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긴 한데요

보험처럼 말하는 우리 리더 이야기

by 하루

회사 생활이 길어질수록
사람을 읽는 눈이 조금씩 생긴다.


누가 어떤 말투로 아침 인사를 건네는지,
회의 시작 전에 누가 먼저 물을 마시는지,
그리고 누가 대답은 하지만,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를 알아채게 된다.


우리 팀의 리더도 그렇다.
그는 언제나 말을 아낀다.
아낀다기보다는, 한 발 빼는 법을 안다.




말끝마다 묻어나는 보험 문장은

회의 자리든, 팀 회식 자리든,
그가 입을 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었어.”

“내 의견은 아니긴 한데…”

“뭐, 다들 원하면 나는 괜찮아.”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그럼… 도대체 당신의 진짜 생각은 뭔가요?'


우리는 그의 의견이 늘 어디쯤 존재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회의 분위기가 정해지고 나면,

항상 ‘그쪽’에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얼마전에도 비슷했었다.

팀 전체가 참여한 프로젝트 방향 결정 회의가 있었다.
A안과 B안 사이에서 팽팽하게 의견이 갈렸다.
젊은 팀원이 실험적인 B안을 강하게 주장했고,
경험 많은 선배는 현실적인 A안을 추천했다.

분위기는 치열했고, 가만히 듣고있던
우리 리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음… 나도 사실 처음엔 A안 쪽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얘기 들어보니 B안도 괜찮을 수 있겠네.
뭐, 다들 괜찮다면 나도 B안으로 할게.”


그날 회의는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났고,
며칠 뒤 문제가 생기자 리더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B안은 내 의견은 아니었지.”




사실 나는 아직 그 자리에 가 본 적이 없다.
책임지는 자리, 말 한 마디가 방향이 되는 자리에 앉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나 자신에게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내가 리더가 된다면,
적어도 내 말엔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맞든 틀리든,
적어도 “그건 제 생각이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말 한마디에 팀원들이 기대고,
같이 실수하고, 같이 나아갈 수 있도록.


나중에 내가 서게 될 그 자리에서

어쩌면 나도
그 자리에 가면 무거워질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두리뭉실한 말로 나를 보호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선택하는 순간부터는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건 제가 말한 일이고,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보험 없는 말,
그게 진짜 리더의 말이라고,
지금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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