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초보자의 다짐글
28년 간의 직장 생활 기간 중 저는 절반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 연고지가 아닌 타지에서 근무를 했었습니다. 비연고지 근무의 장점 중 하나는 퇴근 시간의 구애됨이 없이,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업무 열정을 해당 근무지에 무한정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낯선 곳에서의 근무 환경은 기존 업무 환경에서 만들어진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생경한 근무 환경에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리셋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익숙함과의 결별'이자 '낯섦에 대한 설렘'이 교차했다고나 할까요.
새로운 근무지에 부임하면 기존 근무처에서 '관성'과 '항상성'에 길들여져 보이지 않던 관점의 변화가 저절로 생깁니다. 기존 근무지와 새로운 근무지와의 자연스러운 비교 분석을 통해 조직과 성과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때 가장 중점적으로 하는 것은 바로 현장 위주 근무입니다. 현장에 모든 해답이 있기 때문이죠.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 현장에서 열린 마음으로 직원들과 함께 땀 흘리고 소통을 하다 보면 제가 원하는 '일하는 조직'과 '효율적인 업무 루틴'을 조직 속에 구현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대우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직원들을 대우하는 것이 저의 노하우라면 노하우가 될 것 같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을 하게 만드는 또 다른 도구는 열심히 땀 흘린 후 이어지는 술자리의 향연입니다. 요즘은 MZ세대를 중심으로 회식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만연하지만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만 해도 그 정도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회식을 바라는 직원들이 많았다고나 할까요. 저처럼 연고지를 떠나 비연고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적잖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술자리에서는 가급적 업무 얘기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대신 개인의 관심사나 인생에 관한 얘기를 주로 하죠. 술자리는 철저하게 사적 영역인 셈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술자리에서도 '일잘러'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관계 중심적 사고를 하는 직원들이 원래 일도 잘하고, 술자리의 분위기도 업! 시킨다는 말이죠.
하지만 저는 가급적 MBTI 성향 중 'I'성향이 강한 직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업무 외적인 얘기를 자주 하고, 또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여태껏 몰랐던 그 직원만의 숨겨진 장점들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러한 그의 장점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술자리나 동아리 회식 등 직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은근슬쩍 언급함으로써 다른 직원들에게 그 직원에 관한 관심과 좋은 인식을 심어주고, 친밀감을 형성하도록 도왔습니다.
팀워크를 만들기 위한 선결 조건은 바로 직원들과의 친밀감과 원활한 소통입니다. 친밀감과 소통만 원활하게 이뤄지면 그다음엔 자연스럽게 업무 성과와 효율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저는 내적 성향의 직원들을 외적 성향의 직원들과 이어질 수 있도록 브리지(bridge)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년 간 점장 생활을 나름 잘해올 수 있었던 것은 일명 '히든 스타 직원 발굴하기 프로젝트'였던 것이죠. 이와 같은 소소한 프로젝트는 직장 생활 내내 저의 직원 관리 비결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바꾼 직원들 대부분은 현재 점포에 잘 적응해서 제 몫을 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글을 적다 보니 또 제 자랑질이군요. 잠시 삼천포를 빠져나가겠습니다. ^^;
비연고지 근무의 또 다른 장점은 주말 부부로 지내는 것입니다. 저보다는 짝꿍에게 더 큰 혜익이 있다고나 할까요. 짝꿍의 입장에서 볼 때 주말 부부는 전생에 삼대덕을 쌓아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자주 들었다고 하더군요. 짝꿍의 이웃사촌 중 아는 언니 한 명은 남편이 기업체 대표라서 돈을 잘 벌지만 근무지가 집과 가까워 하루 삼시세끼를 집에서 꼬박꼬박 챙겨 먹는 삼식이 유형이라 매일 밥 차려주는 게 너무 힘들다고, 주말 부부로 지내는 짝꿍이 너무 부럽다고 말했답니다.
