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소 Sep 23. 2021

친애하는 쇼팽

『장송』(히라노 게이치로) 그리고, 『내 친구 쇼팽』(프란츠 리스트)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학창 시절 중 흐릿하게나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요즘처럼 목련이 피고 지고 벚꽃이 난분분하는 때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하는 가곡을 배우며 일 분단 창가 자리에서 교정의 꽃들을 바라보던 나른한 오후의 음악 시간이다. 아직도 근의 공식처럼 툭 치면 나오는(말이 그렇다는 거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그런 거나 외우게 하고 정작 음악은 들려주지 않았던, 시험 기간 되면 자습 시간으로 대체되기 일쑤였던 기이한 음악 시간. 그에 더해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대표곡 정도까지가 클래식의 전부였던 세계. 클래식 듣는 귀를 가지게 된 건 일본 여행에서부터였다.     


  카페 문화라는 것이 지금은 보편화가 되어 우리나라에도 개성 있는 카페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일본 여행을 갈 때마다 주로 찾아다니던 카페는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커피를 내리던 곳들이었다. 일부러 작정하고 찾아간 곳도 있지만 주로 골목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에서 다리를 쉬어가던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 인상 깊었던 건, 고풍스러운 실내 분위기와 찻잔, 주로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바리스타, 그리고 그 공간 속에 내내 흐르던 조용한 클래식들이었다. 크지도 낮지도 않은 딱 적정한 볼륨의 음악이 이 모든 구성 요소와 어우러져 어느 하나 튀거나 뒤처지지도 않은 상태로 그 공간 자체가 하나의 근사한 작품이 되던 시간. 그때는 몰랐지만 이후에 알게 된 건 내가 들은 곡 중 상당수가 쇼팽(1810~1849)의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 클래식의 세계로 풍덩! 이면 좋겠지만 사실 익히 알려진 음악가들 외 세세한 영역은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제목도 음악가도 낱낱의 음악 용어도 잘 알지 못하지만 뭐 그러면 어떤가 하는 다소 안이한 감상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관심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러 책으로 이어졌는데 그중 소개하고 싶은 것 또한 쇼팽에 관한 두 권의 책이다.     


  1, 2권 도합 1,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송』은 쇼팽과 들라크루아를 중심으로 19세기 파리 예술계 한가운데로 독자를 끌어 앉힌다. 소설은 두 예술가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유럽 사교계의 분위기나 화단의 정치적 상황까지 세밀화처럼 펼쳐 보여 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특히 압도되었던 장면은 1848년 파리의 2월 혁명이 일어나기 불과 일주일 전 열렸던 쇼팽 연주회를 둘러싼 묘사였는데 장장 1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글을 읽으면서 경탄하느라 자주 열에 들뜨고 실제로 호흡이 가빠지기도 했다. 실로 공감각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들라크루아 대작을 묘사하는 장면 또한 그에 못지않은 열기가 녹아있다. 쇼팽의 오랜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와 그 가족에 관한 대목은 반대의 이유로 많은 순간 화가 났었는데 실제 사실과 어느 정도로 부합하는지 몰라서 판단은 보류해 두었지만 적어도 소설 속 이야기에 근거했을 때 가장 속상하고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했다.  

   

  『내 친구 쇼팽』은 쇼팽의 친구이자 라이벌이기도 했던 프란츠 리스트(1811~1886)가 쓴 쇼팽 평전이다. 리스트가 쓴 쇼팽이라는데 호기심이 생겨 펼쳐 든 책인데 결과적으로 쇼팽 뿐 아니라 리스트, 정확하게는 ‘리스트의 문장’에까지 관심이 생기고 말았다. 쇼팽과 리스트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지칭될 정도로 섬세한 연주를 하는 쇼팽과는 달리 무대에서 화려한 주법으로 주목받는 것을 즐겼던 리스트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글 또한 쇼팽과 더불어 글쓴이인 자신까지 함께 돋보이게 썼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 점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우아하고 정성 가득한 문장을 읽어가다 보면 지금은 느낄 수 없는 당대의 분위기나 품위를 함께 느낄 수 있어 읽는 쪽의 내면까지 나란히 정갈해진다. 관심이 있다면 포노 출판사의 음악가 시리즈들을 주목해봐도 좋겠다.          



2021. 3.     

이전 06화 자유로부터의 비자발적 도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