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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이었어

유치해 보여도 좋았던 진행

by 와칸다 포에버

나랑 안 맞다고 생각했던 사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에 대한 인식이 어떤 계기로 변할 때가 있다. 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 물론 이렇게 되려면 가지고 있는 편견이 깨져야 한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등 여러 작품에서도 이런 비슷한 반전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가 자주 있다. 천하의 나쁜 놈 같은 사람이 알고 보니 나의 숨은 조력자였거나, 꼭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거나.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그때부터 내가 싫어하던 인물 1순위였던 이들의 호감도가 조금은 올라간다. 이런 상황을 너무 자주 겪으면 물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전개가 싫지 않았다. 순진한 생각일지 몰라도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착한 영화를 좋아한다. 엄하고 통쾌한 처벌로 쾌감을 주는 것보다 따뜻하게 품는 것. 현실이든 가상 세계든 품는 것은 어렵다. 내외의 모든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쉽게 할 수 없기에, 동경하는 모습이기에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요즘은 그런 영화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참신한 복수 방법, 수단에 고민하는 영화가 더 많다. 과격하고 잔인할 때가 있어 보기 불편하다. 그래서 이야기는 조금 엉성하거나 촌스러워 보일지라도 예전 영화를 찾아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영화 <선물>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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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이정재)는 성공 길이 까마득한 5년 차 무명 개그맨이다. 아동복 가게 주인인 아내 정연(이영애)과 갈등도 심하다. 우연히 아내 정연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용기.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던 용기는 그녀에게 마지막 추억을 찾아주는 동시에 개그 무대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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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와 이영애가 연기한 용기와 정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정연의 추억을 찾아 나서는 학수(권해효)와 학철(이무현)의 모습도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이들이 없이는 이 영화가 진행될 수 없다. 본래는 악역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 두 명은 일종의 해결사다. 용기의 꿈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사기꾼이지만 얼떨결에 용기를 조력하는 해결사, 영화 외적으로는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해결사다. 학수와 학철은 아내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대신 만난다.


갖은 불만을 내뱉으면서도 이들은 꿋꿋하게 정연의 추억을 수소문한다. 기억나지 않을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나기를 거부하는 초등학교 동창, 친하게 지냈지만, 다시 만나고 싶을 만큼 사는 꼴이 좋지 않아서 만남을 거부하는 중학교 단짝, 함께 시를 좋아했던 고등학교 선생님. 아내의 첫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해외 출장 중이다. 임무는 실패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결국 해낸다. 아내의 진짜 첫사랑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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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용기가 아내를 위해 꿋꿋하게 열연을 펼치는 모습을 아내 정연이 숨이 멎어가는 중에도 응원하며 지켜보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학수, 학철 콤비가 더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들과 끈끈한 관계가 아닌데도, 마음만 먹으면 관두고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어떻게든 일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 나쁜 사람들도 착한 면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인류애가 샘솟는다. 어쩌면 이 유치하고 엉성해 보이는 진행과 인간관계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것이 오히려 더 감성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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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이 말하지만, 오래된 영화를 보면 주연, 조연에 지금은 활약 중인 배우들의 예전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가 개봉된 지 20년이 더 지난 이 영화를 지금 본 나는 학철 역을 맡은 이무현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대사도 적은데 얼굴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드라마 <야인시대> 초반부에 나왔던 ‘평양 박치기’를 연기한 배우였다. (지금은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데 가끔 모습을 비춰줬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다.) 알고 보면 이런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오래된 영화를 보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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