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창궐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차이나는 클라스] 전염병을 대했던 그들의 마음을 본다

by 시은

-조선시대에 전염병이 창궐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차이나는 클라스> 158화(2020년 5월 26일 방영) 조선시대 전문가 신병주 교수의 질문이다.


-조선은 비만 안 와도 임금 탓하고 이랬던 나라잖아요. 그러니까 전염병이 돌아도 임금한테 책임을 돌렸을 것 같아요.(최서윤)


-그렇죠. 아무래도 왕조국가니까 가장 책임의 주체는 왕이 되는 거죠.


병이 나면, 그때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게 나라냐!’ 고 분노를 했단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분노의 방향은 왕을 향했다고 한다. 그랬겠지, 하고 덤덤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실록에 기록된 왕의 태도가, 이제는 죽고 사라진 그들의 마음이, 오늘을 사는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라는 탄식. 왕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맞다. 국가의 큰 틀을 짜고 운영한 존재는 왕과 신하들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은 보통 진짜 원인, 구체적이고도 과학적 이유는 따로 있다. 비위생적인 환경이라던지, 날씨의 영향으로 급격한 온도 변화와 부족한 영양이 맞물린다던지, 동식물의 바이러스라던지.


그런데 왕이 스스로 ‘책임의 프레임’을 강하게 뒤집어썼다. 누가 등 떠밀어서 책임지겠다는 태도가 아니다.


이 바보 같은 백성들, 너네들이 잘 안 씻었고, 신하 놈들, 너희가 백성들, 안 보살펴서 이 모양 이 꼴이다,라고 지적하거나 어딘가에 있을 ‘진짜 원인’을 찾아서 빠져나가려 하지 않는다. 가장 권력의 최상층의 인물이, 우선 나를 원망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린 모두 알고 있다. 문제가 있을 때, 욕할 대상을 찾아서 욕을 한다고 해서 실제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우선 속은 좀 풀린다. 우선 그렇게 쓰린 속을 풀고, 그다음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왕들은 대응 체계 구축에도 힘을 썼다. 세종은 전문의학자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의학서적 집필도 지시했다.


대응은 대응대로 하면서, 아니 그보다 먼저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줘야 한다는 걸 왕들은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말했을 것이다. 모든 왕이 저랬는지까지 알 수 없고 당시에 이루어진 수많은 대응책들을 보면, 지금의 시각에서는 비과학적인 노력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위기 상황 속, 그 비과학적 대응조차 수많은 노력을 했다는 증거의 일부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유럽에서 전염병이 퍼졌을 때, 흑사병이 돌았을 때 일어났던 일은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일이었다.


그 당시 유럽은 지금보다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종교의 힘이 강했다. 더욱이 부유한 사람이나 빈곤한 사람이나 기댈 곳이라곤 종교밖에 없었다. 병마에 지치고 가족과 가축이 죽고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백성들은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불만이 쌓여간다. 절망해서 신을 원망하려는 백성들에게 교회는 다른 원망할 만한 적절한 타깃을 찾아준다. 분노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다.


혼자 사는 여자. 그러면서 병이나 약초에 밝은 여자.


보통 이런 여자들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은 출가시킨, 늙고 혼자된 어머니인 경우가 많았다. 출산을 겪고, 남편과 아이를 양육하느라 쌓인 민간적 수준이었을 의학지식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여자들의 기초적 의학 능력조차 병 앞에서도 성경이나 읊어주던 그들에겐 마법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들은 병 앞에서 기도하는 목사나 신부들을 믿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는데 말하자면, 중세식으로 ‘기도하지 말고, 일하세요.’라고 속삭인 거라고 해야 할까.


<www.검색어를 입력하세요> 10화 장면


그리고, 그들은 물리적으로 보호해줄 남편이나 가족이 없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폭력행위가 발생하는 데에는 두 요소가 합해져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1. 때리고 싶은 마음

2. 때려도 되는 환경


유럽은 무슨 일이 터지든 기댈 곳이 종교밖에 없었던 곳이었다. 흑사병 이후 교회의 기부금이 30배가 증가했다고 한다. <차이나는 클라스> 159화(2020년 6월 2일 방영)에 보면 당시 기부금의 증가 폭이 확연히 보인다. 여기 모인 돈의 크기는 지옥 같은 전염병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그들의 열망의 크기였을 것이다.



그 큰 마음들을 향해, 교회가 말한다. 마녀가 한 짓이라고.


그들이 가리킨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 아닌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은 분노의 대상이 되면 안 되는 게 중요했을 테니까. 왜냐하면 교회는 신의 대리자이고 신에 대한 원망은 그들에게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


‘때리고 싶은 마음’이, ‘때려도 되는 환경’을 만나게 해 준 것은 교회와 성직자들이었다. 자신들의 무능에 대한 백성들의 거대한 분노와 관심을 돌리기 위해 공격력이 약한 먹잇감을 던져준 것이다. 마녀 사냥은 아무 배경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다. 분노와 관심 돌리기, 그게 마녀 사냥의 시초였다.


수포가 생기고 나흘 째 죽는다고 그랬잖아요. 몸에 수포 나잖아? 그럼 나부터도 유서 쓸 거 같아...(홍진경)



참고로 <차이나는 클래스> 159화의 수업 방향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방향과 많이 다르기는 하다. 흑사병 시기, 유럽의 분위기와 당시 배경지식을 참조하는 데 159화의 정보들을 인용했다(궁금하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길. 인용의 내용이 방송의 주제와 거리가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도 재미있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그리고 유럽. 전염병이 계속되고 내일 누가 죽을지 모르는 지옥 같은 현실. 어제 내 옆의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거나 내일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는 누구나, 어느 누구라도 때리고 싶은 대상, 욕할 타겟을 찾는다.


그때, 조선의 왕은 자신을 때리라고 한 셈이다. ‘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한 상황 속에서, 그 마음이 ‘때려도 되는 환경’은 만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는 사이, 노력했다. 대응책을 구축하기 위해, 치료방법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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