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프라이팬의 기름 무대에 오른 건 불쌍한 대구였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통통 튀어 오르며 뜨거운 댄스를 선보였다.
그 뒤를 게가 집게발을 휘두르며 이어받았고,
정어리는 날렵한 회전을, 숭어는 한 바퀴 크게 점프하며 화려한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 멸치는 작지만 당당하게 ‘톡’ 튀어 올랐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피노키오의 차례가 다가왔다.
냄비 가장자리로 끌려간 그는 바싹 끓는 기름을 내려다봤다.
거품이 뽀글뽀글 터지며 “어서 와!”하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피노키오의 몸이 자동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고, 쇠로 된 다리마저 덜덜거리며 부딪혔다.
너무 무서워서, 살려달라는 말도 목구멍에서 막혀 나오지 못했다.
불쌍한 피노키오는 온 힘을 다해 ‘제발요’라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초록색 어부는 마치 눈에 필터를 낀 듯, 그 눈빛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는 느긋하게 손목을 털더니 피노키오를 덥석 집어 들었다.
“이건 좀 덜 묻었네.”
어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노키오를 밀가루 속에 던졌다.
그러고는 대여섯 번, 아니 열 번은 되는 것처럼 힘차게 굴렸다.
위아래, 좌우, 심지어 대각선 방향으로까지 굴리니,
피노키오는 순식간에 밀가루 파우더를 잔뜩 뒤집어쓴 모양이 됐다.
거울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자기 모습을 보고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하얀 가루로 덮여서 마치 갓 완성된 석고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미술관에 전시되면 좋으련만,
지금은 뜨거운 냄비가 바로 옆에서 보글보글 기다리고 있었다.
어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피노키오의 머리를 휙 잡았다.
피노키오의 다리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아니, 잠깐만요!”라고 외치는 듯 흔들렸다.
그러고는… 기름이 춤추는 냄비 쪽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부가 프라이팬에 피노키오를 던지려는 찰나, 동굴 입구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대한 개 한 마리가, 맛있는 튀김 냄새에 이끌려 코를 킁킁거리며 튀어 들어왔다.
어부는 밀가루 범벅이 된 피노키오를 손에 든 채 개에게 소리쳤다.
“저리 꺼져!”
하지만 개는 '물고기 한 입만 주면 꺼져줄게요'라고 말하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안 가? 그럼, 된장 발라서 먹어버린다!”
어부는 눈을 부릅뜨고 개를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개는 배가 고픈 나머지 그러거나 말거나
어부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때, 눈을 질끈 감고 기름에 튀겨질 때만 기다리던 피노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눈을 살짝 떴다.
바쿠가 나타나 어부와 대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피노키오는 소리쳤다.
“바쿠! 날 좀 구해줘! 안 그러면 난 튀김이 되고 말 거야!”
바쿠는 어디선가 피노키오의 목소리가 들리자,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어부의 손에 들려 있는
밀가루 덩어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바쿠! 나 튀김 되기 싫어!”
피노키오가 절규했다.
바쿠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훌쩍 몸을 날려 피노키오를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어부는 순식간에 피노키오를 동굴 깊숙이 던져 버리고 나무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가라고 할 때 가지 않은 죄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좀 맞아야겠다.
덕분에 이 어르신도 몸보신 좀 하자. 지난 복날에 쫄쫄 굶었거든. 자, 이리 와!”
몽둥이가 공기를 가르며 ‘휙휙’ 소리를 냈다.
바쿠는 고양이처럼 몸을 낮추고 이리저리 피하며 기회를 엿봤다.
그러나 물려고 해도 어부 전신이 수염으로 덮여 있어서, 물 곳이 마땅치 않았다.
계속 피하며 틈을 보던 중 어부의 몽둥이가 물고기를 튀기던 프라이팬을 내리치고 말았다.
“쾅!”
물고기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며 모래범벅이 되었고,
튀김 기름이 어부의 팔과 얼굴에 튀었다.
“아악! 뜨거워! 내 대구 튀김이!”
어부는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바쿠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네놈을 대신 잡숴줘야겠어!”
