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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Sep 03. 2020

2011년 10월 27, 28일 송도 라마다호텔 서빙

노동요 - 아르바이트 후기

(2011년에 적었던 글입니다.)


호텔 서빙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이건 절대 안 해야지.’ 생각했으나 전역 날 알바를 찾아보니 집에서 가깝고 한 번쯤은 서빙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신청했다. 이런 서비스업에 관심이 살짝 있었기에.


챙겨오라는 구두를 챙겨 갔더니 호텔 지배인들이 초면인데 불구하고 반말을 하며 더러운 유니폼을 주고 입으라고 했다. 한번 쓰이는 용병 입장에서 반발하기 뭐해서 아무 말 없이 입었다.


나는 웨이터였다. 행사 전에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했다. 창고에 가서 각종 식기와 테이블보 정리도 했는데 테이블보는 알록달록했고 식기도 별의별 식기가 다 있었다. 그런데 이런 걸 창고에 둬도 되는 건가. 이렇게 먼지 쌓인 것으로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고 생각을 하니 호텔에서 식사할 일이 생기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행사는 두 개였다. 한 행사는 인천에 사시는 독거 노인들게 듀오에서 짝짓기 프로그램을 선물해줬다. 어르신끼리 댄스 타임도 있고 사랑의 작대기도 있고 별걸 다했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던가. 제일 막내가 64세였다. 다들 정정하시더라.


다른 방 행사는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처음, 오랜만에 오신 노인분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비빔밥과 6첩 반찬으로 대접하는데 어떤 몰상식한 손님은 식사 시간이 끝났는데도 밥을 가져오라고 짜증을 냈다. 드리긴 드렸으나 조금 꼴불견이었다.


행사가 끝난 방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뷔페가 남아서. 먹었다. 역시 뷔페가 맛이 괜찮구나. 나는 그 순간만큼은 군대 취사장의 짬타이거였다.


다음날 할 행사 테이블을 세팅하고 집으로 가는데 돈을 더 줄 테니 일찍 와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거절할 이유 없이 다음 날 일찍 갔다.


전날 오래 서 있었고 구두를 처음 신어서 발목과 발바닥이 아팠으나 참고 일했다. 테이블을 설치하고 쉬다가 밥을 먹었다. 직원 식당은 나름 맛이 괜찮았다. 군대에서 2년 가까이 밥을 먹어서 그런가. 식판은 군대에서 먹던 식판과 같아서 군대가 더 떠올랐다. 


밥을 먹고 행사 준비를 하는데 요리사분들이 참 바빠 보여서 도와드렸다. 참 인자하신 쉐프 아주머니. 드라마에 나오는 착한 엄마 역할 하면 잘할 것 같았다.


양식 풀코스를 손님께 대접하는데 서커스를 보는 줄 알았다. 지배인들은 양손에 7~8개 접시는 기본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나는 3~4개가 최고였는데. 그런데도 손가락이 아팠다. 에피타이저, 빵, 수프, 생선요리, 메인요리, 디저트, 커피를 순서대로 건네는데 참 양식 먹기 불편하다고 느꼈다.


어떤 분은 늦게 와서는 디저트랑 커피 달라고 보챘다. 음식 준비하는 곳에 가서 디저트를 찾았는데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다 버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안 주면 뭐라고 할 것 같아서 다른 테이블 손님이 손도 안 대고 남긴 디저트를 들고 문으로 나와 주방에서 새로 가져나오는 척하고 갖다줬다. 먹던 거 아니냐는 질문에 능청스럽게 “그럴 리가요”라고 했다. 그 아저씨는 내게 맛있다고 칭찬했다.


일하는 동안 같이 일하는 형이 몰래 스테이크와 훈제 연어, 디저트를 입에 넣어줬다. 아기 새처럼 계속 얻어먹었다.


둘째 날도 일이 늦게 끝났다. 물론 일당은 많이 받긴 했지만. 발이 아파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좋았던 점 : 남은 밥 먹기

안 좋았던 점 : 이상한 손님, 아픈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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