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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이야기-카페 문화와 예술사

예술과 혁명의 태실, 카페

by 이진무

카페 문화와 예술사 — ‘앉아서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


사람들은 늘 거대한 사건이 혁명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많은 장면은, 사실 작고 조용한 공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문이 반쯤 열린 카페, 낡은 나무 탁자, 잔 위로 피어오르는 커피 향. 그런 자리에서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음악을 구상하고, 또 누군가는 세상을 바꿀 만한 문장을 손끝에 걸었습니다.


19세기 파리의 카페는 예술가들이 밤새 토론을 벌이던 ‘움직이는 살롱’이었고, 빈의 카페는 철학자와 작가들이 시대를 해석하던 조용한 실험실이었으며, 서울의 카페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새로운 감성과 문화를 빚어내는 오늘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예술가는 이 공간에서 문장을 고치고 악상을 바꾸고, 때로는 삶의 방향조차 바꿔버렸습니다. 그들은 뛰어다니며 혁명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그저 앉아서 생각했고, 나누었고,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건물 안에서 만들어진 진동은 수십 년, 수백 년을 지나 지금 우리의 감각까지 닿아 있습니다.


클래식 카페.jpeg


자, 이제 우리는 파리의 카페에서 시작해 빈의 사색적인 카페를 지나, 서울의 감성 문화가 태어나는 공간까지 여행을 떠나 보려 합니다.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천천히 이어가겠습니다.


■ 파리 카페: ‘예술가들이 밤을 지새우던 움직이는 살롱’


17세기 이후 카페는 ‘커피의 도시’ 파리를 대표하는 공공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파리는 신문·팸플릿·잡지가 활발히 돌며 정보 교환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시대였죠. 당시 귀족의 살롱은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카페는 문만 열고 들어오면 누구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곳이었죠. 정보가 오가고, 시와 철학이 태어나고, 새로운 예술적 감각이 도시에 퍼져 나갔습니다. 카페는 귀족 살롱보다 더 열린 대화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몽파르나스와 생제르맹 거리는 예술가들이 집보다 오래 머물던 ‘제2의 작업실’이었습니다. 카페 드 플로르 한가운데에는 늘 같은 얼굴이 보였다고 합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이곳에서 존재론과 실존주의 개념을 정리하며 프랑스 철학의 시대를 열었죠. 사르트르는 “플로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또한 카페 라 클로즈리 데 릴라의 한 구석에서는 피카소와 시인 아폴리네르가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큐비즘의 방향을 두고 의견이 갈리면 둘은 새벽까지 카페의 메뉴판을 뜯어가며 그림을 그리고 철학을 나눴다고 합니다. 그 작은 카페에서 논의된 발상은 결국 20세기 미술사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몽파르나스와 생제르맹을 중심으로 작가·화가·시인들이 카페에서 생활했습니다.

프랑스 카페 드 플로르.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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