어부가 완전히 폭주했다. 마치 망나니가 칼춤 추듯,
눈에 보이는 건 전부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식기들이 “쨍그랑!” 산산조각 나고, 김치 조각은 폭죽처럼 바닥에 흩어졌다.
고추장은 벽에까지 튀어 마치 드립 페인팅 작품 같았다.
피노키오는 그 광경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냐면, 김치 한 조각이 어부 수염 한가운데 딱 붙어 있었는데,
그게 딱 입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보여서였다.
하지만 웃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어부는 눈이 풀린 채 몽둥이를 휘두르며 바쿠를 몰아세웠다.
바쿠는 지그재그로 뛰며 필사적으로 피했지만, 결국 엉덩이에 한 방 얻어맞았다.
“퍽!”
“깨갱!”
비명이 울리고, 바쿠는 통증에 절뚝이며 뒤로 물러섰다.
어부는 사냥꾼처럼 천천히 다가갔다.
“왜? 더 피해 보지! 움직이지 못하겠어?”
그때였다.
몽둥이가 다시 하늘을 가르며 바쿠를 내리치려는 순간,
위잉! 하고 비둘기 드론이 나타나 어부의 손목을 콕 찍었다.
“아얏!”
깜짝 놀란 어부가 주저앉자, 바쿠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번개같이 몸을 날려 밀가루 덩어리를 입에 물고는 스프린터처럼 동굴 밖으로 튀어 나갔다.
어부는 울분이 터져 “이 자식아!” 하며 뒤쫓았지만,
비둘기 드론이 계속 위에서 쪼아 대는 바람에 결국 포기했다.
“귀한 물고기도 놓치고, 개도 놓치고… 그럼 비둘기구이라도 해 먹자!”
어부가 울컥하며 드론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안타깝게도 몸에 맞고 말았다.
“캉!”
비둘기 드론은 휘청거렸지만, 마지막 힘을 쥐어짜 피노키오 쪽으로 날아갔다.
바쿠는 30분이나 더 달린 뒤에야 피노키오를 내려놓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는지,
그 강인한 바쿠가 털썩 주저앉아 혀를 길게 내밀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피노키오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쿠를 끌어안았다.
“바쿠야! 고마워! 너 없었으면 나… 진짜 여기서 끝이었어.”
바쿠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내가 뭐랬어. 착한 일을 하면 언젠가는 돌아온다니까.
생각해 봐! 네가 나를 돕지 않았으면 나도 너를 돕지 못했을 거야.”
피노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런데 아빠는 착한 일을 하면서 보답을 바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맞아. 보답을 바라고 하면 장사지. 그냥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게 진짜 착한 일이지.
그러면 그게 행복이 되고, 좋은 일도 많이 따라오는 거야.”
피노키오는 바쿠를 빤히 바라봤다.
“바쿠… 너 이렇게 멋있는 녀석인 줄 몰랐어. 진심으로 고마워.”
그 순간, 하늘 위에서 ‘피융, 피융’ 맥주 거품 빠지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비둘기 드론이 비틀비틀 지그재그로 날아오고 있었다.
날갯짓은 힘이 없었고, 궤적은 불안했다.
드론은 피노키오 머리 위를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힘이 풀린 듯 ‘픽’ 하고 추락했다.
피노키오는 두 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받아냈다.
“고마워, 비둘기 드론! 근데 왜 이렇게… 망가졌어?”
드론은 허리가 거의 꺾인 상태였다. 동그란 회로판에서는 불빛이 깜박였고,
선들은 거의 다 끊어져 있었다. 겨우 몇 가닥만이 회로와 이어져 있었다.
드론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부한테… 한 방… 맞았어…”
피노키오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미안해… 나 때문에… 근데, 어떻게 나를 찾았어?”
“공주님이… 너무 걱정돼서… 나더러 찾아보라고… 했어.
나는… 하루 종일… 널 찾아다녔는데… 어부의 동굴 속에서… 네 목소리를… 들었어…”
말을 이어가려는 드론의 회로 불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비둘기야! 안 돼… 제발!”
“피노키오… 마지막으로… 내 부탁… 들어줘…”
“그래, 뭐든지. 근데 제발 ‘마지막’이란 말은 하지 마.”
