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까 말까
사실 보통 사람들이 고민하는, 말하자면 ‘끊을까 말까, 말할까 말까’ 하는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해, 나는 그렇게 심하게 하는 편이 아니다.
사실 심하게, 라는 표현도 아깝다. 나는 그냥 안 한다.
누구나 단점은 있고, 단점을 보완할 다른 장점이 있을 테니 감가상각 해서 그 단점이 내 기준에 참을 만한 수준이면 참는다. 다만, 단점이 너무 다양하거나 계속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고쳐지지 않고, 다양한 상황에서 일관성이 드러나거나 그 횟수가 많을 경우, 말로 몇 번 타이르고, 그래도 안 되면 어느 순간 그냥 놓아버린다.
문제는 그 놓아버리는 순간이다. 나는 놓았는데, 그쪽에서 안 놓을 때가 있다.
친구의 경우이든, 남녀 사이였든 그들에게 나의 존재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소중해서라기보다는, 이때까지 잘 지냈는데, ‘이게 관계를 끝내는 사유로 말이 돼?’라는 이유가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놓기 싫었다기보다 그 관계를 정리하는 주체가 그들 자신이 아니라 ‘나’였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인정하기 싫어서 안 놓았던 것 같다.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다.
알 게 뭐야. 내가 내 인간관계 끝내겠다는데. 친구의 경우 친구 관계를 놓음으로 해서 잃을 다정했던 친구와의 즐거웠던 추억, 남자의 경우 헤어짐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기댈 곳이 사라짐으로 인해 얻을 상실, 그걸 다 잃을 걸 감안해도 그냥 놓는 게 더 낫겠다는 확신이 사라지지 않는데.
그중에 자신이 먼저 잠수를 타서 끝났던 남자가 찾아와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늘어놓으며 못 가게 막은 적이 있었다. 도저히 안 놔주길래 안 되겠어서 나도 같이 멱살을 잡았다. 그제야 알겠다며 내 팔을 놓으며, 자신의 멱살도 놔달라고 하길래 나도 놓는데 하필, 내 네일의 파츠가 좀 컸던 탓인지 멱살을 홱, 하고 놓다가 단춧구멍에 걸려서 남자의 셔츠가 쭉 찢어졌다. 5cm 정도.
그때부터는 말로 하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그쪽에서는 셔츠 물어내라, 나는 누가 찾아오랬냐, 내 주소도 알 테니 경찰에 신고해라, 그리고 아빠한테 너 같은 놈 줘 패 달라고 이를 테니 한 번 두고 봐라(진짜 이런 일로 아빠가 혼내줄지는 모르지만), 그쪽에서는 할머니한테 이르면 너는 뼈도 못 추린다(그 남자는 부모님이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셨다), 뭐 이런 같잖은 싸움을 하다가 결국 당 떨어져서, 서로 잘못이 있으니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하고 그 남자는 그 남자 집으로, 나는 내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물론, 다시 얘기할 일은 없었다. 잠수 탄 남자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내 시간과 에너지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지나간 남자에게 다정함과 배려를 베푼다고 내 인성을 사회가 높이 알아주거나 내 경제적 가치가 올라서 연봉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내가 그래 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내 앞가림이 소중하고 밥벌이인 직장생활, 그거 조금 하고 나면 힘들다. 그때는 시나리오도 쓰고 있어서 직장생활과 글 작업을 동시에 병행할 때라, 거의 에너지 착즙 수준으로 일하고 있을 때여서 쉴 때는 온전히 쉬어야지 그 외 일에 이것저것 에너지 낭비하는 게 너무 싫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쉴 때 제대로 푹 안 쉬면, 한주내내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쪽에서 먼저 잠수했었으니 이번엔 내가 그냥 씹었다. 찾아오면 신고할 거라는 말은 해주고.
셔츠 값 물어내라고 신고를 하지는 않았는지 경찰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신고를 했다 해도 그냥 잘 타일러서 보냈을 일이었을 거 같기도 하다.
여하튼 저때 저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게 내 본심이다.
가끔 들어가 보는 교육센터가 몇 개 있다. 그중에 이런 커리큘럼이 올라왔다.
글 쓰는 걸 이제 밥벌이로 삼을 생각이 없어서 이걸 들을까 말까 고민이다. 이왕 쓰는 글이니 잘 쓰고 싶긴 한데 어쨌든 취미로 쓰는 글에 큰돈을 들여서 배우기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멱살을 격조 있게 잡을 수 있을까. 격조 있게 욕할 수 있을까.
사실 끊어내는 건 어렵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하던 방식 말고, 좀 세련되게, 우아하게 사람을 끊어낼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예전부터 좀 하기는 했다.
끊어내는 마당에 굳이 세련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세상이 생각보다 좁은데, 우연히 다시 마주칠 수도 있는데 그때를 위해서 끊을 때 세련되게, 우아하게 끊고 싶은 마음이, 그냥 끊어내고 싶은 마음보다 조금 더 크다.
말하자면, 디테일의 차이랄까.
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은 불편하지 않은데 꼭 배워야 하나 싶기도 하고.
2013년 4월 19일이 글 쓰겠다고 부산에서 서울 상경한 날이었다. 바로 어제가 딱 7년 되는 날이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잊지 말아야 할 나의 독립기념일이라서 이런 고민도 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