퇴직 후 백수 신세로 짝꿍과 함께 집에 있다 보니 삼시세끼를 차리는 짝꿍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먹고 나서 잠시 쉬고 나면 바로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끼니 걱정의 무한 루프에 갇힌 삶은 짝꿍에게는 큰 부담이자 고충이었던 것이죠. 그럼 당신이 요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요리를 하려고 시도를 몇 번 했는데 재료와 용기가 어디 있냐고 계속 묻는 통에 짝꿍이 더 귀찮고 번거롭다며 주방 출입을 아예 금지시켰죠. ^^ 또 다른 핑계를 대자면 운동과 글쓰기로 바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식당 창업 이후 저는 주방을 전담하고 있는데 예전 짝꿍의 고충 가담자로서 소홀했던 벌을 한꺼번에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식당 개업 후 고되고 힘든 자영업 세계에서도 짝꿍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삼시세끼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란 걸 저는 얼마 전 짝꿍과의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힘든 식당 일에도 뭔가 짝꿍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한 개라도 있다나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예전 짝꿍이 하던 고민이 요즘 제게로 넘어왔습니다. 가족들과 식사 준비가 주방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건 주방 이모가 베테랑이란 점이죠. 주방 이모는 제가 뭐든 요청만 하면 원하는 메뉴를 계량의 과정 없이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냅니다.
참고롤 식당을 운영하면 직원 식사는 영업시간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점심은 10시 반경, 저녁은 15시경에 주로 합니다. 식사 메뉴 선정은 사장인 저와 주방 이모가 그날그날 있는 식재료로 메뉴를 결정하는 편입니다. 모두들 영업 준비로 바쁘기 때문에 가급적 있는 식재료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풀떼기만 먹고살 수 있나요? 가끔은 더위로 지친 가족과 이모들의 입맛을 북돋우기 위해 제가 직접 특별 요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코다리조림 소스를 활용하면 닭볶음탕과 돼지제육볶음 정도는 아주 무난하게 요리합니다. 메뉴로 출시해도 될 정도지만 먹는 사람들이 말리더군요. 있는 메뉴나 제대로 잘 만들라고요. 얼마 전 저는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직접 짜장면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물론 너튜브에서 핫한 백선생 레시피를 참조했습니다. ^^ 일전에 주방 실장이 도전을 했지만 실패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처음엔 긴장도 조금 했지만 막상 요리를 하면서 제 자산이 나름 요리에 재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제가 만든 짜장면은 배달 음식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들었죠. 아들은 1.5인분의 짜장면을 다 먹은 후 남은 짜장 소스에 밥 한 공기를 다 비벼 먹었고, 소식하던 홀 이모도 짜장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깨끗하게 드셨으니 나름 저의 짜장면 스킬 시전은 성공한 셈입니다.
주방 이모가 집에서 가져온 새송이 버섯 때문에 만들게 된 '새우 버섯 감바스'도 나름 이모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메뉴입니다. 이모 두 분은 생전 처음 맛보신다고 아주 좋아하셨죠. 식당을 운영하면 웍을 이용해 센 불로 요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요리라도 집에서 하는 것과는 확연하게 불맛의 차이가 발생해 정말 요리할 맛이 난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각종 채소와 양념, 식재료가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쉽게 조리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전에 저는 퇴직 후 인생 2막을 설계할 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짝꿍과 함께 하고 싶고, 또 그렇게 할 거란 얘기를 글로 적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처음 식당 창업을 결심할 때 제가 가장 기뻤던 것 중 하나는 일을 하더라도 사랑하는 짝꿍과 일터에서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죠. 처음엔 식장 창업을 강하게 반대했던 짝꿍도 식당을 잘 운영해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조건부 승인으로 식당 창업에 동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짝꿍은 홀을, 저와 아들은 주방을 담당하는 것으로 상의한 후 식당 창업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많이 달랐습니다. 하루 종일 한 곳에 있어도 예천처럼 서로 다정하게 함께 있을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밥 먹을 때가 되어야 서로 얼굴을 보며 얘기할 수 있었을 정도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죠. 짝꿍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추가적인 사실은 짝꿍이 예전부터 제가 알고 인식하던 짝꿍의 모습과 판연하게 달랐다는 점입니다. 외벌이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몰랐던 짝꿍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된 것이죠.
