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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망 Mar 21. 2022

낯선 곳에서의 어떤 친절

다시 떠날 용기를 주는 

제법 낯을 가리지 않는 저는, 혼자 떠나는 것에 겁이 없어요.


평상시에는 여러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익숙한 일상을 살고 있어서

자유 시간에는 사람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약간은 있죠.


어딜 가서도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도 한 몫 하고요.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우연히 새로운 이들을 만날 기회가 더욱 많아지는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예요.


저만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저는 살고 있는 곳을 비단 며칠이라도 떠날 때면,

몇번이고 가려고 하는 도시의 정보를 뒤적거리거든요. 


처음에는 가득한 기대감들이, 맛집 정보를 찾을수록, 유명한 관광지를 찾을수록 

바람빠진 풍선처럼 줄어들 때가 아주 많아요. 


그러다보면 여행가기 전에 비행기를 탈 때가 가장 설레이는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정작 여행지에서 즐겁고 설레는 건,

기대하지 않았던 맛집에서, 관광지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하는 일들이잖아요.


 

한창 취업 준비를 하다가 입사가 확정되었을 때, 지금이 아니면 한참을 기다려야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비행기표만 끊어서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요.

물론 그 나라 휴일 계산 따위는 없었는데, 그 나라의 황금 연휴였던 거죠.

당연히 호텔 예약은 너무 힘들었구요. 

공항에 가는 길에, 대도시가 아닌 아주 시골 도시로 골라 겨우 예약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교통수단에서만 제법 시간을 쓰겠길래, 공항에서 큐빅스를 하나 샀어요.

사실 큐빅스를 잘하지는 못하니까, 여행 내내 한번을 제대로 끝맺지는 못했죠.

하지만, 덕분에 그 지방 아주머님들의 관심은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어요.

저는 아주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갔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의 아주머니들에게 느껴지는 포근함과 비슷하더라구요.

어쩐 일로 젊은 양반이 혼자 왔는가, 이 작은 도시로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 

이곳의 맛집은 가봤는가, 저곳의 기념품은 꼭 사야 한다. 같은. 정겨운 오지랖들.


혼자 한 첫 여행이였는데,

그날의 포근함이 제가 다른 도전들을 하는데 디딤돌이 되었죠.


그러다가 또 방랑벽이 도져서 떠난 여행에서는,

남들은 일주일씩 열흘씩도 묵는 도시였지만, 저는 3일만 묵기로 했었죠.

그나마도, 급하게 결정해서 가게 되었는데, 

막상 정말 가보고 싶었던 그 도시의 관광지를 여행하는 코스는 예약이 끝난 상태였어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인 민박으로 숙소를 정했어요.

아무래도 한인민박하시는 분들은 가이드분들하고 연결이 되어 있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때는, 민박집 사장님도 도와주실 수 없는 상황이어서 체념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나와서 함께 저녁 파티하자고, 오늘은 즐겨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투숙객들과 오늘 어디 다녀왔는데 추천할만하다, 내일 어디 갈거다. 이런 대화를 나누었죠.

참, 그렇게도 인연이 만나진다 싶었던 일이 생겼어요.

저는 방금까지 그 관광지를 너무 가보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포기했다. 

어딜 갈지 이제부터 얘기를 들어보고 결정할까 한다. 고 했죠 

그랬더니.. 글쎄.. 거길 예약했는데, 

다른 곳으로 변경해볼까 하는 분이 저에게 예약을 양도해줄까 하시는거예요.

그런 우연이 있더라구요. 

오늘 다녀온 곳이 좋아서 내일에도 더 가득히 보내려고, 예정된 예약을 취소하시는 분들이,

그 예약이 아쉬운 내 앞에 나타나는 일이.

사실, 다녀온 그 관광지는 너무 추웠어요. 그 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곳은 눈 때문에 접근도 못했구요.

하지만, 그런 일이 내 여행에 생겼다는 게 축복인 것 같아요.

다음 여행을 기대하게 되는.  

 

저는 종종 체를 한답니다.

덕분에 여행을 다닐 때는 늘 상비약을 챙겨다니는데요. 

그 상비약이라는 게 한의원에서 받아온 환 같은 거예요.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는 세관에서 마약같은 걸로 오해를 살까봐, 꼭꼭 캐리어에 넣어서 보내는데요.

뭐, 곧 비행기를  타게될테고, 만약 체하더라도 비행기에서 약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요.

어느 날, 캐리어를 미리 부치고, 공항 안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먹은 밥이 얹혔지 뭐예요.

그런데 그날이 생애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으로

제 비행기가 연착에 연착을 계속하다가 취소된 날이였어요.

하필이면 그날 그 공항에 모든 비행기가 연착되었기 때문에, 어딜가든지 줄이었어요.

취소되면 다음 예약 정보라도 얻어보려고 카운터 주변에서 긴 줄에 합류했는데,

바로 앞에는 아주 즐거운 청년들이 있었어요.

저는 단단히 체를 했는지, 입속도 바짝바짝 마르고, 식은땀도 날 지경이었음에도

그들이 시끄러운 것이 부러울만큼 즐거워보였어요.

자기들도 시끄러운 걸 자각했는지, 갑자기 눈치를 보다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죠.

"무리 중에 한명이 결혼을 해서, 총각여행을 가는 중이다. 조금 양해를 부탁해"

평상시 같으면 같이 대화를 시도했을테지만, 기운이 너무 없어서.

"즐거운 날이니 만끽하세요"라고 대화를 성급히 끝맺으려고 했어요.

그들은 제가 비행기 연착 때문에 기분이 안좋다고 생각했나봐요.

"우리나라 초콜렛이 아주 유명한데, 이거 기념선물로 줄테니, 

비행기 연착보다는 이런 기억으로 우리나라를 기억해줄래?" 하더라구요.

"아, 고마워. 그런데 그런게 아니라, 내가 좀 아파"  했더니,

그 즐거운 청년들이 갑자기 모두 일어나, 직원을 데려와서,

"이 친구 아파요. 우리는 줄 기다릴 수 있으니, 이 친구라도 빨리 수속을 밟아주면 좋겠어요"라고 해준 덕분에

그 긴 줄에서 탈피할 수 있었어요.

저는 그 친구에게 "너무 고맙다" 했더니,

"여행의 끝은 즐거워야 하니까!" 라고 해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벌써 5년쯤 지났는데.


 

코로나로 여행길이 막힌 어느 날, 

여행 책자를 읽다가, 갑자기 생각난 여행지에서의 추억입니다.


-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을 읽다가 떠올리게 된 어느 친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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