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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일까

단순해 보이지만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것

by 와칸다 포에버

성탄절 대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러브 액츄얼리>를 꼽는다. 2000년대 초반에 개봉했는데 그 인기 덕분인지 심심찮게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극장에서 재개봉하는 이 영화가 나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봉했을 당시에는 너무 어려 재미없어 보였고 20대가 되고 나서는 한국인 감성이 강한 탓인지 어떤 점이 여운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30대가 되고 성탄절을 맞이하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느껴지는 영화는 보고 싶은데 또다시 <나 홀로 집에>의 케빈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포기했던 이 영화를 어떻게든 끝까지 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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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상처받은 당신을 위해, 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사랑에 확신하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선물이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다른 영화의 시놉시스나 줄거리는 이야기를 대략 요약했지만,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너무 포괄적이다. 이를 보고는 영화를 가늠할 수 없다. 이 영화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그들의 관계를 엿보며 사랑이 무엇인지 탐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연애만이 아닌 가족, 우정, 자기 발견 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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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형식의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전부 서로 얽혀 있다. 그 관계 속에 가수와 매니저의 우정, 사랑에 빠진 아들을 도와주려는 아버지, 부하 직원에게 흔들리는 남편과 그를 보는 아내 등 여러 이야기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나온다. 사돈의 팔촌이라고 할 만큼 먼 사이인 것 같은데도 어떻게 보면 연이 있는 얽히고설킨 관계를 보며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도 아무 연관 없어 보이지만 파고 파면 조금이라도 연이 닿아 있지 않을지 생각된다. 다양한 군상을 바라보며 사랑에 대해 깨닫는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도 다양한데 사랑도 그러지 않을까. 사랑은 어디서나 존재하고 그 형태도 다양하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 제목대로 Actually, 사실, 실제, 정말 사랑은 이런 거라고,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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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내가 이 영화를 재미없어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도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고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정을 보며 이게 왜 사랑인지, 불륜 같은 모습을 보며 이것도 사랑인지, 그래서 이것이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는 것인지. 의문으로 가득 차 중도에 하차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라면 휴 그랜트가 맡은 독신 총리와 부하 직원의 사랑이나 리암 니슨이 맡은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사랑 정도가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에 어울리는 소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성탄절 로맨틱 코미디뿐만 아니라 다른 로맨틱 코미디를 보더라도 이런 설정이 가장 무난하고 그런 영화에 내가 길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를 먹은 지금도 이 영화가 인정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조금은 이해는 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니 편협한 나의 시야가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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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일까?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것이 다를 것이다. 연애만을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은 참 단조롭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로만 보더라도 사랑은 광범위하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도 사랑이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것도 사랑이고, 남을 이해하고 돕는 것도 사랑이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 국가를 사랑하는 것, 한 분야에 매우 빠져 있는 것. 이런 것들을 연애의 감정과 시선으로만 보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사랑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고 고차원적인 것이며 영화도 이를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본 크리스마스 영화는 남녀노소 봐도 쉽게 이해하는 어린이 동화 같은 것이었다면 <러브 액츄얼리>는 성인 동화 같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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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많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반가움에 웃음이 나왔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알란 릭맨을 포함해 지금과 달리 풋풋한 배우들의 모습을 보니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세월의 흐름을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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