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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Sep 29. 2021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그것 하나

『여인의 초상』(헨리 제임스, 민음사, 2012)을 읽고

  소위 ‘막장 드라마’ 보는 심리를 우회 체험하게 하는 소설이 있다. 욕 하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는 저 피학적 심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푹푹 열이 나 머리가 지끈하고 심각하게 화가 나서 다 읽고 나면 폭삭 늙어있겠다 싶은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는 데는 단순한 이유 하나 쯤 있다.       


  19~20세기 초반의 소설을 다 읽어본 건 아니라서 뭐라 단정지어 얘기할 순 없지만, 통속 소설로 치부되어 당대에 유행하고 사라진 건 논외로 두더라도 고전으로 분류되어 지금까지 읽히고 있는 소설들의 경향을 생각해보면 대체로 남성 작가에 의해 쓰여진 작품들은 어딘지 모르게 장황하다. 당시에 유행하던 작법이겠거니 생각하려 해도 최소한 여성 작가들에게선 비슷한 분위기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든 설명하고 가르치려 드는 남성 특유의 성향이 반영된 거라 여겨지는 건 괜한 비약일까. 그 시대의 글을 다 읽어 본 건 아니고, 연구를 위한 분석을 해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생각도 조심스럽긴 하지만 최소한의 읽어본 것만 두고 봤을 땐 아예 근거가 없지도 않다.


  헨리 제임스 소설 『여인의 초상』을 읽으면서 『하워즈 엔드』(E. M. 포스터)가 내내 생각났던 건 두 소설이 모두 영국과 피렌체를 주요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것 외에(『여인의 초상』은 거기에 로마도 추가해야 하지만) 서사의 중심에 여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현명했던, 혹은 그렇게 보였던 여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해나간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 속 여성들은 교양과 지식을 갖춘데다 진보적 의식, 자유에 대한 갈망과 총기가 그득한 사람들이었다. 자식도 있는 중년의 남성에게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기 전까지는.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던 미국 여성 이사벨 아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터쳇 이모의 안목과 배려 덕분에 영국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 결혼보다 자유를 갈망하던 이사벨은 이모를 따라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기를 바랐기 때문에 자신에게 구애하는 명문가의 남성 워버튼 경과 자신을 좇아 미국에서 날아온 캐스퍼 굿우드를 차례로 퇴짜 놓는다. 오랜 병을 앓아 허약해진 사촌 랠프 터쳇은 아버지 터쳇 씨가 돌아가시기 전 유언장의 내용까지 수정 요청을 하며 자신에게 돌아올 막대한 재산의 반이 이사벨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사벨의 기질과 가능성을 알아보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최소한 돈으로 곤란을 겪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유산이 떨어진 후 터쳇 부인의 소개로 알게 되어 호감을 가지고 있던 마담 멀이 길버트 오스먼드라는 가난한 귀족을 이사벨에게 소개해 주었고 열여섯 딸이 있는 그 남자와 불쑥 결혼이란 걸 해버린다. 주위 모든 사람이 반대를 하는 데도 한사코 자신의 선택이 옳다 여기고 특히 이사벨이 자유롭게 살며 좀더 견문을 쌓으며 성장해 나가는 걸 보고 싶었던 랠프는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그 결혼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럴 수록 더더욱 고집을 내세우며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한 이사벨은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제 결정을 밀어부친다.     


  오스먼드는 예술품에 대한 남다른 안목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에게 이사벨은 자신이 손에 넣은 작품 중 하나였을 뿐이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작품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 스무살이 다 되어가는 그의 딸 팬지가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고 처신하도록 길들인 것도 오스먼드이고 이제 아내가 된 이사벨 또한 그의 경계 안에서 행동하도록 심리적 지배를 한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담 멀이 처음 이사벨 얘기를 꺼냈을 때 흘려듣던 오스먼드는 이사벨이 막대한 유산을 받은 아가씨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호기심을 보였다. 분명 이사벨에게 풍족한 재산이 없었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자유를 담보로 랠프가 배려했던 돈은 의도와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이사벨을 가둔 감옥이 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수상쩍었던 마담 멀과 오스먼드의 감춰진 진실이 드러났을 때 이제야 이사벨이 미몽에서 깨어나 제정신을 차리겠구나 했지만 그간의 사실을 알려준 이에게 보인 첫 반응은 “가엾어라.”였다.      


  착하게 구는 것이 매사에 미덕인 것처럼 길들여진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을 본 기분이랄까. 격분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제 인생을 뒤흔든 사람을 두고 가엾다고 여기다니. 대체 왜. 오스먼드의 반대도 무릅쓰고 랠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을 땐 부디 로마로 다시 돌아가지 않길 바랐다. 저간의 사정을 다 알게 된 런던의 지인들이 입을 모아 이곳에 남아주길 바랐고, 캐스퍼 굿우드 또한 자기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다시금 청했지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그 모든 제안들을 뿌리치고 오스먼드가 있는 로마로 이사벨이 돌아가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사벨이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실수이며 실패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생의 다음 장을 향해서 나아가기를 바랐다. 오스먼드를 만나기 전의 이사벨이었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관습적으로 살지 않기를 원했고 때문에 그럴듯한 남자들의 청혼도 자유로운 삶을 이유로 거절했던 사람이 저렇게까지 쪼그라들다니.        

  로마로 떠나며 이야기가 끝나서 공포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한편으론 이사벨이 로마가 아니라 새 삶을 꾸리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곳을 향해 출발한 거라 믿고 싶다. 그런 최소한의 이성과 자유의지가 이사벨에겐 남아 있다고, 아직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이다.      


  울화통을 참아가면서도 꾸역꾸역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어가는 이유는, 지금까지 읽은 게 아까워서 빨리 읽어 버리고 말자는 마음과 끝으로 가면 분명 뭔가 있겠지 하는 기대 두 가지 때문이다. 경험상 두 번째 이유는 거의 충족된 적이 없다.      


  사실 이사벨이 안타깝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그런 선택과 행동에 굳이 그럴듯한 상징을 부여하고 싶지도 않다. 동시대 여성 작가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화가 왜 유독 남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환기하게 되는지에 대해선 천천히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2021.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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