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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또 다른 계절

메트로(METRO)

by 윤이프란츠

무가지 신문 '메트로(Metro)'가 시청역 입구 가판대에 놓여 있다. 요즘은 노점상에서도 보기 힘든 종이신문이지만, 출근길을 서두르는 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호들갑 떨며 집어가려던 상황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메트로폴리스는 거대한 도시다. 도시 크기에 비례하여 켜켜이 쌓인 욕구 충족 위해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 요하고, 자본 증식 위해 은 수단과 방법이 동원다. 도시로 유입된 사람들은 대개 노동자가 되어 경제적 효율과 생산이란 미명 아래 분주해진다. 보이지 않는 시장에선 노동 가치가 양질로 측량되고, 임금 구조의 차별은 합리적이게 된다.


메트로 노동자들은 새로운 소비 주체가 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시장에 나와 지출을 할 땐, 적어도 주인이 된 것 같은 의식을 누게 된다. 물질적 결핍과 부 대한 갈망은 도시게 확장킨다. 각종 생산 공정 등을 마련하기 위해라도 메트로는 은 것을 속 블랙홀처럼 빨아드야 한다. 리고 촘촘한 신경망 린 익명의 사람들 빠져 없다.


언제나 메트로는 우리의 발전된 미래상을 제시한다. 그리고 지루할 틈 없이 일상의 스타일과 패턴을 변형시킨다. 온갖 유형의 감성과 유행 빠르게 소비하고, 탐닉과 쾌락의 숨을 가쁘게 할 것이다. 사람들은 휴식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자본은 사소하고 은밀한 까지 탐색 것이다. 자신의 전문성이나 생산력이 삶의 질을 결정할 것이며, 돈의 광맥을 찾을 것이 환상에 빠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바탕 치열한 경쟁로 난리를 친 엔 낙오가 남는다. 아포리즘 같았던 광고는 힘을 실하고 추상적인 감각만 남는다, 전에 풍미했던 열기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뚜렷한 실체도 없 사진 인쇄되어 길 바닥을 나뒹군다. 그리고 메트는 누군가 소중했던 꿈과 공간을 지우고, 시 익명으로 채운다



레트로는 함부로 구겼던 종이를 순히 펼치는 게 아니다. 기성세대의 추억을 소환거나, 런 문화를 소비려는데 지도 않는다. 금도 뒷골목 어디선던 과거 꺼내는 , 하찮 때문에 숨겼던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현대적인 것 가미했다고 꼭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진 않는다.


고물처럼 홀대받던 옛날 카메라, LP 등과 같은 거꾸로 찾는 일은, 바쁘게 아가면서 꽃을 한시 했던 아찔 삶의 반성이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내가 누구였는지, 어떻게 시절을 냈는지 기억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세련되고 멋진 도시울리지 않 초췌한 골목을 것이다.


매년 봄이 오면 지난날을 소환했던 레트로처럼, 메마른 가지 위에서 벚꽃들이 피어난다. 옛날에 보았던 벚꽃들과 지금 다시 보는 모양이 전혀 다르지 않은데도, 어찌 된 일인지 벚꽃은 점점 더 화려해지는 것만 같다. 건 내 삶의 청춘이 시들어 가기 때문일지 모른다. 과거 윤중로를 걸으며 벚꽃을 맞이했던 사람 지금 와 같을 것이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너와 나의 봄이 언제부터 시작될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될지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것이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려야 일제히 벚꽃이 사그라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올해는 한 방울 비가 떨어진 적도 없는데 벚꽃들이 지 한다. 벚꽃들은 때가 되면 피었고, 때가 되면 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애먼 비를 탓할 일은 아니다. 만약 우리의 추억이 개화하기 시작했다면 지금이 적기인 까닭이다. 메트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가 너무도 산적한 까닭에, 심지어 젊은 세대마저 과거를 소환해 겪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시절을 음미하려 한다. 자신들의 모순과 정체된 현실을 읽으면서 말이다. 이제 곧 메트로에는 또 다른 계절이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벚꽃처럼 사라져 간 것을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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