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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Sep 25. 2020

2011년 11월 30일 ~ 12월 9일 주안도서관

노동요 - 아르바이트 후기

(2011년에 적었던 글입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데 구인 광고가 나왔을 때 꽤 가깝고 금액도 괜찮은 것 같아서 지원했다. 많은 사람이 알바 신청할 것은 당연히 예상했다.


원래 22일부터 일한다고 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나는 선택 받지 못한 자구나’ 생각하고 다른 일을 구하는데 30일부터 일할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다.


당시 구인 광고에는 12월 12일까지 일한다고 되어있어서 이렇게 오래 일하면 돈을 꽤 벌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처 없는 길을 떠나는 듯한 기분도 드는 것은 왜일까.


해야 할 일은 책에 스티커를 붙여서 RFID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일이었다. 뭔지 잘 모르겠다. 1. 칩 달린 스티커를 책에 붙이고

2. 주안도서관 스티커 위에 덧붙이고

3. 책 빌릴 때 쓰는 바코드 찍는 빨간 레이저 나오는 기계로 찍고

4. 다시 책 꽂고.


이걸 반복하는데 매번 활동적인 일만 하다가 이런 반복, 정적인 일을 하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답답했다.


보존서고에서 일하는데 역시 이름 그대로 안 읽고 보존만 하는 책이 잔뜩 있었기에 먼지가 엄청 많았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있던 이유를 바로 이해됐다. 나는 늦게 투입됐다고 장갑도 주지 않았다.


같은 날 알바를 하게 된 입사 동기(?)가 있어서 같이 밥을 먹으며 친해졌다. 구인 광고에는 점심을 준다고 써놓고선 밥을 안 줬다. 식사 시간을 준다는 뜻이었을까. 도서관 앞 분식집에서 사 먹었다. 인천고 옆이라 식당 가격이 제법 저렴했다. 돈이 아까워 원래 도시락 쌀까 생각했는데 동기가 계속 같이 먹자고 해서 생각을 접었다.


반복되는 단순 업무에 관둘까 생각하다 꾹 참았다. 그러다 보니 일이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주안도서관과 이 회사가 계약한 기간이 한 12월 10일 정도인 것 같은데 일이 생각보다 늦게 처리되어 야근이란 것도 해봤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짜증 나는 게 이게 조를 나누어 일하는데 어떤 조는 일을 설렁설렁했다. 꼭 있다. 일하는 곳마다 돈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충 일하는 사람들. 나는 남의 일이라도 완벽하게 해야 성이 차는데. 마지막 날에도 그랬다. 원래 관리하는 사람들은 9일까지 끝내기를 바랐다. 근데 사람들이 대충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내일 나오면 내일 일급도 받을 수 있으니까 적당히 하자고 했다. 


알바의 세계는 참 가혹하다. 나는 일에서 잘렸다. 일이 거의 다 끝나가니까 관리자가 오더니 사람들을 다 자르고 몇 명만 남겼다. 일급이 상당히 지출되니까 적은 인원으로 일을 하겠다는 생각 같았다. 그건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열심히 일한 사람들도 다 자르고 관리자 한 사람 자기 자신과 친한 사람과 얼굴 익은 사람을 다음 날 일할 사람으로 지목했다는 점은 어이가 없었다.


알바끼리는 안다. 산타할아버지가 누가 착한 애고 나쁜 앤지 아는 것처럼. 누가 열심히 일하고 누가 일 안 하는지. 알바 몇 개 안 했지만 관리자가 이렇게 일에 관심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먼지가 많다 보니 바깥에서 바람 쐬면서 일하라고 해서 바람 쐬러 갔더니 일 안한 다고 관리자가 뭐라 했다. 이후로는 절대 나가지 않았다. 일이 너무 많이 남아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할까 다같이 고민하다 내가 의견을 냈더니 한 관리자가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 근데 결국에 내 의견을 채택했다. 내가 눈에 안 보이게 관리자들에게 찍힌 것 같아서 1순위로 잘릴 것을 예상했다.


이 사람들. 사람 보는 눈 정말 없다. 끝까지 일하도록 뽑힌 사람들은 바로 일 안하는 사람. 대충하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시원하다 생각했다. 답답했던 일이 끝나니까. 다른 도서관도 이런 작업 할 것 같은데 다음에 보이면 절대 신청 안 해야지. 


좋았던 점 : 반복의 업무 속 사색

안 좋았던 점 : 반복 업무로 인한 노이로제, 갑작스런 해고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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