얼마 전 집객을 위한 아이디어를 논의할 때였죠. 2인 이상 주문이 가능했던 식사 메뉴를 1인이 와도 주문 가능하도록 모든 메뉴를 1인 메뉴화를 하자는 이슈를 논의하던 중 짝꿍은 유독 한 가지 메뉴만은 안된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메뉴는 다름 아닌 낙곱새였죠. 낙곱새의 경우 마땅한 1인용 용기가 없어 동태탕 용기인 뚝배기를 활용하자는 저의 주장이 짝꿍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뚝배기를 활용해 낙곱새를 만든다면 조리가 끝난 후에도 뚝배기의 온열이 식지 않고 계속 남아 낙곱새의 맛이 조려지면서 더운 진한 맛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저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짝꿍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며 계속해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저는 결국 화를 삭이지 못하고 직원들 앞에서 "그만 고집 피워라"며 버럭 고함을 질러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말이죠. 이후로도 식당 운영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로 계속 충돌했고, 관계의 온도 또한 계속해서 냉랭해져 갔습니다. 저도 한 고집 하는데 짝꿍 또한 저 못지 않게 한 고집 했던 것이죠. 어떨 때는 심지어 제가 여태껏 알고 있던 짝꿍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나 짝꿍도 결국 식당 운영을 잘해보자고 하는 의도인데 뭣 때문에 의도치 않은 의견의 불협화음과 충돌이 만들어지는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 것이죠. 서로 몸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치쳐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건전한 의견 교환을 내가 너무 내 위주로만 생각해 오해한 것일까? 아니면 매출 스트레스 때문에 만만한 짝꿍에게 화풀이를 한 것은 아닐까? 등 혼라스러웠던 감정 찌꺼기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분석했습니다. 제가 너무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에 짝꿍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완성도 없이 너무 서둘렀다는 것이 제가 내린 최종 결론이었죠. 모든 원인이 저였다는 사실을 인지하니 짝꿍에게 많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옹졸한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하진 않았죠.
얼마 전 식당 영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친 후 시원한 캔 맥주를 마시면서 짝꿍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저를 위해 조심하고 배려를 해주었지만 지금은 함께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으니 그렇게까진 할 필요가 없어 이제는 할 말을 다 한다는 것이 짝꿍의 진심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죠.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할 말을 하고 살자는데 섭섭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예전처럼 참으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또 할 말도 못 하고 사는 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편으로 홀을 책임지고 있는 짝꿍의 입장에서 보면 짝꿍의 고집스러움과 집요함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인 메뉴를 출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완성도를 높이지 않은 1인 식사를 마친 고객들이 실망을 한 후 다시는 재방문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식당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것을 저는 깨닫게 된 것이죠. 조급한 마음에 고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음의 소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객 접점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짝꿍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지 않은 제 자신이 무척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식당 창업 전 오랜 기간 식당을 운영해 온 절친의 말을 빌리면 부부가 함께 식당을 운영하면 다정했던 부부도 관계가 소원해지기 쉽다더군요. 사장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가장 만만한 부인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부부가 식당 창업을 한다면 말리는 것이 친구의 중요한 미션(?)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예전부터 가까운 사이일수록 동업을 하지 말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관계를 끝장내고 싶으면 동업을 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죠.
