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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Oct 05. 2020

내가 갖고 싶다

가장의 책임감은


나와 내 남자친구는 돈이 없어서 비혼 주의자로 살기로  상태다. 언젠가 우리 사이 얘기는 아니지만 결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린… 결혼하면  되는데,  없어서.


그가 답했다.

-알아.


내가 물었다.

-근데 결혼해서  하고 싶은데?


남자 친구는 아까  한숨 같던 말보다  작게 말했다.

-독박 살림. 그리고 독박 육아. 난 잘할 자신 있거든. 적성에도 맞고.




아직 능력이 부족해서 그러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남자 친구에게 항상 말하고 있다. 너는 나중에 집안일만 했으면 좋겠다고. 남자 친구 역시 그러고 싶다고 말하지만 계속 일하고 있다. 내가 그럴 능력이 되면, 그가 일을 그만두고 살림을 전담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아니, 가장의 책임감은 우리 세대부터는 여자가 가졌으면 좋겠다. 가장의 책임감 그거 우선 나부터, 내가 평생 지고 가고 싶다. 내 남자가 살림은 전담하고.


고백하자면, 나는 살림이 너무 싫다. 꼭 내 남자가, 내 반려자가 살림해 주는 게 아니어도 괜찮았다. 내 남자가 그럴 수 없다면, 일주일에 한두 번 비용 지불하고 가사 도우미 쓰면서 살고 싶다고 20대 중반부터 계속 생각했다. 자취를 오래 하다 보니 웬만한 살림을 다 할 수 있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요리는 못 한다. 그리고 못 하는 걸 굳이 노력해서 잘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결혼을 하든 말든, 혹시 지금 남자 친구 부모님이 뭐라 하더라도 노력을 안 할 생각이다. 내 결심은 확고하다. 비혼 주의자인 우리가 서로의 부모님을 만날 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혹은 아예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로 나는 살림이 싫고, 또 싫다.


이전에 만난 남자 친구들이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준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레퍼토리처럼 덧붙이는 말은 이거였다 ‘너는 편하게 집에서 살림이나 해.’

살림을 하나도 안 해본 사람들이나 편하게 살림하라고 말할 수 있다. 살림은 하나도 편하지 않다.




나는 굶고 살진 않지만 딱히 요리를 해 먹으며 살진 않는다. 그냥 밀 키트와 밑반찬을 사서 그걸 차려 먹는다. 어느 날, 남자 친구와 퇴근 후 월요일 저녁에 만난 적이 있다. 평소 주말에 남자 친구가 집에 오고, 그가 요리를 해서 그걸 먹는다. 그날 남자 친구가 '뭐 먹지?'라고 묻길래 내가 '간단하게 집에서 해 먹자.'라고 말하며 집으로 가려는데, 그가 나를 강하게 막으며 말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주말 내내 우리가 먹을 요리를 다 한다.

-잘 들어. 집에서 간단하게 해 먹는 건, 하나도 간단하지 않아.  


살림하는 사람이면 다 아는 내용이긴 하지만 '요리'라는 것은 그냥 음식 재료를 조리하는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음식을 할지 결정하고, 그에 따라 재료를 구매하고, 씻고, 조리방식에 따라 조리를 하고, 다 먹은 후에는 설거지까지가 '요리'다. 이 남자는 살림을 해 본 사람이고, 지금도 자기 살림을 '잘하며' 살고 있다. 그의 말대로 간단하게 해 먹는 건 전혀 간단하지 않으며, 살림은 하나도 어느 것 하나 편하지 않다.


살림을 호강이라고 말하는 이들과의 결혼은 꿈도 꾸기 싫었다. 자신들도 하기 싫어하고, 안 하고 못하고, 자신의 어머니들이 다 해줬을, 막상 하면 티도 안 나고 보상도 없는 살림, 그걸 나한테는 호강이라면서 시켜주겠다니, 고생을 호강으로 둔갑시키다니. 그 입을 다 꼬매버리고 싶다.  


