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Dec 12. 2022

인생이 마라톤 경주? 웃기지마!

#인생은 마라톤 #드라마 <원더우먼> #마라톤을 하는 이유 #러너스 하이

"죽자고 달려왔는데 이제부터 마라톤이라네요!"

드라마 <원더우먼>의 한 장면


이 대사는 2021년 최고 시청률 17.6%를 기록했던 화제의 드라마 <원더우먼> 마지막 편에서 주인공 조주연 검사(이하늬)가 한 말입니다. <원더우먼>은 에이스 비리 검사인 조주연 검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기억 상실증에 걸려 하루아침에 한주 그룹 며느리이자 친정인 유민 그룹 재벌 상속녀인 강미나로 인생 체인지를 하게 되면서 겪는 더블라이프 코믹 버스터 드라마입니다.


'슈퍼맨도 셔츠를 찢기 전까진 평범한 회사원이었듯, 꼭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나를 말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그런 드라마가 되기를 바란다'라는 말로 이 드라마는 시작합니다. 극 중에서 이하늬 배우는 검사와 재벌가 며느리, 그리고 친정 그룹 상속자로서의 1인 3역의 매우 훌륭하게 수행해냅니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그녀가 이런 말을 했던 건 그 당시 그녀의 삶이 마치 단거리 전력 질주 경기처럼 매우 치열하고 절절했단 말일 겁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합니다. 말하자면 단거리 경주가 아닌, 긴 호흡으로 멀리 보고 가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마라톤은 42.195km라는 긴 거리를 쉬지 않고 완주했을 때 비로소 그 완주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마라톤 규칙을 보면 중간에 코스를 이탈하거나 레이스 도중 타인의 도움을 받게 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실격으로 처리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마라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마라톤처럼 쉼 없이 달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정해진 루틴이 있는 것도 아니며, 때론 타인의 도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은 기록의 경기이자 순위를 다투는 경기이고, 출발선과 도착점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시간의 제약도 없을뿐더러 굳이 순위를 다투지 않아도 되며 스타트 라인과 피니시 라인도 제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선수도 아닌데 왜 일반인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죽기보다 힘들다는 마라톤을 굳이 사서 고생하려는 걸까요? 암 전문 미디어인 'Cancer Answer' 2020년 9월 4일 '러너스 하이, 진화가 준 달콤한 유혹'이란 기사를 보면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인간의 몸은 유전적으로 장거리달리기를 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라톤은 현대사회에서 유일하게 그 기능을 충실히 활용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장거리를 뛰다 보면 몸이 활성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신적 만족감인 'I can do it!', 즉 자존감을 더욱 강하게 키운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화학적 만족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러너스 하이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A.J.맨델이 1979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로 주변의 환경 자극이 있는 상태에서 운동을 했을 때 나타나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행복감을 말합니다. 러너스 하이의 감정을 표현하면 '하늘을 나는 느낌', 또는 '꽃밭을 걷는 기분'으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마라톤의 경우 극한의 고통 구간을 넘어 35km 지점에 도달하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거리 마라톤 경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땅! 소리와 함께 출발할 때부터 전속력으로 1km를 달리는 겁니다. 누가보면 미친 것 같이 보일지 몰라도 1km를 달리는 동안은 아마 전세계의 방송카메라의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마라톤에서 1등을 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 구간만이라도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것도 나름 괜찮은 홍보전략이 될 것 같습니다. ^^


출처 : PIxabay


살다 보면 단거리 경주처럼 전속력 질주를 할 때가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30대 시절 일과 가정의 균형이란 인생의 키워드가 무색하리만큼 회사 생활에만 매달려 앞만 보고 결승점까지 달렸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쉬는 동안에도 경쟁자들은 계속해서 달리기 때문에 저는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쉬려고 숨을 돌리다 보면 금세 경쟁자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거란 두려움이 매우 컸었던 것 같습니다. 세렝게티의 초원에서처럼 맹수보다 앞서지 않으면 잡아먹히기 때문이죠.


남들보다 빨리 앞선 덕분에 저는 고속 승진을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자아도취에 빠져 남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을 나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업 실적이 조금이라도 부진하거나 상사의 업적 평가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때 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존감 하락은 물론 그로 인한 피로감 또한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자신을 더 다그치며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얻은 임시 직원, 즉 임원이라는 타이틀의 열매는 생각보다는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임원이 되니 기대보다 낮은 연봉 상승에 실망도 컸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새로운 권한과 그에 따른 경험하지 못했던 어마한 책임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어느 정도 과업을 수행한 후에는 달콤한 휴식과 게으름을 부릴 여유도 있었지만 임원이 된 순간부터는 끊임없는 업무의 연장선 상에 서 있었지요. 과도한 업무와 무한한 업무 책임을 떠안은 상태에서 매일매일을 근근히 버티며 살아갔습니다. 저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직원들과 상사에게 회자되고, 심지어 루머로 생성 및 확산되기까지 했습니다.


부러울 수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건 중간관리자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게 된 것입니다. 제가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는 수 많은 관리자들을 일일이 평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평가를 통해 인력 구조조정을 할 때는 그 심적 고통으로 불면의 밤을 보낸 적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한 가족의 가장을 직장이라는 전쟁터가 아닌 세상이라는 지옥의 한 가운데로 내모는 결정은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제가 감당기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저의 감정과 마음속의 얘기들을 후배들에게 솔직하게 말한다는 건 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고충들이 아마 저의 퇴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던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을 복기하면서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너무 애쓰지 말았으면 합니다. 직장은 가족의 생계와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하되,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 무리하거나 애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근 전 세계 20~30대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용한 그만두기(Quiet Quitting)' 트렌드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직장 내 업무 성과에 연연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적당히 해야 할 일만 하며 개인적인 생활에 더 집중하자는 문화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죠. 이 신조어는 지난 7월 짧은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에 자이들 플린(zaidleppelin)이라는 사용자가 올린 영상을 시작으로 유행처럼 번졌다고 합니다.


퇴직을 하고 난 후 제가 느끼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직장을 다닐 때 퇴사 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실천하는 못하는 것이기도 하죠. 퇴직 후 현금 흐름을 미리 만들어 놓기 위한 수익 파이프라인 만들기도 필요하고요. 인생이막을 위한 자격증 획득도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만들고, 심화시키는 노력도 병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취미 활동 그룹에 가입하는 건 덤이겠죠.


마라톤과 달리 직장 생활은 빨리 앞서 나가기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치고 힘들 때는 잠시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다시 달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1등이 모두 나가고 나면 남은 사람이 언젠가는 1등이 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끝까지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완주하는 사람이 승자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40대 불혹의 나이를 앞둔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2022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1분 9초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전의 자신 기록을 30초 앞당긴 기록이죠. 이 기록을 100m로 환산하면 17초 페이스로 달린 수준이라고 합니다. 지난 2018년 매체 '러너스 월드'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많은 이들이 킵초게의 페이스에 도전했지만 1분도 못 버티고 넘어진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영상을 통해 잠시 감상해 보시죠!





작가의 이전글 Step Out of Your Hea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