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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프란츠 Jun 26. 2024

다 알지는 못해도


요즘 골목길에 잘 모르는 안개꽃처럼 생긴 작고 하얀 꽃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생긴 꽃인지, 어떤 향이 나는지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보지만, 그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일부러 알려고 하진 않았다. 우리 동네에 내가 모르는 꽃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과연 내가 모든 꽃을 다 안다고 해서 이 꽃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돌보지 않았어도 작은 꽃들은 스스로 피었다 진다.


모르는 게 많다고 반드시 고달픈 게 아니다. 오히려 순수한 무지는 상상력을 동원해 로맨스든 스릴러든 한량없는 이야기를 만든다. 잘 모를 때에 사랑이나 그리움이 절실히 다가오지 않았던가. 오히려 많은 것들을 알고 난 뒤 평범한 감정과 일상이 된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알았다고 해서 정말 제대로 알기나 했던 것일까, 때론 검부러기처럼 잡다한 것을 부여잡고 악착같이 안다고 우겼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현실은 해류와 같아서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적 기분에 빠질 때가 있다. 진심을 다해도 현실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기분이 지금 든다면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말자. 현실이 단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겠지만, 현실의 너울은 참으로 유연해서 파고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 건 무례한 감상이다. 현실은 가칠가칠한 가시덤불 속에 나를 욱여넣기도 하고, 절망의 순간에 하얀 가시꽃을 피우기도 한다.


지금 그리워하는 것이 있는지 모른다. 진정 누군가를 또는 무엇을 그리워도 허둥대지 말고, 보고 싶은 걸 못 본다고 해서 뚫린 마음을 급히 채우진 말자. 나는 변덕스럽고 욕망하는 것 조차 시시때때로 변하여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빈 곳을 채워 놓고 불만이나 짜증을 뱉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채워 놓은 것들이 비죽비죽 원망을 터트린다.


내게서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들은 본래부터 사라질 것들이다. 어차피 부득부득 애써 본다 한들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입술을 핥거나 머리를 훑었다 해도, 더 이상 간절함이 맘 속에서 지속되지 않는다면 헛헛한 것이다. 심으로 대하는 건 그곳에 내 맘이 있기 때문이다. 요란스레 호들갑을 떤다고 내 맘이 그곳에 닿진 않다. 내가 진심을 다 했던들 그것이 반듯이 진실이란 법도 없고, 진실이 아닌 사실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은 내가 갈망하는 것이기에 진심이 우러나온다.


눈코 뜰 새 없이 번잡한 현실을 진지하게 살아보려 애썼던 것 같다. 단 한 번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갈지 고민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대한 현실 속에도 고통의 굴레는 있다. 아무리 현실을 직시하려 노력해도 달래어지지 않는 아픔도 있다. 현실을 잘 알지 못해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설령 내가 그러한 현실을 알았다 해도 그 과정을 피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현실을 다 알지 않아도 된다. 모르는 게 있더라도 때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것, 그저 여행자의 기분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관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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