나는, 나에게 '집에서 살림만 하게 호강시켜준다'는 헛소리하는 남자는 콩깍지가 곧바로 벗겨졌고, 0.1초 만에 정이 뚝 떨어졌다. 내가 그들의 말로부터 예감한 건 '난 살림하니 돈 안 벌어도 되겠다.'가 아니라 곧이어 진행될 내 '사회적 지위의 박탈'이었다. 호강, 살림이라는 명목으로 직장인이라는 지위, 내 소중한 사회생활을 박탈하겠다는 것. 나는 평생 가장의 책임감으로 살고 싶다.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 평생. 그게 변변치 않고, 지금 내 앞가림만 겨우 하는 정도긴 하지만 포기할 생각이 없다.  


살림만 하게 해 주겠다, 고 말했던 그 친구와 그 문제로 당장은 별로 다투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본 결과 이런 남자와 결혼을 안 하는 것과 별도로 연인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게 해주는 것도 아까웠다. 나는 낭만적인 인간이기보다 합리적인 인간이라 시간이 아까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헤어지는 이유에 대해 하도 꼬치꼬치 캐묻자, 너는 결혼하면 자기 여자 일 그만두게 하겠다고 해서 헤어진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다른 이유들도 있긴 했지만 그게 제일 컸으니까 그것만 말해주었다. 덧붙여 살림을 호강이라고 하면 지나가는 개도 안 웃는다고 또박또박 말해주자 그는 나에게 배가 불렀다고 했다. 알겠다고, 네가 말하는 그게 호강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를 만나라고 했다. 그 사람이 나는 아니라고.




돈은 내가 벌게, 너는 집에서 살림할 수 있게 호강시켜준다, 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나를 설레게 한 적이 없었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은 절대 호강이 아니다. 집안일-청소, 요리(설거지 포함), 장보기, 빨래(널고 개는 것 포함), 화장실 청소(변기, 하수구 포함), 주방 정리(냉장고 정리 포함), 계절마다 옷장 정리-만 전담으로 따로 하는 분 따로 쓰고, 아이들 케어하고 남는 시간에 독서와 문화생활로 남은 시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면.


20대 후반, 학습지 교사를 2년간 하며 방문한 가정이 약 100가구 정도 되는데 그중에 ‘집에서 살림만’ 하는 중에 편해 보이는 분, 딱 한 명 봤다. 거칠게 수치화하면, 1% 라는 말이다.

99가구는 맞벌이건 외벌이건 다들 전전긍긍하며 오롯이 여자들만 집안일을 했다. 남편이 아기 기저귀만 갈아주고 자기 밥은 스스로 챙겨 먹기만 해 줘도 좋겠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나보다 어린 분도 있었고 위로는 10살 정도 많은 그 어머니들은 대부분 남편과 집안일을 분담하지 못하고, 전전긍긍, 동동거리며 '집안에서의 근무량'을 해치우며 살고 있었다. 남편에게 집안일을 제대로 가르치는 게 더 힘들어서 그냥 본인이 하고 만다는 분들도 많았다. 어떤 어머니 분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 전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이에요.

사실 기분이 아니라 팩트 아닌가? 몇 가지 상황이 추가되면 피로도는 높아진다. 나는 그게 가장 심한 게 둘째의 등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이터적으로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고, 내 경험상 그래보였다.


이런 경우가 한번 있었다. 첫째 아이 공부 때문에 둘째 아이를 방어하느라 회원의 어머니가 막으면 둘째 아이가 샘을 내서 종종 난리 칠 때가 있는 집이 있었다. 주로 핸드폰으로 뽀로로 동영상을 보여주면 울음을 멈추는데 뽀로로도 소용없던 날이 있었다. 그때, 그 어머니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우는 아이를 달래려 안고 주방으로 갔다. 다행히 얼마 안 되어 울던 아이는 조용해졌다. 20여분의 학습지도가 끝날 때까지 둘째 아이를 어머니가 안고 계셨다. 이만 가겠노라고 인사를 드리려는데, 그때까지 그 어머니가 주방에서 둘째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 눈가에 눈물을 훔치면서, 우리 OO이 착하지, 하고. 팔목엔 손목 보호대를 하고, 깡마른 몸으로.


