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 #희망퇴직 #한산도 #전원주택 #낚시 #죽음
MBN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자연인'을 항상 꿈꿔왔던 절친 한 명이 있었다. 해병대 출신이자 낚시 마니아인 그 친구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늘 주말이면 전국의 모든 바다낚시 포인트를 찾아다니곤 했다. 당연히 평일 퇴근 후에는 아쉬움이 남는지 TV 채널을 이리저리 탐색하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찾아보고, 심지어 재방, 삼방까지 챙겨보던 친구였다. 직장인 누구나 말하는 'S생명'이었다. 죽음과 가까이서 삶을 바라봐서인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살아있을 때 지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아야 죽을 때 덜 후회한다"라고 늘 내게 말하곤 했다.
예전에 같은 건물에서 지점장을 했던 친구라 유달리 친분이 두터웠다. 여성을 많이 대하는 직업의 특성상 늘 스트레스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퇴근 후 술자리도 잦았다. 그 후로 난 계열사 전배로 다른 직장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고, 가끔씩 통화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내가 지방 근무로 발령이 나면서 그 친구와 같은 지역에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 못하는 낚시지만 그 친구를 만나서 가끔은 방파제 낚시를 배우고 함께 잡은 선어들을 그 자리에서 회를 떠서 먹기도 했고, 아내가 몸이 안 좋을 때 그 친구는 숭어를 잡아서 집에서 매운탕을 끓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그 친구 부부와 우리 부부는 양가를 오가며 가족 간 정을 돈독하게 나눴다.
내가 다른 지방으로 이동해서 근무를 할 때 그 친구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뭔 일이고?"
"야 내가 드디어 꿈꾸던 퇴사를 하게 되었다"
"진짜가? 둘째가 아직 고등학생인데 정신없는 것 아이가?"
"아이다. 이번에 희망퇴직이 있어서 단디 맘먹고 신청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하루라도 빨리 지 좋아하는 것 하다 죽어야 안 되겠냐"
"정신 차려라. 애들 대학교는 졸업시키고 그만둬야지. 제수씨는 뭐라고 하더노?"
"집사람이야 아무 말 안 하지. 우짜겠노. 남편이 하고 싶다는데. 그냥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기라. 그리고 기왕 하려면 오십 대가 되기 전에 해야지 인생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기라"
"생계는 우짤끼고?"
"적금하고 명퇴금 나온 거 다 주고 떠날끼다. 무책임하게 그냥 가는 건 아니니 걱정 마라. 집사람은 지금 하는 공부방 좀 더 해야 안 되겠노"
뭐가 급했는지 그 친구는 잘 다니는 회사를 때려치웠다.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돌겠다고.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용기를 낼 수 업을 것 같다고 말을 마무리했다. 계속되는 나의 설득도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예전부터 간절하게 꿔왔던 '자연인'의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친구의 얘기가 더 이상 남의 얘기로 들리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하루빨리 이 전쟁터를 떠나 자연으로 회귀하고 싶었던 것이다. 난 그 친구처럼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내심 내가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두려움이 내면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로 욕을 했지만 한편으로 그 친구의 단호한 결정과 용기가 부럽기도 했다.
술자리가 이어지자 안주가 부족했고, 급기야 청년회장님이 직접 집으로 뛰어가 현지에서만 잘 잡힌다는 벵에돔을 가지고 와서 직접 구워 주셨다. 현지에서 먹는 게 뭐가 맛있지 않겠는가? 마지막은 해장라면으로 마무리했다. 이튿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학림도 곳곳을 산책했다. 특히 조망대에 오르니 학림도 주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이래서 내 친구가 여기에 터를 잡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때가 되니 전일 우애를 다졌던 형님들께서 점심을 초대하셨다. 근데 장소가 학교였다. 학생 세명과 선생님 한 명이 다인 조그마한 분교였다. 점심의 경우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점심을 대접한다고 했다. 그날 점심은 초밥이었다. 형님의 초밥 만드는 솜씨는 거의 전문 초밥집 이상이었다. 활어회 초밥이다 보니 회도 두껍고 맛도 일품이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맛이었다. 이곳 현지인들이 아니면 절대 맛볼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그렇게 초밥으로 해장을 마친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잠시 후 친구를 따라간 곳은 바로 형님의 배가 정박한 곳이었다. 선생님을 출퇴근하는 것도 학부모들이 챙기고 있어 집으로 갈 거면 배에 타라고 형님이 말했다. 배에 타니 형님이 투망으로 잡았다던 대형문어 한 마리와 엄청나게 많은 해삼을 큰 봉지에 담아서 섬을 떠나는 우리 부부에게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셨다. 우린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너무 대접받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학림도 일정을 끝마쳤다.
요즘 그 친구가 한산도에서 내게 했던 말이 자주 생각이 난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내 친구는 순수 자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제멋대로 재미있게 사는 이방인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친구가 정말 부럽고 멋있는 것은 바로 가진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서 떠나는 용기라고 나는 소심하게 말할 수 있다. 사실 나는 현재 내가 해야만 하는 책임과 의무를 포기하기가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들개가 된 친구와 달리 난 여전히 언제 버려질지 몰라 전전긍긍 두려워하는 집개인 것이다.
"친구야 조금만 기다려라. 그리로 달려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