처음에는 친구가 식당 창업을 도와주기 번거로워서 이런 충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 아닌 오해도 했지만 막상 부부가 식당 창업을 해보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사업이란 것은 부부끼리 단순히 일을 도와주는 관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업 이슈로 서로 얽히고설키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적 이슈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 식당 창업에 관한한 저와 짝꿍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생각의 각도를 잠시 다른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저와 짝꿍이 사업 이슈에 관한 다양하고 건전한 논쟁과 의견 교환을 하면서 오히려 자영업자로서, 사업가로서, 파트너로서 상호 성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서로 간의 생각과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와 짝꿍은 이전보다는 좀 더 유연하고 포용적인 사고와 언어를 구사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모든 여정이 식당의 장밋빛 미래를 위한 것임을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짝꿍은 식당 문을 함께 닫고 집으로 걸어갈 때 그날그날 있었던 고객과의 에피소드와 해프닝을 제게 얘기해 주곤 합니다. 어떤 고객이 주문한 메뉴가 짜다거나 맵다거나 불만을 토로했는데 즉시 사과하고 술이나 음료를 서비스로 제공했더니 오히려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그리고 어떤 분은 차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예전에 맛있게 드셨던 동태찜 생각이 나서 차를 돌려 식당에 들러서 동태찜을 포장해 가기도 했다고, 최근 통 입맛이 없어 음식은 전혀 못 드시던 할아버지를 위해 우연히 식당에 방문한 할머니가 동태탕 한 그릇을 아주 맛있게 싹싹 비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잘 먹었다며 짝꿍에게 꼭 재방문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얘기는 식당 운영을 하는 제게 있어 큰 감동적인 스토리였습니다.
짝꿍은 요즘 한술 더 떠서 손님이 음식을 많이 남기고 가실 때면 저와 아들을 호출해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꼭 맛을 보도록 종용하기도 합니다. 만약 코다리조림이 너무 질기다든지 아니면 너무 짤 경우 다각도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 개선하도록 요청도 합니다. 요즘 저는 여태껏 제가 알던 주부로서의 짝꿍의 모습이 아닌 직업인, 아니 사업가로서의 짝꿍의 새로운 면모를 눈앞에서 목도하는 중입니다. 짝꿍에게 이런 열정적인 모습이 있었는가 하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간혹 매출 부진으로 제가 괜히 식당 운영을 해서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할 때면 원래 식당 일이 초기에는 잘 될 때도 안 될 때도 있으니 무더운 여름만 잘 넘겨보자는 위로도 건넵니다.
예전 점포 점장으로 근무를 할 때 고객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고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객이 불만을 토로할 때 자신의 권한으로 뭔가 즉각적인 서비스나 보상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고객 불만 처리는 회사의 기준과 원칙에 따라 제공해야 하나 고객 불만의 특성상 상황별 고객의 유형에 따라 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고객의 불만과 요구가 과도할 경우 고객 센터 직원들 대부분은 일반적으로는 회사의 기준과 원칙을 언급하며 불가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고함을 치거나 생떼를 부릴 때는 기준과 원칙을 벗어나 무조건 고객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음을 센터 직원들도 알고 있고 있습니다.
기준과 원칙, 상식이 일반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다면 직원들은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한때 고객 센터 담당자에게 교환이나 환불, 보상에 관한 전권을 부여하자는 의견을 회사에 건의한 적이 있습니다. 어차피 블랙 컨슈머는 통계적으로도 아주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죠. 만약 고객 센터 담당자에게 교환이나 환불 또는 보상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준다면 초기 불만 고객 응대에 있어 가용한 모든 유형의 서비스를 즉각적으로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고객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한 고객 만족도 또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식당 운영을 하면서 어쩌면 고객 접점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해내는 사람은 짝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짝꿍은 제가 별도로 얘기하지 않아도 자신이 가진 책임과 권한을 고객 접점에서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고객 응대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짝꿍의 그런 책임감 있는 식당 운영의 태도는 분명히 제가 바라는 식당의 장밋빛 미래를 만드는 일조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짝꿍에게 고함을 친 것을 사과하고, 또한 짝꿍의 직업적 소명 의식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부부 창업을 꿈꾸는 분들께 제가 드리고 싶은 현실적 조언이 있습니다. 