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조차 아주아주 작은 빙산의 일각일 뿐
며칠 전에 꿈을 꿨다.
아는 사람 2명이 공모전에 당선된 꿈.
1명은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한 명은 A언니였다(A언니에 대한 설명은 하단의 글을 보면 이해가 빠르다).
https://brunch.co.kr/@ddocbok2/251
글을 쓸 때도, 그 이후에도 그녀들을 부러워한다거나 그녀들의 크고 작은 성공을 질투를 했다거나 한 적이 전혀 없다. 내가 잘 된 것처럼 축하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 안 겪어봐서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나는 내가 잘 되는 걸 더 기뻐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 다 그렇긴 하겠지만.
그래도 언니들이 잘 돼서 좋았다. 그녀들의 성공은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TV나 미디어에 나오는 작가들의 성공 같은 건 아주아주 극소수라고 생각했는데, 언니들의 취업을 보며 아주 막 대단하지 않고 소수이긴 해도 아주 없는 일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대성공은 아니어도 소성공 쯤은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지척에 있구나 하는 안도감.
강남에 집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성공은 아니지만, 글로 써서 생활비를 벌고, 그게 또 대기업 인센티브만큼은 아니어도, 가끔 삶에 활기를 주는 인센티브를 받으면서 글을 쓰는, 그렇게 사는 삶이 있을 수 있구나 그 삶을 인근에서 볼 수 있구나 하는 그런 안도감.
그런 게 있었다.
꿈에서 언니가 상금 수령하러 은행 같이 가자고 하는데 깼는데 꿈에 깨기 직전, 들었던 느낌은 정확히 ‘아, 부럽다’였다. 금액도 모르면서. 무슨 상인지도 모르면서.
심지어 그 언니의 표정은 무덤덤하다고 해야 하나, 별로 기뻐 보이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 언니를 정확히 ‘부러워했다.’
꿈에서 깨고 나니 꿈속에 그 감정을 그대로 놔두고 온 것인지 부럽다, 느꼈던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내가 누군가를 부럽다고 느꼈다는 게 너무 낯설고 이상했다. 꿈속의 나는 심지어 지금 상황 그대로의 나였었는데 전혀 내 성격이 아니어서 나 같지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이 거의 없는데, 내가 그런 감정을 느꼈다니. 그것도 바로 몇 초 전에. 깨고 나니 그 부러움이 사라져 있긴 했지만 이상했다.
그 전에도 별로 없긴 했지만 나는 정말이지 내 밥벌이를 하게 되면서부터 더욱더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이, 그냥 손톱이 아니라 잘라낸 손톱만큼도 없다.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버는 유튜버나 연예인들도, 건물주도 봐도 그냥 그 사람들 복이고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을 사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할 뿐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1초도 해본 적이 없다.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빚도 조금 있고 한 달 한 달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말이다. 정말이다.
누군가의 부유함, 누군가의 잘됨, 누군가의 성공 그런 건 그냥 나에게는 세상을 흐르는 수많은 정보 조각들의 하나였다. 오늘 날씨가 맑다, 흐리다, 기온이 좀 떨어졌다 같은 그냥 정보. 무슨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꿈에서 깨고 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러움을 느끼지 않은 내 성격이 사실은 내가 노력하고 원해서 갖게 된 내 성격일지도 모르겠구나.
힙한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세상에서 부러움을 가지고 살면 힘들까 봐 그 감정을 사용할 수 없도록 내 안의 서랍 어디에 안 보이게 처박아둔 것이지, 없는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평소에 전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서 없는 줄 알았는데 부러움이라는 감정, 사실 나도 어딘가에 갖고 있는 거구나.
있는 것보다 없는 게 편해서 사용하지 않았을 뿐 내가 갖다 버릴 수 있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내가 버리고 말고 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다. 눈에 안 보여서 버렸나 보다, 없어졌나 보다 했을 뿐.
나는 평생 나랑 같이 살았는데 지킬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는 하이드가 있었다.
이러니 타인의 생각이나 삶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오래오래 알고 지내도 나도 나를 다 아는 건 아닌데 어떻게 남을 알 수 있을까.
나라는 빙산도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다.