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 나는 ‘뻔뻔한’ 사람이 싫어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 싫어. 오늘 아침에 출근 준비하는 남편에게 “여보, 나는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아?”라고 물어보니까 딱 알아맞히더라고. 그만큼 내가 티를 많이 냈나 봐. “다른 거는?” 물어보니 그것 말고는 없대. 음, 그런 것 같기도 해. 그 외의 다른 비호감 요소들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야. 왜냐하면 대개 그것들은 본인들 문제니까. 그런 걸 보며 비난할 시간에 차라리 ‘나나 잘하자’ 싶거든? 하지만 ‘비겁함’은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기 따문에 문제가 되는 것 같아.
p.121, 경선
저 구절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도 비겁함인가 물어보았다.
‘나도 비겁한 게 제일 싫은가?’
그러자 비겁함이 소름 끼치게 싫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스스로를 보호하느라 비겁한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안 그렇게 살려고 하긴 하지만, 내가 단 한 번도 비겁한 적이 없었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모르는 내 비겁한 모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은 정말로 싫어하는 것은 따로 있다.
나는 ‘뻔뻔한’ 사람이 싫다.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숨기려고 할 때가 있다. 어떤 걸 숨기려고 한다는 건 자신도 잘못했다는 것을, 혹은 부족한 지점이란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연히, 어쩌면 필연적으로 그게 드러났을 때, 나는 사과를 받고 싶다. 최선이 담긴 사과를.
많은 분야들이 일정 부분 그렇겠지만 내가 하는 일은 CS특성상 고객들에게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내 실수가 하나도 없는 날에도 나는 몇 번씩 사과를 해야 한다.
시스템에 대한 오류나, 서비스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인한 부분이 가장 많다. 정확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만 고객 입장에선 기분이 상할 수 있다. 큰 문제는 아니기에 대부분 넘어가지만 경우에 따라 그게 몹시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나에게 불만을 다 쏟아낸다.
처음에 이 분야의 일을 하게 되면서, 다짜고짜 화내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을 때, 억울하고 분해서 운 적도 있다. 나만 겪었던 억울함은 아니고 콜센터 관련 근무자라면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다. 내 문제가 아닐 때는 몰랐는데 다른 직종보다 콜센터 직원들 자살률이 높은 이유가 있다는 걸 직접 해보고서야 알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팩트 체크 정확하게 하면, (어떤 경우는 그럴 필요도 없을 정도로) 당연히 그 사람의 분노의 방향은 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경우라서 ‘도대체 나한테 왜...?’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 월급에는 일 자체에 대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불만을 들어주는, 그 감정을 감내하는 것에 대한 지분도 조금은 있는 거라고 마음속에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다행히 이 가이드라인 덕분에 나는 이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
그래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놔버리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냥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싶다. 그게 ‘내가 고개를 숙여서’ 상대방의 기분을 풀 수 있고 그게 ‘문제 해결로 이어진다’ 면 나는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 수 있다. 오늘의 내 간과 쓸개를 집에 놔두고 왔다,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나는 10만큼 사과해야 하는 일에 20만큼 사과를 하기도 하고 가끔 상대방이 너무 막무가내일 경우, 100만큼의 사과를 한다. 정말 작은 실수지만 마치 내가 죽을죄를 진 것처럼.
사실 그러면 바로 직전까지 불같이 화를 내던 사람들도 생각보다 빨리 화를 푼다.
그분들도 알고 있다. 내가 실수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걸. 그냥 그분들은 기분이 상한 거고, 그 기분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큰 거다.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 숙여 이미 사과하는 데 거기다 대고 ‘계속해서’ 화를 내긴 무안할 테니까.
회사에서 하는 그 사과하는 노력, 그게 내 안에서 고갈이 되나 보다. 내가 많이 사용하니까 그렇겠지만.
그러다 보니,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할 일이 있을 때, ‘내가 납득할 정도의 설명과 충분한 사과’를 ‘내 인간관계’에서만큼은 받고 싶다.
오래전에 만났던 어떤 남자 친구는 자신이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1년이나 숨긴 적이 있었다. 2년 만났는데, 1년 동안 그는 백수였던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했다, 점심엔 뭐 먹었다, 오후 6시쯤엔 퇴근했다, 이런 얘길 주고받았는데 1년 동안 매일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 친구도 그러느라 힘들었겠지만 여기서 그 친구의 어려운 속사정을 배려하고 상상해줄 생각? 없다. 그리고 어려운 속사정 없는 사람 아무도 없다.
어쨌든 그렇게 오랫동안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불안하고 짜증이 났을 테고, 그래도 나름 6개월은 잘 속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친구가 변한 걸 깨달았고 나는 그게 권태기라서 그런 줄 알았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내가 노력하면 예전과 같은 관계가 될 줄 알았고, 3개월 정도 노력을 하고 하다 지쳐서, 진심으로 혼자가 되고 싶었다.
우리 관계는 더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헤어짐을 말하자 그제야 사실은 자신이 회사를 1년 전에 그만두었음을 고백했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친구의 사직은 겨우 2달 전이었다.
끝난 사이인 건 이미 확실해졌지만, 내가 그에게 1년 동안 회사를 다닌 척한 게 미안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전혀 미안하지 않다고 했다. 전혀.
그때 말했으면 그때 헤어졌을 거 아니냐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전 남자 친구가 이직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걸 나한테 다 푼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이 너무 끔찍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회사로 가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느낀 모멸감이랄까, 비참함이랄까, 그런 걸 두 번 다시 나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진짜 그 감정에서만큼은 나를 보호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이 친구와 사귀기 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나한테 이직으로 나를 감정 쓰레기통 만들거나 신경 쓰게 할 거면 그냥 나보고 데이트 비용을 싹 다 내라고 하라고. 그러면 2-3개월 정도 경제적인 부분은 감당할 수 있겠지만 힘든 티, 불안한 감정은 스스로 컨트롤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직 문제로 위로해주는 거 해봤는데 끔찍하게 싫다고 말이다. 해주면 해줄수록 더 바라고, 결국 나한테 돌아오는 건 없이 고갈되는 느낌이었다고. 나는 딱 여자 친구 노릇까지만 할 거고 ‘따스한 엄마’ 노릇 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거 해주면서 견딜 바에는 헤어지는 쪽을 선택할 거라고,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사람 만나기 싫다고 말이다.
견뎌서 어떤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릴 땐 철 모르고, 그래야 하는 건 줄 알고 견뎠지만, 그거 너무 비참했다.
말하자면, 그건 내가 보호받고 싶은 내 감정선이었고, 이제 그 선을 침범하는 말과 행동, 태도를 견딜 생각이 없었다.
그 친구 말대로, 그때 말했으면 바로는 아니더라도, 그 후 2-3개월 안에 헤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이니까.
이직 문제만큼은 신경 쓰게 할 일 없게 하겠다고 다짐하더니, 결국 감춰서 몰랐었으나 알고 보니 내가 신경 쓰고 고통스러웠던 진짜 원인은 그의 권태기가 아니라 내가 피하고 싶던 바로 이직 문제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한테 이직으로 짜증 부리거나 속상할 일 없게 할 테니 거짓말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던 네가, 거짓말을 정말 매일 밥 먹듯 했구나.
뻔뻔함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문제가 있다’ 고 생각되는 부분을 당사자는 ‘문제가 없다’ 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당사자는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과든 뭐든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사과를 한다 해도 바뀌는 게 없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바뀌는 게 왜 없다는지 모르겠다. 내 상처 받은 기분이 바뀌는데.
쓰고 보니 새삼 싫다. 뻔뻔함이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