좁은 한 공간에 하루 종일 함께 있다 보면 부딪힐 일도 많고, 가끔은 가까운 관계여서 여과 없이 말을 내뱉다 보면 감정이 격앙되고,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사소한 일일 수도, 사업의 방향을 정하는 중대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조건 회피하기보다는 감정의 누그러뜨린 후 차근차근 대화로써 풀어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공사를 구분해 해당 업무에 관한 한 전담하는 상대방의 의견을 따르고 존중하는 편이 좋습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의 각도를 틀면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보고 있다고 해석함으로써 오히려 사업의 방향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또 그것을 적용한다면 상호 간에 큰 의지와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매출이 부진하다면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대박 사업을 꿈꾼다면 애초부터 고되고 힘든 자영업자의 삶이 시작이 된 겁니다. 그러니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단골손님이 늘 때까지 매출이 부진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면 초조함과 불안감이 어느 정도 누그러질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힘이 든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버나드 쇼의 명언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건전하고 사소한 논쟁이나 다툼은 서로 간의 눈높이와 생각을 맞춰가는 과정이고, 또한 부부 창업을 하는 자영업자로서 겪어야 할 담금질의 과정이며, 사업의 장밋빛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여정임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사의 민낯을 보려면 현장에서 부딪히며 그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고객 한분 한 분을 성심성의껏 대접하고 만족시킨다면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손님이 하시는 말씀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손님은 언젠가 최고의 영업사원이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창업을 한다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고,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지고 일을 한다면 더 내실 있고 효율적인 식당 운영이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최대 고정비라 불리는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악의 경우 매출이 부진해 직원을 해고할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어찌 됐든 식당 운영은 해나갈 수 있을 테니깐요.
비수기라고 불리는 여름 초입에 식당을 오픈했습니다. 식당의 전 메뉴가 현재 매운 음식들이어서 향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하절기 동안에는 집객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이열치열'이라고 더울 때 매운 음식으로 더위를 쫓는 손님들도 간혹 있지만 소수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저는 매출이 다소 부진한 원인을 양이나 맛, 서비스 등의 내부적 요인에서도 찾지만 무더위나 도보고객 부족 등의 외부적 요인에서도 그 귀책사유를 찾고 있습니다. 주방을 책임지다 보니 자꾸 외부적 요인에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9월이 오면 '맵신락(매운 것을 즐김)'이란 구호를 사용하는 저희 식당 운영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홀을 담당하는 짝꿍은 변치 말고 앞으로도 지금 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고객 한분 한 분을 성심성의껏 모시면 될 것이고, 주방을 담당하는 저와 아들은 음식 재료의 품질, 음식의 맛, 음식의 양 등을 개선함으로써 맛집으로의 등업을 도모해야 한다면 향후 구전효과와 고객의 재방문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고 제가 원하는 식당 운영의 장밋빛 꿈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혹시 부부 창업을 고려하고 계시다면 너무 망설이지 마시고 실행에 옮김으로써 인생이 주는 도전과 시련에 적극적으로 응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주저하거나 머뭇거리기에는 너무나 짧기 때문입니다. 창업 후 매출이 부진하더라도 일희일비 마시고, 하루하루 고객 한분 한 분을 소중하게 대접하고 성심성의껏 모시고, 꾸준하게 맛의 품질을 업그레이드해 나간다면 5년 내 폐업률이 80%대에 육박하는 소상공인 시장에서도 살아남아 상위 20%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식당을 개업한 지 겨우 1개월이 지난 창업 초보자로서 이런 류의 글을 작성한다는 것이 한편으로 같잖고 다른 한편으로 뻔뻔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오늘 쓴 글은 사실 식당 창업 이후 힘들어하는 제 자신의 상황을 반추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초심자의 다짐글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저와 같은 상황을 겪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시라고 작성하였으니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인생 2막 식당 창업기에 관한 시행착오 만땅, 좌충우돌 도전기는 앞으로도 쭈욱 계속됩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끄럽지만 최근 제가 만든 낙지볶음, 시래기코다리조림, 동태찜 사진 조심스럽게 올려봅니다. ^^ 물론 낙곱새, 동태탕, 명태비빔냉면 사진은 사진을 찍으면 별도로 업로드하겠습니다.
식당 밖에 여름 장맛비가 내리네요. 오늘 추천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