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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망 Mar 29. 2022

듣고 싶지 않다.

가끔 그런 날이 있지 않나요?

굳이 시간을 들여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날이요.

보통 내 시야를 차단할 수는 있지만

들리는 것까지는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저는 아주 놀래미라,

작은 파스락거림에도 놀라자빠지는 편이예요.


그래서 제가 노출되는 소음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죠.


이런 저는, 놀랍게도, 선천적으로 잘 들리지 않아요.

국가가 인정할 정도로 안들리는 건 아니지만 소통에 불편함은 있죠.

막상 입이 가려져있거나, 한쪽으로 귀속말을 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요.

덕분에 안들리는 쪽 귀로 통화하는 건 꿈꾸기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안들리는 쪽으로 사람이 앉는건 꺼려지는 정도예요.


저는 오른손잡이인데

어렸을 때는 오른손으로 전화를 못받는 것도

소원 중에 하나라고 꼽을만큼이었어요. 



저는 장애로 등록할만큼 안들리는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병원에서도 듣는 걸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아니면 일상에 불편함은 없을거라고 했죠.

하지만 불편함은 엄연히 존재해서

어렸을 때는 그게 늘 불만이었어요. 

이런 불편함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그런.



저와 같은 증상을 가졌던 다른 친구는

저보다도 청력이 좋지 않아 군대를 면제 받았다고 했고,

그 덕분에 자신감도 없어서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려진다고 했었죠.



요즘 제 뒷자리에서 

팀원들이 회의를 하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어요.

알아서 도움될 것 보다야

걱정근심으로 작용할 것들이 더 많은 회의죠.

제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은 공유해주기도 하니,

귓등으로 들어야 할만한 것들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귓등으로 들려서 걱정근심하게 될 때면,

아 남들보다 적게 들리는데도 이렇게 근심하게 되는데

남들만큼 들릴 때는 오죽 신경을 쓰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함께 들어요.

 

그래서 요즘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반대쪽 귀만큼 마저 잘 들렸으면

얼마나 더 놀라고,

얼마나 더 사람과의 대화에서 에너지를 소진했을지 감이 안오거든요.



요즘은 평생을 제 결핍요소로 생각했던 청력이 처음으로 감사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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