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임무보다 힘이 세다
서로 돕고 도우는 게 좋은 거라는 걸 어릴 때부터 경험으로 알게 되는 건 좋은 일이다.
초등학생 때 같은 반이던 남자아이가 아이들한테 얼굴이 얼마나 작은지 보자며 손바닥으로 가려보라고 해놓고 얼굴을 덮은 아이의 손등을 탁 쳐서 당황시키는 장난을 친 날이 있었다.
나한테만 친 건 아니었고 반 아이들도 이미 몇 명은 당했는데 나는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있던 일이라 몰랐다. 그리고 나한테도 똑같은 장난을 쳤는데 내 코의 내부가 생각보다 약했나 보다.
코피가 났는데 그것도 쌍코피가 났다.
아팠다기보다 당황해서 울었는데 장난을 친 아이도 당황했다. 교실 분위기도 술렁거렸다. 쌍코피란 게 아픔의 크기보다 더 많이 다친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좀 있다.
때마침 한 선생님이 우리 반 앞을 지나가다 문을 열었다. 교실 안이 고요해졌다.
-무슨 일이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선생님 눈에 쌍코피가 터진 채 울고 있는 내가 눈에 보이셨나 보다. 펑펑 울기보다 조용히 질질 짜고 있었는데도.
미운 놈 법칙이라는 게 있다. 평소 얌전한 아이가 어쩌다 친 장난이었다면 조금 야단맞고 끝날 일을 그 아이의 소행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야단맞을 일에 괘씸죄가 더해서 몇 대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장난치는 걸로 매일 야단맞으면서도 매일 장난을 치는 아이였다. 그렇게 혼이 나면 안 치면 좋을 텐데.
마음이라는 건, 뭔가 하고 싶은 것을 막기가 힘들다. 내 경우에도 그랬지만, 특히 어릴 때는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게 대단하든 별 거 아니든 그 마음을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한 거 같다. 어릴 때부터 참을성 뛰어난 극소수의 어린이들도 분명 있었겠지만.
어쨌든 내가 장난치는 것을 안 좋아해서 다행이지, 내 마음에도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맨날 혼났을 거다.
그리고 그 아이는 여차하면 부모님까지 소환될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결과가 좀 안 좋긴 했지만 울면서도 그 친구가 엄청난 악의를 가지고 장난을 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집에서 한 대 맞을 일로 세 대 맞으면 기분이 안 좋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혼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야? 니가 말해봐.
-제가 장난치다가 제 실수로 책상에 코를 부딪쳤어요.
-진짜야?
-네. 진짜에요.
선생님이 사라지고 안도하는 그 아이의 표정이 보였다. 따로 고맙다고 나한테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의 빚은 필요한 순간에 빛을 발했다.
우리 학교는 급식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먹기 싫은 반찬도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꼭 받아야 했다. 어차피 안 먹을 건데도 말이다. 먹기 싫은 반찬이 없는 날은 다행이지만 있는 날은 잔반을 긁어주는 아이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잽싸게 비우고 도망가는 도망자들이 속출했다.
그 반찬을 조금이라도 먹게 하는 것도 그 주번들의 맡은 임무였다. 재수 없는 애들은 또 그걸 꼭 다 먹게 했다. 반찬이 거의 남지 않은 식판만 받고 되돌려 보내는 것이다.
수많은 편법이 탄생했다. 입에 물고 화장실에 가서 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주로 잽싸게 버리고 도망가는 도망자였다. 이게 뭐라고 도망까지 가야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도망갔다.
무슨 반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먹기 싫은 반찬이 나온 날이 또 다시 왔다.
받기 싫었으나 받은, 한입도 먹지 못한 반찬이 내 식판에 남았다. 내 코피 터트린 아이가 그날 주번으로 서 있었다. 자리를 비우면 버리고 도망가려고 멀리서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그 아이가 말했다.
-와서 그냥 버려.
그래서 그냥 버리고 갔다. 가끔씩 마음은 임무보다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