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빨리 간다

by 이진무

얼마나 시간이 빠른지

어제 진 줄 알았던 꽃이 오늘 또 피어난다.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맑게 개고

하얀 구름이 그대 웃음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오래전 심었던 묘목은 내 키를 훌쩍 넘었고

길 건너 빈터에는 이제 아득한 빌딩이 서 있다.


얼마나 시간이 빠른지

장난감을 조르던 아이들이 이제 용돈을 주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 놀러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끈다.

나도 아이였던 때가 있었지.


얼마나 시간이 빠른지

얼굴에 주름이 깊어지고

새까맣던 머리는 하얗게 세었다.


며칠 전 반갑게 맞아주던 의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암이라 말했다.

아내는 나 몰래 구석에서 흐느껴 운다.


너무 서러워 마시게.

얼마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우리는 곧 어제처럼 다시 만나게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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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몸이 몹시 아파 병원을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봐야 한다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 차갑고 사무적인 얼굴.

그 표정을 마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겁니다.

얼마나 무섭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밤을 뒤척였는지 모릅니다.

의사는 마침내 무죄를 선고하는 판사처럼 말하더군요.

암이 아닙니다.

이 시는 그때 썼던 것입니다.

아내에게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참 시간이 빠릅니다.

청년이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몸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좀 더 사랑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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