“공주님은… 널 정말… 사랑해…
네가 돌아오지 않자… 지금까지… 한숨도 못 잤어…
저러다… 큰일 나…
공주님을… 위로할 수 있는 건… 너뿐이야…
제발… 말썽… 그만 피우고… 공주님 말씀… 잘 들어…
부탁이야…”
그리고 “피식” 소리와 함께 회로 불빛이 완전히 꺼졌다.
드론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피노키오는 무릎 위에 놓인 드론을 한참 바라봤다.
이젠 그저 차갑고 무거운 금속 덩어리일 뿐이었다.
눈물은 흘렀지만, 울음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울 자격도 없는 놈이야. 나 때문에 비둘기 드론이…”
그때 바쿠가 조심스레 말했다.
“빨리 가 봐. 비둘기 말로는 공주님이 많이 쇠약해진 것 같아.”
피노키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공주 엄마! 바쿠, 고마워. 나중에 꼭 만나자!”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전속력으로 공주 엄마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부가 튀김을 만든다고 피노키오의 옷을 몽땅 벗겨 버렸다.
아무것도 안 입고 공주 엄마 집에 간다고?
그건 그냥 놀라는 수준이 아니라, 심장이 멎을 수도 있는 충격일 것이다.
피노키오는 바닷물로 몸을 대충 씻고, 두 손으로 중요한 부위를 가린 채 슬금슬금 걸었다.
그러다 근처에서 오두막 하나를 발견했다.
어라? 여긴 예전에 아이들이랑 첫 싸움을 벌였던 바로 그곳이었다.
오두막의 문 앞에 노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피노키오는 후다닥 다가갔다.
“할아버지, 혹시 머리를 다친 만병이라는 불쌍한 아이를 보셨어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부들이 이 오두막으로 데려왔지. 그런데 지금은…”
피노키오는 갑자기 얼굴이 축 처져서 말했다.
“지금은… 죽었단 말이군요.”
“아니야, 살아 있어. 구급차가 왔는데도 돌려보내고 그냥 집으로 가더구나.”
“진짜요? 거짓말 아니죠?”
기쁨이 폭발한 피노키오는 껑충껑충 뛰며 소리쳤다.
“그럼 크게 다친 건 아니었군요!”
노인이 심각하게 말했다.
“큰일 날 뻔했지. 하마터면 저승길 갈 뻔했어. 묵직한 책에 머리를 맞았거든.
머리가 돌같이 단단했으니 망정이지.”
“누가 던졌대요?”
“학교 친구래. 이름이… 피노키오라던가?”
피노키오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피노키오가 누구예요?”
“아주 못된 떠돌이 말썽꾸러기라던데.”
“거짓말이에요! 완전 거짓말이에요!”
“네가 피노키오를 아니?”
“본 적은 있어요.”
“네 눈엔 어떻더냐?”
피노키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말 잘 듣고, 아빠와 가족을 사랑하는… 완전 모범생 같던데요.”
피노키오는 이렇게 거짓말을 하며 코를 만져 보았다.
어느새 코가 한 뼘이나 자라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피노키오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 말을 믿지 마세요!
전 피노키오를 잘 알아요. 아주 못된 아이가 분명해요.
게으르고 말 안 듣고, 학교에 가는 대신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녀요.”
그 말을 하자 코가 원래대로 ‘쏙’ 돌아왔다.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근데 넌 왜 그렇게 허옇게 돼 있니?”
“아… 그게… 방금 회칠한 벽에 몸을 비볐거든요.”
다시 코가 슬금슬금 조금 자라났다.
사실은 어부가 자기를 튀기려고 밀가루를 바른 거였지만, 창피해서 그 얘긴 차마 못 했다.
“그럼, 웃옷이랑 바지랑 모자는 어쩌고?”
“도둑을 만나서 몽땅 뺏겼어요. 혹시 집에 갈 수 있게 헌 옷이라도 좀 주실 수 있나요?”
노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얘야, 여기엔 콩 넣는 작은 자루밖에 없구나. 그거라도 괜찮으면 가져가렴.”
피노키오는 두말없이 자루를 받아
가위로 밑바닥과 양옆에 구멍을 하나씩 낸 다음 셔츠처럼 뒤집어썼다.
대충이나마 옷을 만들어 걸치고 드디어 집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