어져야 한다'와 '헤어질 수 없다' 사이에서 주저하며 얼어붙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임김(한숨)'과 '눈물'도 모두 양가적인 의미를 부여받아 흔들립니다. 입김은 찬 것을 녹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것을 식게도 합니다. 눈물을 당신의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당신을 얼어붙게도 합니다. 이처럼 사랑이 변하다는 것은, 동일한 것이, 어느 날 문득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품》의 신형철작가 -


오래된(?) 두 연인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 시계를 구두 뒷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이라는 시의 내용으로 짐작컨데 결말이 그리 좋지 못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쩌면 작가의 말대로 '위대한 거절', 아니 이별의 통보가 서로의 구원을 위한 최선의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면 캡처 2022-10-15 132345.jpg


저는 사실 시(詩)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시(詩)가 가지는 메타포와 운율, 함축된 의미가 나이가 들수록 좋아진다는 것 정도만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간될 때마다 더 많은 시를 읽으려고 노력중입니다. 요즘 가을 날씨가 너무 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보채는 아이처럼 자꾸 밖으로 나가자고 등을 떠미네요. 하하! 오늘은 첫사랑 짝꿍과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갈까 합니다. 서로의 입김과 체온으로 혹시나 생겼을지 모를 오해의 눈뭉치를 하트로 뿅뿅 녹여볼까 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