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장사 없다!!!
재난 영화가 따로 없었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내리친 후 억수같이 내리는 폭우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피해의 상흔이 크게 얼룩져 남아 있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곳곳에 폭우로 인한 시설물 파손, 침수, 정전 등 비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했습니다. 대구의 동서를 잇는 왕복 10차선 도로인 달구벌 대로변의 가로수가 쓰러져 한때 차량 통행이 제한되기도 했고, 동구 효목동의 하수가가 역류해 도로가 침수되어 하수가 범람하기도 했습니다. 폭우에 간판이 떨어지고, 아파트 공사장에는 가림막이 쓰러지는 등 비피해가 속출했습니다. 강풍에 폭우가 가로비 형태로 내려 식당 안을 위협할 정도였죠.
기상청 '일기 예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진 탓인지 이제는 TV나 기상청의 '일기 예보'가 아닌 SNS를 통한 실시간 '일기 중계'를 보는 것이 어느덧 일상이 되었습니다. 폭우 관련 피해 소식도 제일 먼저 SNS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폭우가 할퀴고 간 상흔은 식당 영업에도 이어졌습니다. 오전 폭우가 억수로 쏟아지는 동안 길거리에는 행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점심때가 되었지만 텅 빈 식당 안은 황량한 사막처럼 적막감마저 감돌았습니다.
손님이 오시기만 학수고대(鶴首苦待) 했지만 이 정도의 폭우를 뚫고 오신 분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잠시 인근 식당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식당 입구의 캐노피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식당을 살펴보았지만 그쪽 상황도 별반 다르진 않았습니다. 다행히(?) 손님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죠. 식당 주인들 대부분 멍하니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폭우가 내리는 밖을 쳐다보고 하염없이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는 오후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하루 공치겠다 싶었죠.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저는 손님도 없으니 우리 식당 식구끼리라도 오랜만에 후드득 빗소리를 들으며 막걸리라도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장 위에 왕회장(?)이 홀에 딱 버티고 있는 환경이라 조금은 눈치가 보였습니다. 영업 중 음주는 암묵적으로 금기사항이었던 것이죠. 저는 홀에서 폭우 상황을 지켜보며 망연자실한 짝꿍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안 되겠다. 오늘 같은 날은 막걸리라도 한잔 해야지. 안 그러면 화병 나겠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평소 같으면 갖은 인상을 찌푸리며 제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낼 터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주류 냉장고로 성큼 이동해서 맥주 한 병을 꺼내 제게 씨익 한번 웃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니 짝꿍도 마음이 심란했던 것 같습니다. 이럴 때라도 부부간의 호흡이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막걸리 작전은 실패했지만 의도치 않은 맥주 작전은 성공했으니 이 정도라도 만족해야 하는 게 사장으로서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참고로 맥주는 짝꿍의 최애템이기도 합니다.
저는 일전에 짝꿍이 사둔 김부각 튀김을 들고 자리 세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은 한 명도 없었지만 오랜만에 영업 중인 식당에서 오붓하게 식당 식구들끼리 한가로이 낮술을 즐기게 되었으니 이 또한 식당 영업의 큰 즐거움이 아니겠습니까? 술도 있겠다 안주도 있으니 말이죠. 비록 폭우로 손님이 한 명도 없었지만 그 빈자리를 식당 식구들 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비가 그친 저녁에는 몇 테이블이 손님들로 채워졌습니다. 비록 적은 손님들이었지만 그렇게 반갑고 소중할 수 없었죠. 주문하신 메뉴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을 쏟아 조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그 이후에는 마감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손님들의 방문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날은 식당 개업 이래 역대급 매상을 기록한 하루였습니다. 비록 초복과 폭우가 매출 부진의 핑곗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마음 한 켠에는 왠지 모를 허무하고 씁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성과는 있었습니다. 영업 중 손님 테이블에서 낮술을 한 것!입니다.
저는 예전 식당 창업을 하기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우노 다카시가 지은 《장사의 신》입니다. 일본의 선술집(이자카야)에서 자영업을 시작해 엄청난 부를 이룬 분이죠. 그 당시 저는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이 너무 배울 것이 많아 제 블로그에도 요약본을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손님이 없어 한가할 때도 절대 한가하다는 인식을 손님에게 보여주면 안 됩니다. 한가할 때는 청소를 하거나 부재료를 다듬거나 기존 손님들을 위해서 서비스 메뉴를 더 제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악천후 때 찾아오는 손님은 정말 귀한 손님이다. 행운의 부적처럼 잘 대접하고 감사를 표해야만 한다. 만약 폭우가 내릴 때 들어오는 손님이 있어 타월을 건넨다면 큰 감동을 받는다. 혼자 온 손님과는 같이 한잔할 수 있는 적극적인 태도도 필요하다. 그런 손님에게는 자신이 아끼는 술을 한잔 따라주거나 가볍게 잘 먹는 안주를 건네준다면 그 손님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 우노 다카시,《장사의 신》-
저는 폭우가 내려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 장사의 신이 알려주는 영업의 비결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장사의 비결이고 나발이고 그냥 모든 조바심과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막걸리 한잔으로 그 씨름을 잊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잠시나마 나약한 의지를 꺾지 못하고 악마의 유혹에 흔들린 제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만약 다음번에도 폭우로 손님이 한 명도 없다면 장산의 신이 가르쳐 준 비결을 실천할 예정입니다. 주방을 청소한다든지 손님이 올 경우를 대비해 반제품을 준비하거나 재고를 확인해 장 볼 것을 체크할 에정입니다. 그다음엔 식당 식구들을 잠시 모아 다시 막걸리 한잔을 걸칠 겁니다. ^^ 농답입니다. 식당 식구들을 모아 티타임이라도 하면서 집객이나 서비스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라도 모을 예정입니다.
여하튼 금번 폭우 상황으로 장사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이로써 저는 이번 폭우를 통해 장사꾼으로서 다시 한번 체질과 마인드셋을 가다듬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맨날 비만 내리면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는 걸까요? 다음번에는 비가 올 때 꼭 파전을 만들어 먹어봐야겠습니다. 물론 제 사무실에서 짝꿍 몰래 막걸리도 한잔 걸쳐야겠지요. ^^
Rhythm Of The Rain - The Cascades (♬ 빗줄기의 리듬 -케스케이드) 1962, 가사 한글자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