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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Sep 13. 2021

지구는 둥그니까

한 페이지 소설

* 짧은 소설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지인짜 진짜 죄송해요. 또 시작이다. 한동안 왜 잠잠한가 했다. 하... 저한테 일부러 그러시는 겁니까? 매번 이렇게 실수를 반복하시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아니, 한 두 번이래야 실수로 봐주죠. 아니에옹 아니에용. 설마용.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용. 홍홍홍. 또 저런다. 이럴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이옹이옹 하는 저 끝소리를 모아 볼륨만 크게 높이면 엠뷸런스 위에도 달 수 있겠다 싶다. 이옹이옹이옹. 다 비켜 아주 그냥. 저 이옹이, 워낙에 뾰족한 나와는 애초에 다른 부류였다. 나도 안다. 내가 그닥 접근성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고등학교 땐 야자 마치고 버스를 타면 같은 노선 후배들이 종종 저 언니 아는 언니인데 그냥 모른 척 하려니 뭔가 좀 찜찜하고 그렇지만 말 붙이려니 쫌쫌 그렇고 하지만 그냥 있기도 어색해서 슬금슬금 옆에 와 언니 뭐 안 좋은 일 있어요? 라고 눈치 짚으며 몇몇 말을 오려 붙여 오곤 했다. 응? 아니, 그냥 생각하는 건데?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생각만 하는 중이었다. 엄마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일부러라도 웃는 얼굴로 있으라는 말을 밥 먹으라는 말 보다 더 자주 했다. 눈이 작고 옆으로 긴 데다가 무표정으로 있으면 누가 말이라도 붙이겠냐고. 안경을 쓸 때부턴 ‘B 사감’이란 별명도 잠시 붙었었는데, 그거야 손 씨면 손수건, 홍 씨면 홍삼, 장 씨면 장보고 식으로 말이면 다인 줄 아는 작명이라 그저 웃고 넘기면 그만이고 재밌기도 했지만. 이 ‘성질머리’의 진가는 일할 때 각 잡고 발동 된다. 정확한 기일 내에, 정확한 프로세스로 딱 딱 맞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질머리’라서 잔 실수가 없다. 딱 그만큼 상극도 생기기 마련인데 저 이옹이옹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집이 바로 코 앞인데 8시 30분까지 출근이면 8시 30분에 집을 나서는 이옹이, 처리 시한을 매번 넘기고도 매번 다양한 이유에 웃음을 함께 얹어 넘기는 이옹이―출근 시간처럼 처리 시한이 이옹에겐 시작 시점인건가? 일 처리 똑바로 안하면서 이옹으로 때우고 실수가 잦아서 참고 참다가 지적하고 열을 올리면 죄송해용 안 그럴게용 하는 이옹이. 거 몰랐다잖아. 앞으론 안 그러겠다잖아. 옆에서도 둥글둥글 가자고 한다. 좋게좋게 가자고 한다. 뭘 안다고 거드나. 내가 뭘 어쨌다고. 언젠가 술 마시다가 무슨 화제 끝엔가 돈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그렇게 안 봤더니 돈 중요하게 생각하나봐. 뭘 어떻게 보면 돈 안 중요하게 볼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은 걸 꾹 누르고 돈 중요하죠 왜 안 중요해요 돈 많으면 편하잖아요. 아니, 예술 좋아하고 정의 사회 추구하면 돈에는 신경 꺼야 되는 거 아닌가? 그날 밤, 이런저런 말을 상대하느라 나는 또 고슴도치가 되어 버렸다. 지난 대선 땐 아니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 씩이나 하겠다고 나서지? 무슨 지지율이 저 정도나 나와? 우리 부모님도 저 사람 지지한다는데 뭘 어떻게 설득해도 들어먹지를 않아, 라고 열을 올렸을 때 이옹이가 그랬다. 진지했다. 불쌍하잖아요, 이젠 여자도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저는 봐요. 저 착한 눈빛. 불쌍한 거랑 여자가 대통령이 되는 거랑 뭔 상관인가 생각하는 사이 거 좋게좋게 가는 거지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구나, 하던 둥글이. 저 이옹이와 둥글이는 굴려 보내면 또 굴러 온다. 왜용 둥글둥글 왜용 왜용 둥글둥글.          


2017.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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