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엇일까? 희생 플라이 같은 것일까?

야구 캐스터 "3루 주자 태그업! 희생 플라이로 득점에 성공합니다."

by 띵수



몇 달 전, 친구의 자취방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오래간만에 만난 터라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며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였던 탓일까. 아니면 취기가 적당히 올라온 탓일까. 친구와의 대화는 연애, 결혼 쪽으로 흘러갔다. 나는 친구가 차려놓은 예쁜 안주 테이블에 "사랑이 뭘까?"라는 조금은 심오한(?) 발제를 던졌다. 친구와 그 정의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서로의 경험과 생각들을 끌어모았지만, 결론은 '아직도 사랑은 잘 모르겠다'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그 대화에서 나왔던 공통적인 키워드가 있었으니. 바로 '희생'이란 단어였다.


NISI20190806_0015474584_web.jpg?rnd=20190806211508 2019년 두산 베어스는 최다 희생플라이 69개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우왕 대단해~


희생이라. 신기하게 야구에서는 희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우리 팀의 공격 상황에서 노아웃 또는 1아웃이고,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희생으로 인한 득점이 가능하다. 타자가 외야를 넘기는 뜬공을 치면 상대 외야수가 공을 잡으면서 타자 주자를 아웃 시킨다. 이때 3루에 있던 주자는 3루 태그업 후 미친 듯이 질주하여 홈에 들어오면 '희생 플라이' 득점이 된다. 즉, 타자 주자가 죽더라도 3루 주자는 살아남아 갈 수 있는 것.


야구팬들은 희생 플라이로 득점을 내면 '고급야구'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야구에서 희생이 있다는 것이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야구는 축구, 농구와 같이 협력을 요하는 스포츠보다 좀 더 개인플레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 같이 게임을 하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투수와 타자 1:1 싸움의 결과로 인해 흘러가는 스포츠이기 때문.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성향이 짙은 야구가 희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젊은 나이, 누군가에게는 어른스러워 보이는 33살이지만, 작년까지의 나는 한 번도 사랑에 있어서 큰 희생을 해본 적이 없다. 뭐랄까 난 항상 상대가 안쓰럽다거나 내가 이 사람을 위해 조건 없이 희생하거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 경험이 정말 없고, 더불어 누군가에게서 그런 걸 받은 경험도 딱히 없었다. 다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났던 것 같고, 그래서 짧게 많이 연애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연애들이 반복된 탓일까? 연애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연애 연극'을 하고 있다는 생각들이 나를 소용돌이 안으로 끌어들였다. 연애하고 있는 이 행위가 너무 신물이 났었다.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 희생하기도 싫어하고, 상대도 희생하지도 않는데. 이게 맞는 걸까?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런 연애는 싫다'라는 결론으로 결국 나는 항상 이별을 고했지만, 알 수 없는 외로움은 끊임없이 자라났다.


외로움이 걷잡을 수 없게 될 때 나는 결국 엄마 앞에서 술 먹고 처음으로 나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30살 때, "엄마아빠만큼 날 사랑해 줄 사람도, 그런 마음으로 내가 사랑할 사람도 이 세상에 없는 거 같아. 엄마아빠가 떠나면 난 그럼 혼자가 되겠지. 나는 너무 외로워."라면서 엉엉 울었다. 누군가는 나더러 태양 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는 이런 면에서는 덜 채워졌었기 때문에 괜찮았다가도 또 안 괜찮은 그런 유약한 사람이었던 거 같다. 태양도 밝지만 자세히 보면 흑점이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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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나는 사람이 어쩌면 내 인생 연애사에서 최초의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지 않았던, 예전에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들을 하는 것 같다.


이전 연애와는 다르게 이 분은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지금도 희생하고 있다. 자신의 근무지 근처에 인프라가 별로 없어서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고 하지만(물론 그 말도 맞긴 하다), 주말에 매번 1시간 이상을 차로 운전해서 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희생한 썰을 간략하게 풀어보자면,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 함께 숯불 생선구이를 먹고 있었는데 메로구이였나? 두 덩이로 갈라졌는데 나에게 큰 덩이를 주었고, 자신은 작은 덩이를 가져갔다. 이런 작은 순간순간에서도 그의 희생이 보였고, 그런 마음들이 뭔가 나를 점점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 같다.


물론 연애에 있어서 언제나 희생이 먹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야구에서도 마찬가지. 간혹 희생플라이로 타자도, 주자도 둘 다 죽는 경우가 있다. 타자가 플라이를 쳤는데 이 공이 내야와 외야 사이로 날아가면 구장에 다라서 3루 주자가 태그 업하기 애매해질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자가 3루 베이스를 태그업을 해서 들어온다? 하지만 외야수가 포수에게 정확한 방향과 그에 맞는 속도로 홈송구를 한다면 주자는 아웃이 되는 것. 그러면 희생 플라이는 도로 아미타불이 된 거고, 순식간에 빨간 불이 2개가 켜질 것이다. 팬들은 쌍욕을 하겠지. 주자에게는 "거기서 왜 뛰냐고!!!!!!!" 타자에게는 "뜬공도 제대로 못 치냐??????"라고 말이다.


하지만 희생 플라이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야구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차라리 안타나 홈런을 치는 게 낫지 희생 플라이는 어쨌든 타자가 죽는 것이 디폴트값이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가 나를 위해 희생해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기가 힘들어진다고나 할까. 내가 좀 더 희생하고 그 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지금은 크다. 이게 진짜 사랑일까?


아직도 모르겠는 사랑의 정의. 작년까지만 해도 그걸 찾아가는 길이 깜깜한 터널을 걷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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