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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Oct 09. 2020

그래서 요리를 안 합니다

제 손가락은 소중하니까요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챙겨 먹이는 것을 별로 안 좋아했다. 그 ‘누군가’에는 심지어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다 음식을 만드는 것, 즉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말했다. 첫째인 니가 동생 좀 챙겨라. 누나인 니가 동생 먹을 것 좀 챙겨라.


우리 남매는 연년생이라서 어리긴 도찐개찐이었다.


15개월 차이의 동생... 내 시각에선 쟤도 어리지만 나도 어린데 내가 쟤를 굳이 챙겨줘야 되나... 하며 내가 놓인 현재의 상황을 냉정히 파악해보려고 하고 있으면 엄마는 그냥 그럴 시간에 좀 챙겨주면 어디 덧나냐고 비난하셨지만 덧나는 건 아닌데 어린 나이에도 내 노동력이랄까 시간을 헛되이 쓰고 싶지 않아서 그럴 수는 없다고, 맞는 말이지만 얄미운 소리를 해서 매번 야단을 처맞았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동생을 챙기지는 않았다. 한두 번 챙겨주려 해 봤지만 고마워하지도 않았고 배고프면 다 알아서 챙겨 먹게 되어있는 게 사람의 본성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내 생각이 맞았다. 동생은 정 배가 고프면 알아서 챙겨 먹었다. 동생이 뭘 먹고 싶은데, 그리고 그게 집에 있다는 사실은 아는데 베란다에 있는지, 냉장고에 있는지 그걸 몰라 헤매고 있으면, 그래도 내가 누나라기보다, 엄마랑 같이 냉장고나 베란다에 식품을 정리하기 때문에 그게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재빠르고 정확히 찾아주었다. 그리고 내 기준엔 이 정도도 분명 동생을 챙긴 거였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셔서 동생이 밥을 안 먹었다고 하면 그 잔소리를 나에게 했다. 분명 뭘 먹기는 먹었는데도.


엄마, 쟤도 나 안 챙겨줘. 나만 왜 쟤를 챙겨. 내가 쟤를 위해 사용한 노력과 시간을 하나하나 기록했다가 훗날 먼 미래에 엄마나 동생이 고맙다면서 다시 되돌려줄 것도 아니잖아. 나도 책 읽고 할 거 하고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쟤가 냉장고에서 뭐 찾아달라면 공부하다 말고 방에서 나와서 찾아주고 다 했어요, 라고 나의 작은 노력과 내 소중한 입장을 주장하면 다시 엄마는 니가 첫짼데, 니가 누난데 라는 엄마들의 전통가요를 부르셨다.


나는 내 마지막 카드, 15개월 차이는 도찐개찐이라고 하며 내 의견을 꺽지 않았다. 물론 엄마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카드였다. 심지어 동생도 누나가 먹으라고 하긴 했다고, 누나한테 뭐라 하지 말라고 자주 내 편을 들어주긴 했지만 그것도 자신의 방에서 게임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안 해주고, 우리의 싸움이 자신이 거실에서 TV 보는 데 방해가 될 때 주로 싸움의 빠른 종료를 위한 이유일 때가 많아서 어쨌든 이 싸움은 크게 보면 나와 엄마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이 고통스러웠던 나는 결국 독립했다.




내가 요리를 하기 귀찮아한다는 걸 제일 먼저 눈치챈 사람은 나였다. 그다음에는 동생도 요리하기를 귀찮아한다는 걸 눈치챘다. 게다가 자세히 관찰한 결과, 엄마도 요리하기를 귀찮아했다. 가설로만 존재하다가, 최근에 확실하게 알게 된 사실은 아빠도 요리하기를 귀찮아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우리 집에서는 아빠가 요리를 즐기시는 편이었는데 이빠도 집에 한 달에 한번 오시니까 하는 거고 하루 이틀 정도라 하는 거였다. 3일째에는 항상 나가 사 먹자고 하셨다. 최근엔 그냥 바로 나가서 먹자고 하신다. 아주 가끔 요리를 하시고.


우리 식구 모두가 뭘 만들어먹는 것을 매우 귀찮아한다는 것, 그게 우리 집안 가풍이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도 엄마가 꾸역꾸역 30년 가까이 그 싫어하고 지긋지긋해하는 음식을 해서 우리 4 식구 먹여 살리시긴 했다.


어쨌든 독립 이후에는 자취를 하다 보니 어쨌든 매일 뭘 내가 알아서 먹기는 해야 하는데 한 1년간은 절대적으로 식당에서 사 먹었다. 그 돈도 만만치 않았지만 사 먹는 걸 아침 겸 점심으로 생각하고 저녁은 무조건 컵라면으로 때웠다.


그러다가 결국 한번 몸이 심하게 아팠고, 수술도 해야 했다. 목숨이 오고 가는 수술은 아니었지만, 일상에 지장을 주는 정도로는 아팠고 놔두면 더 아파질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병원으로부터 영양상태가 별로 좋지는 않다고 영양 불균형이 지금 몸상태의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의견을 들었다. 매일 먹어도 안 좋은 음식은 그냥 배만 채우는 거였다. 그 이후에는 주로 햇반, 밑반찬, 밀 키트를 기반으로 해서 먹는다. 매일 식당밥과 인스턴트 먹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키보드를 많이 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손가락 사용량이 많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관절은 많이 사용하면 많이 닳는다. 그리고 요리는 다 손으로, 구체적으로 보자면 손가락을 사용해야 하는 노동이다. 손질하고, 조리하고, 먹고 나면 설거지도 해야 한다. 글도 손가락을 사용해야 하고, 요리도 손가락을 사용해야 한다. 물론 그 외의 일도.


어느 날,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손가락 관절이 마디마디 시렸다. 이건 손가락이 보내는 간접 메시지였다.


작작 써라, 이 주인 놈아, 라는.


오늘 아침에도 요리에는 손을 쓰지 않고 글 쓰는 일에 손과 손가락을 쓰며 생각한다. 평생 써야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많이 사용하겠다고, 그리고 아껴가며 소중히 쓰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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