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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Nov 10. 2020

2013년 2월 14일 유동인구 조사

노동요 - 아르바이트 후기

한 달간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기에 이번에는 움직이는 일, 짧고 굵게 끝낼 일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일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연락이 왔는데 용역단체에서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하는 일 같았다. 하는 일은 유동인구 조사.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서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매시간 30분 동안 백화점 건너편 ABC마트와 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지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 수를 세고 그 모습을 10분간 촬영해서 보고하는 일이었다. 이쪽 유동인구와 예상 수입을 계산하는데 인력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추운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 들었지만 이런 일을 언제 해보겠느냐는 생각이 더 커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전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일의 관건은 온종일 전화기 배터리가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비 배터리를 포함한 모든 배터리를 충전했다. 이도 모자랄 것 같아 MP3 카메라까지 동원하기로 결정. MP3도 충전했다. 그날 전화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만지지 않고 배터리를 아끼기로 했다. 옷은 최대한 두껍게 입으려 했는데 돌아다니면 몸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너무 무겁게 입지는 않았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현장에 도착했다는 인증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사람 수를 셌다. 처음에는 할만하다. 몸의 온도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햇볕이 있기 때문에 덜 추웠다. 이 일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두꺼운 얼굴이었다. 분명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신경 쓰다 보니 다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 사람 수를 세고 영상을 찍었는데 대놓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 육교에 올라가서 넓게 촬영했다. 촬영하는 10분이 많이 힘들었다. 사람 수를 셀 때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으면 되는데 손을 드러내는 이 10분간 손가락이 너무 시렸기 때문이다.


한 시간의 일이 끝나면 백화점에 들어가 1층 소파에 앉아 쉬었다. 가끔은 앉아서 쉬고 싶은데 백화점 방문객이 앉아 있다 보니 그냥 눈치만 보고 있다가 나오기도 했다. 찬바람이라도 피한 게 어디냐고 위로하면서. 짧은 휴식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하는 형식으로 일했다.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늘었고 기온이 올라가니 할 만했다. 일의 고통은 오후 5시쯤부터 찾아왔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바람이 세지고 몸의 온도는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12시간 가까이 밖에 나와 일을 하려니 다리가 뻐근했다.


쇼핑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의 목적과 달리 나는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니 뭐 하고 있는가 하는 인생 성찰의 시간이 절로 찾아왔다. 마침 밸런타인데이라서 거리에는 커플들이 초콜릿을 잔뜩 챙겨서 다녔다. 그러니까 내가 더 초라해 보였다. 왜 일이 막바지에 이르면 시간은 더 안 가는 것은 왜일까. 촬영하느라 애를 쓴 핸드폰은 이미 예비 배터리까지 다 사용하며 전원이 꺼져버렸고 MP3가 힘겹게 마지막 촬영할 여력만 남겨놓고 버티고 있었다. 전원이 꺼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촬영한 영상들과 매시간 유동인구 수 결과를 정리해서 보냈다. 정말 고생 많은 아르바이트였다.


이 일의 장점은 혼자서 조용히 일할 수 있다는 것. 단점은 근무시간과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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