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함정
인쇄술의 발명은 종교개혁을 불러오며 유럽을 종교전쟁에 빠뜨렸다. 철기의 등장은 춘추전국시대를 촉발해 550년동안 혼란과 패권 경쟁을 낳았다. 역사는 기술혁명이 단순히 발전과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사회를 흔들고, 새로운 갈등과 균열을 불러왔다.
지금 우리는 미디어와 통신기술을 비롯한 4차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 속에 살고 있다. 정보는 실시간으로 전 세계를 떠돌고, 감정은 필터 없이 증폭되어 전달되는 특성 때문에 이 기술적 환경은 기존의 사회적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그 중심에서 가장 크게 흔들리고, 또 가장 많이 희생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의 첫 장면을 떠올려보자.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 학생들로 구성된 홍위병들은 맹목적인 '혁명'에 사로잡혀 교수를 집단 린치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젊은 세대가 어떻게 이념에 선동되고 앞세워져 이용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심리학적으로 집단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공의 적을 설정하는 것이다. 뒷담화는 소규모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도구가 되지만, 사회 전체로 확대될 때는 매우 위험한 정치적 무기가 된다. 좌파든 우파든,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때문이다'라는 단순화된 원인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맥락을 왜곡하거나 일부를 과장하여 전체 집단을 악마화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악'은 통치권력이나 선동 집단이 구원할 대상으로 제시되고, 이에 부응할 영웅까지 등장한다. 이렇게 탄생한 영웅론은 인물이나 사회적 현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방해하는 동시에 악에 대한 적대심을 더욱 강화 시킨다. 이렇게 악마와 영웅은 집단을 결속시키는데, 빠르고 효과적이지만, 그 결과는 심각한 사회 분열로 이어진다.
또 이러한 전략은 사람들을 '순수함'이라는 미명 아래 극단으로 내몬다. 순수는 본래 긍정적인 가치지만, 그것이 극단화될 때 '우리 쪽은 무결하며, 상대는 절대 악하다'는 사이비 같은 비논리적 신념으로 발전한다. 순수의 극단은 윤리적 오류를 내포한다. 자기 확신에 빠진 집단은 자기에 대한 비판과 의심을 거부하며, 결국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폭력이나 배제를 감행하게 된다.
작금의 정치 현실과 언론 환경은 극단화된 사회 갈등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고 있다. SNS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고, 언론은 클릭을 위해 자극적인 대립 구도를 반복한다. 이런 구조에서 정치의 본연적 역할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극단의 종용에 빠지지 않게 노력하는 일이다.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며,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고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 '바보의 벽'은 '안다'라고 하는 생각, 특히 현실을 안하고 여기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늘 제한된 경험과 해석 위에 존재한다. 바보의 벽을 허무는 길은, 자신을 비롯한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상대의 관점을 듣고, 조율하려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