내가 보지 못한 '그녀들의 삶'이 더 많을 것이다. 다들 타인에게 안 보이는 공간에서, 안 보이는 시간에 울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미혼이 볼 수 없는 시공간을 살고 있었다. 나 역시 학습지 교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가까이서, 그렇게 많은 기혼 여성의 삶을 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말한 딱 한 명, ‘살림 편하고 깨끗하게 하는 그분’은 일주일에 3회 정도, 가사도우미 써서 집안일한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 후 편하고 깔끔한 살림, 정돈된 집은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최소 아이가 만6세가 지나기 전까진 꿈도 꿀 수 없다. 그것도 아이가 순하고 정리정돈 하자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나는 돈을 잘 버는 편이 아니니 굳이 많이 버는 남자를 만나려고 한 적도, 누굴 만나든 많이 벌라고 한 적도 없다. 만나고 보니 돈 많은 남자도 한 두 명 있긴 했지만 그게 계속 만나야 할 매력이 되진 않았다. 그중에 한 명은 ‘나랑 결혼해서 편하게 애 낳고 우리 부모님 비위 맞추면서 살림이나 해'라고 하길래 고민도 없이 헤어졌다. 나는 애 낳고 살림하는 게 타인의 부모님 비위 맞추는 게 하나도 편할 것 같지 않은데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단다. 힘들게 돈 버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냐고.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고, 굳이 이 남자가 돈 많다고 이해시켜 가며 만나기는 귀찮았다. 이 남자 아니어도 내 앞가림은 내가 하니까 아쉬울 게 없었다. 내 기준은 결코 높지 않다. 외모, 인성, 내가 하는 집안일만큼 그도 할 줄 아는 것. 돈은 자기 앞가림할 정도만 벌면 되었다. 이 정도 남자도 없다면, 남자 만나는 걸 포기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현재 많이 벌지도 못하면서 너랑 결혼하면 꼭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주겠다고 '일 그만두게 해 주겠다'라고 하는 남자들은, 불편하고 불쾌했고 의심스러웠다. 그러라고 만난 것도 아닌데. 진작 많이 벌든가. 왜  갑자기 그러겠다는 거지? 그리고 결혼만 한다고 해서 남자라고 돈 많이 벌 방법이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닐 텐데. 그들이 가지려고 하는 가장의 책임감, 그건 내가 갖고 싶은 거였다. 그들에게 넘겨주기 싫었다.  


글을 쓰건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건,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였다. 그리고 돈 잘 버는 건 그들이 원한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만나는 남자 친구는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살림은 내 기준치를 능가해서 잘한다. 심지어 꼼꼼하고, 좋아한다. 이번 추석 연휴 내내 각자 고향에 가지 않아 함께 있었는데 끼니때마다 요리를 하던 그가 말했다. 명절 증후군 걸릴 것 같다고.


명절 증후군은 그가 대신 앓고, 가장의 책임감은 내가 평생 갖고 싶다. 명절증후군은 우리 세대에서 끊었으면 좋겠다. 추석 연휴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는데 이런 구절이 나왔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꽃이니 홍일점이니 하면서 떠받드는 듯 말하곤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여학생에게는 짐도 들지 못하게 했고, 점심 메뉴도, 뒷풀이 장소도 여학생들이 편한 곳으로 정하라고 했고, 엠티를 가면 단 한 명뿐이라도 여학생에게 더 크고 좋은 방을 배정했다.

(...)

차승연 씨는 항상 특별 대우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여학생들도 똑같이 일 시키고 기회도 똑같이 달라고, 점심 메뉴 선택 같은 것 말고 회장을 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 대부분 대충 웃으며 그래그래, 하고 넘겼는데 9년 동안 가장 열심히 동아리에 나오고 있는 박사 과정 선배 하나가 매번 같은 대답을 했다.

"내가 몇 번을 말하니? 여자는 힘들어서 못해요. 너희는 그냥 동아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우리한테 힘이 되는 거야."

"저 선배한테 힘 돼 주려고 나오는 거 아니거든요? 기운 없으면 보약 한 재 해 드시던가. 내가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악착같이 나와서 여자 회장 꼭 보고 말 거야."

차승연 씨가 졸업할 때까지 여자 회장은 없었는데, 후에 차승연 씨와 정확히 10학번 차이 나는 여자 후배가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차승연 씨는 오히려 담담하게,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긴 하는구나, 했다.

p.91-92 <82년생 김지영>


비슷한 글을 보았다.


https://brunch.co.kr/@jin84/113


잡무는 자기 선에서 끊겠다고 하신 이 분처럼 명절 증후군은 우리 세대에서 끊었으면 좋겠다. 85년생들이 노력하면 95년생들은 조금은 더 나은 명절을 보낼 수 있겠지. 그렇게 믿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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