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프란츠 Jun 19. 2024

찌그러진 꽃

펴드립니다


어느 집에나 있는 게 양은 냄비이다. 멀쩡한 것 없이 여기저기 우그러지고 찌그러진 것. 그것은 주방 어딘가에 처박혀 뜨거웠던 시간을 추억한다. 쉽게 달궈지는 불같은 속성 때문에 냄비 근성이란 오욕(汚辱)의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여전히 라면이나 찌개를 급히 끓일 때 제격이다. 몇 천 원이면 사는 싸구려라 요즘은 일회용품처럼 쓰고서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니 소중히 다루어질 리 없다.


어릴 적 시골에 닷새 장이 열리면 터 한 구석엔 칼 가는 아저씨가 있었다. 어떤 칼이든 그 손에 닿기만 하면 뭉뚝했던 칼날이 서슬 퍼렇게 변했다. 칼이 잘 갈아졌는지 칼자루를 치켜들고 홉뜬 눈으로 날을 노려 보는 그는 마치 검객 같았다. 그가 평평하게 다듬은 숫돌 위에 칼을 눕혀 스삭스삭 을 갈 때마다 까만 물이 떨어졌다. 그렇게 칼은 검은 떼를 밀어내고 날카롭게 번뜩였다.


칼 가는 아저씨는 칼만 갈았던 게 아니다. 가끔씩 찌그러진 냄비나 솥 같은 걸 맡기면 반듯하게 펴는 일도 했다. 처음 시작할 땐 큰 망치 두들기다가 뾰족하고 둥근 작은 망치로 마무리를 했다. 쭈굴쭈굴한 면의 앞뒤를 번갈아 란하게 망치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깊게 파였던 주름은 깜쪽같이 사라졌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도 함부로 버리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도 양은 냄비인 것 같다. 쉽게 감정을 들끓고서 이내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노란 살갗이 하얗게 벗겨질 때까지 열정과 냉정 사이를 반복하는 것. 까맣게 그을린 자국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며  탓 하는 것. 철없이 변덕스럽고 게걸스레 내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했다. 누군가의 어그러진 심정을 보듬지 않고, 순전히 나만 힘들었을 란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찌그러진 곳 펴드립니다. 깨진 인생도 땜질합니다. 반드르하게 구김살 없이..."


어디선가 날 꽃이라 부른 것 같았다. 날 꽃이라 부르는 건 내가 어떤 꽃으로 살아가길 바란 것일 테다. 하지만 나는 러진 꽃이다. 깡통처럼 일그러져 반듯지 못한 건 누구 탓만이 아니다. 단단하게 뭉쳐진 자존심과 오만 때문에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나도 누군가의 꽃을 함부로 찌그러트렸으면서 나만 찌그러진 꽃인 줄 알았다. 이제는 당신의 찌그러진 곳을 펴주고 싶다.



평창동 서울시립미술관 아카이브




매거진의 이전글 뱀딸기와 바나나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