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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유령

by 이진무

피노키오는 침대에 몸을 던지자마자 꺼지듯 잠들었다.

코까지 골며 완전히 다운되었다.

그 순간, 두건과 마스크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슬금슬금 다른 방으로 갔다.

마스크가 먼저 주먹을 꽉 쥐며 으쓱했다.

“얘 완전히 뻗었어. 이쯤 해서 인공지능을 떼어내는 게 어떨까? 지금이 기회야.”

하지만 두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돼. 얘 눈치 장난 아냐. 자는 척하면서 눈 뜨고 있을 수도 있어.”

“그럼 어쩔 건데?”

“계획대로 가자니까? 요술 마을로 유인해서 돈을 싹 털고, 피노키오를 몰래 뒤따라가는 거지.

거지가 된 피노키오는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할 거야. 점점 지치고 힘이 다 빠졌을 때 그때 확 덮치는 거야.”


마스크는 인상을 팍 썼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지금 당장 털자니까?

인공지능도 떼어내고 돈도 뺏어서 빨리 고향으로 가고 싶어.”


두건은 깊은 한숨을 쉬며 현실 체크에 들어갔다.

“너 피노키오 이길 자신 있어?”

“뭐… 붙어봐야 알지.”

“얘, 한 번에 1미터 뛰는 거 봤잖아.

네 키도 훌쩍 뛰어넘고, 반딧불 묘지 만들 땐 땅을 쾅쾅 치니까 바닥이 국그릇처럼 파였잖아.

넌 그냥 걔 펀치 한 방에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도 있어.”


마스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제페토 박사와 싸울 때처럼 내가 뒤에서 꽉 잡으면 되잖아. 너는 그 틈에 인공지능을 떼고…”


두건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제페토 박사는 다리가 안 좋아서 잡힌 거지.

피노키오는 너무 빨라서 걔가 맘을 먹으면 근처에도 갈 수 없다고.”


마스크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 몰라!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면 뭐 어쩌자는 거야!”

“해 봤자 안 된다니까?”
“된다고!!”

“안 된다니까!!”


둘은 방 안에서 자정까지 티격태격했다.

급기야 두건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지독한 한마디를 날렸다.

“진짜 돌덩이보다 더 미련하구나! 그냥 피노키오의 인공지능을 네 머리에 달아!”

…잠깐 정적이 흘렀다.


두건 마스크 말다툼.jpeg


마스크는 그 말을 듣고, 순간 얼음이 됐다.
눈만 끔뻑끔뻑하다가 혼잣말하듯 속삭였다.


“…뭐라고? 피노키오의 인공지능을 내 머리에 달자고? 어떻게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할 수 있어?”

목소리는 가늘고 떨렸지만, 안에 감정이 꽉 차 있었다.

“그게 지금 사람한테 할 말이야? 나한테? 나, 마스크한테?”

마스크는 한참 동안 두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눈빛이 거의 레이저포 수준이었다.


두건은 빨리 사과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아, 그게… 그러니까, 그냥 말 나온 김에 생각해 본 거지…”


그때 마스크가 벌떡 일어섰다.
“어우, 진짜 못 해 먹겠다!”

소리와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마스크는 그대로 복도로 튀어 나갔고, 두건은 허둥지둥 따라 나갔다.

“야야야! 어딜 가! 말은 다 하고 가야지! 야, 마스크!”


“쿵쾅쿵쾅…”


복도엔 두 사람의 발소리만 울렸다. 밤새 조용하던 여관 전체를 흔드는 소리였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관 주인이 귀를 쫑긋 세우고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또 싸우는 거야? 요즘 젊은것들은 참말로…”


그 순간 마스크가 먼저 1층 로비 문을 박차고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두건이 급히 계단을 내려와 막 나가려는데, 주인이 그의 소매를 확 잡았다.

“이봐, 뭐 하는 거야? 시끄럽게! 다른 손님들 자는 거 안 보여?”


두건은 소매를 뿌리치며 최대한 얌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퇴실 중입니다. 그러니 안녕히 계세요.”


“그럼, 여관비는? 여관비는 어떻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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