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소 Sep 27. 2021

우리 각자의 ‘연애 소설’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환경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우려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대기질에 대한 묘사는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책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실제로 세계 경제 지표의 변동은 환경 훼손의 정도와 비례한다. 일찌감치 우려의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나왔지만 그런 문제들은 개발 논리 때문에 다음 순위로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누적되어 온 문제들이 지금, 끈질기게 독촉장을 들고 찾아오고 있다.    

  

  ‘국민학생’이었을 때 학교에선 반공 포스터나 환경을 주제로 한 미술 활동을 연례행사처럼 했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밀도 있는 환경 관련 교육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그나마도 2040년을 전후로 석유가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어 아껴야 한다는 정도였으니, 그 포커스도 사실 환경이 아니라 ‘자원’이었으므로 결국엔 경제 문제로 귀결된다. 당시 어린 내 귀에도 바닷바람을 타고 실려 온 미나마타병이니 이타이이타이병 같은 병명들이 무서운 소문처럼 귓바퀴를 돌다 나갔고, 그런 시대를 거쳐, 갈수록 심각해지는 환경에 대한 경고를 보고 들으며 지금까지 왔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환경 활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며 칠레 출신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쓴 환경 소설이다. 치코 멘데스는 아마존 열대 우림을 수호하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활동하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기업에 의해 살해당한다.(1989년) 이러한 치코의 활동과 암살 사건이 보도되면서 전 세계의 시선이 아마존으로 몰리게 되었는데 여기에 세풀베다의 소설까지 나오면서 당시 아마존 문제는 환경 분야의 중요한 화두로 대두된다. 이 책은 출간 직후 전 세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내리며 화제의 주인공이 된다. 책을 읽은 사람들의 수만큼 ‘지구의 허파’ 아마존에 주목하게 된 것이라 생각하면 소설 한 권의 힘은 단순하게 환산되지 않는다. 물론 당연히도 그 관심이 책 한 권 때문만은 아니지만. 

    

  한 노인이 있다. 연애 소설 읽는 걸 유일한 낙으로 삼는 사람. 이 안토니오 노인은 밀림의 생태를 잘 아는 사람이다. 돈이면 다인 줄 아는 백인 사회와 그 문화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최소한의 생존 요건만 갖춘 자신의 오두막에서 느긋하게 연애 소설이나 읽으면서 살고 싶은 사람. 어느 날 번쩍거리는 금붙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밀림으로 들어간 백인 사냥꾼 중 한 명이 살쾡이에게 당하자 그 시신을 수습하고 살쾡이를 잡아달라는 읍장의 다급한 요청이 들어오고, 노인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받아내고서 밀림으로 들어간다.      


  1947년생인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칠레 독재 정권하에서 저항 운동을 하다가 잡혀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감형(28년)을 거친 후 국제 사면 위원회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석방된다. 이후 망명길에 올라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살았고, 독일을 거쳐 스페인에 정착한다. 그런 와중에도 문학을 가르치고, 조국의 정치와 세계의 여러 문제, 환경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발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세풀베다가 작년 4월, 코로나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2020년 4월 16일, 세월호 6주기 추모 분위기 속에 나직이 들려왔던 세풀베다의 별세 소식. 당시 스페인에서 감염자나 사망자가 우려를 넘어서는 심각한 수준으로 나올 때 그 전염병에 휩쓸린 사람 중 한 사람이 환경 문제에 그토록 목소리를 내었던 세풀베다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여 착잡했던 기억이 있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틀니를 꺼내 은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에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름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오두막’과 ‘연애 소설’로 상징되는 각자의 그 무엇. 환경 문제, 나아가 세계에 누적된 여러 문제의 답은 어쩌면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2021. 5. 13.     




이전 07화 친애하는 쇼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