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가볍다는 사람들 옆엔,
늘 말의 무게를 드는 사람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 말들이 다 나쁘거나 악의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은 편하고 솔직한 말들이었다.
“그 말 너가 좀 해줘.”
“너가 말하면 괜찮잖아.”
“그거 그냥 너가 얘기해, 네가 좀 더 윗사람이랑 친하니까.”
그 말들은 늘 나를 중심으로 돌았고,
나는 어느샌가 말의 전달자이자 책임자가 되어 있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말의 짐이 쌓였다
그땐 그게 능력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나를 의지하고,
말을 통해 상황을 풀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말들의 끝이 항상 결정과 책임으로 이어지는 걸 알게 됐다.
말은 쉽게 꺼내졌지만,
감당은 나의 몫이었다.
그제야 나는,
말에는 무게가 있고,
그 무게를 견디는 사람이 늘 정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리를 두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직장을 옮기며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잘 지내자', '친해지자'를 반복하면서도,
말의 짐을 쉽게 짊어지지 않도록 내 마음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후로는 그런 부탁을 듣는 일도 줄어들었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지 않자, 내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다.
어른들의 말, 이제야 이해가 된다
어른들은 종종 말했다.
“직장생활은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좋아.”
예전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앞에 서면 총대를 매야 하고,
뒤에 있으면 무시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간쯤에서
"말할 줄은 알지만, 말에 쉽게 휘둘리지는 않는 사람"
이 되기로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건네는 ‘부탁’이라는 말의 모양이 다 다르다는 걸.
누군가의 부탁은 정말 순수한 요청이었고,
누군가의 부탁은 책임을 미묘하게 떠넘기는 계산된 말이었다.
“그냥 한 번만 이야기해주면 안 될까?”
“너가 얘기하면 분위기가 안 나빠질 것 같아서.”
“나는 괜히 꺼내기 그렇더라. 너는 좀 편하잖아.”
그 말들 속에는
상대가 말하고 싶지 않은 걸,
내가 대신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표현은 ‘부탁’이지만, 본질은 회피였다.
처음엔 그게 ‘신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신뢰보다는
“책임을 미루는 습관”에 가까웠다.
그 말을 들어주면
분위기는 좋아졌고,
누군가는 편해졌지만,
결국 감당은 늘 말한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부탁’이라는 말 앞에
한 번 더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정말 함께 하자는 말인지,
아니면 결국 나만 감당하게 될 말인지.
말은 가볍게 건네지지만, 무겁게 남기도 한다.
나는 이제, 그 무게를 쉽게 짊어지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