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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31. 2020

2013년 1월 8일 ~ 2월 6일 텍스트 작성

노동요 - 아르바이트 후기

어김없이 겨울방학이 찾아왔고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아르바이트 사이트 속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나를 찾아주는 곳은 없었다. 이맘때쯤이면 연말정산 관련 아르바이트 구인광고가 많이 나온다. 회사 규모도 다양해서 여기서 경험은 단순 아르바이트로 경험은 아닐 것 같아서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 경력자를 찾을 뿐 새로 하는 사람은 찾지를 않았다. 신입을 써야 그 신입이 경력자가 되는 건 아닌가 하며 툴툴거렸지만 나 혼자만의 불평을 들어 줄 사람은 없다. 너도나도 지원할 테니 내가 눈에 띄기란 쉽지 않다. 아르바이트도 이렇게 구하기 힘들다.


이렇게 일을 못 하는 상황에 빠지면 희망 급여의 눈을 낮추거나 뽑는 사람의 수가 많은 아르바이트를 찾게 된다. 남들이 안 할 것 같은 것, 힘든 것 등 여러 개가 있다. 중간중간 있는 이상해 보이는 광고는 사기일 수도 있기 때문에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재택알바였다. 광고를 올린 곳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였던 것 같다. 이런 일이 있나 싶어 미심쩍었지만 속아도 자원봉사 한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다행히 사기는 아니었다. 이 회사는 집에서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을 음성이나 자동 입력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내가 하는 일은 다양한 문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주어진 기한 안에 엑셀에 대화, 문자, SNS 등 나뉘어 있는 여러 시트에 문장을 채워 넣으면 되는 일이다. 문장을 일정 개수 만들면 그만큼 돈을 줬다. 한 시트 당 2~30개의 문장을 만들고 담당자에게 제출하면 다음에 정산받았다.


처음에는 대한민국 사람이 한글을 쓰는데 누워서 떡 먹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장을 만든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ㅋㅋ 같은 짧은 문장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길이 이상이 필요했고 성의 없거나 말이 안 되는 문장은 쓸모없기 때문에 안 받아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단어나 내용은 웬만하면 피하게 됐고 그만큼 글이 나오지 않았다. 어휘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페이지를 채우고 나면 추가로 더 일할 건지 물어보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어렵지 않아 호기롭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슬그머니 찾아오는 창작의 고통.


문장이 떠오르지 않거나 내가 쓴 문장이 인위적이라 느껴질 때는 카카오톡, 미니홈피, 이메일 등을 뒤져서 문장으로 쓸 만한 게 있는지 기웃거렸다. 나름 쏠쏠하게 사용했다. 이것도 다 떨어져 버리면 드라마나 예능을 켜놓고 출연자들과 가상의 인터뷰를 하면서 문장을 썼다. 어떤 인물이 말을 하면 우선 그 말을 입력하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적었다. 이렇게 하면 문장을 기본 두 개는 완성되기 때문에 조금 수월히 일을 할 수 있었다.


떨어지는 글감, 질리는  반복 업무, 피곤해지는 몸. 삼중고를 계속 겪고 나니 추가 업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름 한 달을 버티며 일을 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이용한다는 것 말고는 부품 조립이나 상품 포장 등과 다를 게 없었다. 장시간 앉아서 문장을 쳐다보면 몸이 피로해진다. 이래서 VDT 증후군에 걸리는 것인가. 이런 종류의 일이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잘 맞지도 안 맞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 일의 장점은 대면할 필요가 없어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 성실히 한 만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추운 날 출퇴근할 필요 없다는 것. 단점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 찾아오는 육체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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